[스튜어드십코드 임박] "국민연금, 자산운용사에 기금·의결권 일체 맡겨야"
'한국형 SC 설계자' 조명현 기업지배구조원장 인터뷰"기금운용 수익 극대화...정치·경제 권력 입김 차단할 것""SC, '블랙록' 같은 자산운용사로 육성할 기회로 삼아야""의결권 이해상충 문제...국민연금 SC 실행의 관건될 것"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설계자로 꼽히는 조명현(55) 기업지배구조원장은 지난 18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같이 제시했다. 국내 증시의 최대 큰 손 국민연금이 지난 17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초안을 공개하자 '기업 경영권 침해'‘, '연금 사회주의' 등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은 데 반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기금 운용의 수익률을 제고해 국민들이 노후에 쓸 자금이 늘어나는 등의 장점은 간과되고 있는 것을 조 원장은 아쉬워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을 괴롭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초대형 투자자로서 필요 시 기업과 적극적인 소통, 즉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금의 수익률과 기업의 가치를 장기적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라면서 "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의결권 행사 기준과 방식을 정한다면 오히려 정치·경제 권력의 입김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환기했다. 아울러 "스튜어드십 코드를 계기로 기관투자가와 기업이 평소 관계를 잘 쌓아 놓는다면 국민연금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 시 기업 편에 서 줄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국민연금이 자산운용사에 기금과 함께 의결권도 위탁하는 것이 적절하며 더 나아가 그 비율을 향후 100%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지난 4월 말 현재 국민연금의 전체 기금운용 자산 635조원 가운데 국내 주식 자산은 135조원이며 이중 직접운용 자산은 73조원, 위탁운용 자산은 62조원이다. 위탁 비중이 국내 주식 자산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더불어 조 원장은 세계기업지배구조연대(ICGN)가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한 연례행사에서 일본 공적연금(GPIF)의 기금운용본부장(CIO)과 만나 한 시간가량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일찍부터 고령화에 따른 연기금 고갈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일본은 자국 내 연기금을 모두 합쳐 세계 최대 연기금으로 몸집을 불렸고 2014년부터는 전향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나섰다. 또한 기금과 의결권을 민간에 일체 외주화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일본연금의 근황이 궁금한 조 원장은 일본 CIO에게 "자산운용사들에게 기금과 의결권을 모두 맡겼는데 문제는 없는 거냐"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CIO는 "당신이 생각하기에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온갖 인센티브로 동기화된 민간기관 직원 가운데 누가 가장 돈을 잘 굴려줄 것 같나"라고 되물으며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일본연금의 이러한 기금 및 의결권 운용 방식은 자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기금의 투자 비중이 7%로 글로벌 최고 수준인 국민연금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사태, 청와대 개입에 따른 곽태선 기금운용본부(CIO) 선임 불발 사례 등에서 보듯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국내 주요 기업의 경영에 개입할 여지가 높은 구조다. 조 원장은 "국민연금은 국민들로부터 의무적으로 걷은 일종의 '강제 저축'으로 국민연금제도가 없었다면 민간에서 운용됐을 돈"이라며 "이론적으로도 국민연금이 민간에 기금의 운용과 의결권을 맡기는 것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사가 기금 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비용·인력 등 현실 여건상 의결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데 대해서는 "기업지배구조원 등 상장사 주주총회 안건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의결권 자문사들을 적극 활용하면 비용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다만 그는 "한국의 경우에는 해외와 달리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대기업 집단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퇴직연금 운용을 맡고 있기 때문에 상장사, 자산운용사 간의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높다"며 "앞으로 제도가 안착하는 데 이러한 이해 상충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원장은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계기로 자산운용사에 대규모 기금과 의결권을 맡긴다면 세계 1위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같은 기업이 국내에서도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자산운용업계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비용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데 오히려 이는 자산운용사에게 기회"며 "자산운용사들이 국민연금으로부터 기금을 위탁받아, 세계를 무대로 투자를 하고, 동시에 의결권 행사 역량을 축적해 나간다면 블랙록 같은 글로벌 수준의 자산운용사로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지난 17일 공개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초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 원장은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여부를 2020년에 다시 검토한 것에 대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데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며 "기금 맏형 국민연금의 동참이 늦어진 상황에서 일단 첫발을 내디뎌 단계적으로 시행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평했다. 조 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밴더빌트대 오언 경영대학원 조교수를 거쳐 1997년부터 고려대에 재직하고 있다. 전문분야는 기업지배구조·인수합병 전략 등이다. 2016년 6월에는 3년 임기의 기업지배구조원장에 취임했다. 그 후 조 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그해 12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을 완료했다. 동시에 일부 기관투자가 가입 신청해, 한국에 스튜어드십 코드 신호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제정위는 해체돼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로 전환, 조 원장은 발전위원장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안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뒷받침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