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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기완 "예술가, 한계 없어요"···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등록 2019-02-18 06:12:00   최종수정 2019-02-25 10: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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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완 ⓒ국립발레단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탁월한 기량은 수석무용수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수석무용수는 홀로 춤 추는 것이 아니다. 자기장 안의 각 점에서 자기력의 방향을 나타내는 자기력선처럼 군무진이 수석무용수를 둘러싸야 한다. 다른 무용수들의 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훔쳐야 하는 이유다.

입단 8년 만에 국립발레단 최고등급 무용수인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김기완(30)은 충분조건까지 갖춘 무용수다. 큰 키(188㎝)와 다부진 체격, 깔끔한 용모, 그리고 안정적인 연기가 인상적인 그는 무엇보다 사람 좋기로 유명하다.

김기완의 승급 소식이 전해진 직후 소셜 미디어 반응이 보기다. 그의 동료들은 김기완 승급 축하 메시지 등을 태그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김기완이 '못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을 경쟁하듯이 잇따라 올린 것이다. "갈수록 이상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올라오는 거예요. 제 모습이 점점 우스워지는데 기분은 좋더라고요. 하하."
 
발레단은 그의 리더십에 큰 기대를 건다. 파드되(2인무) 등 춤 파트너로 가장 많이 호명되는 이도 김기완이다. 주변에서 사람 좋기로 칭찬이 자자하다고 하자 "통장? 반장? 같은 느낌은 줍니다"라며 웃었다. "제 성격이 좋다기보다 발레단 사람들 성격이 워낙 좋아요. 다들 잘 뭉치고 컴퍼니 분위기가 좋아요"라며 몸을 낮췄다.

"이제 발레계에서 중간 정도 위치가 됐어요. 딱히 모범적으로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아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 위해 춤을 춰온 것도 아니죠. 하지만 이제 춤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김기완은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직후 강수진(52)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겸 단장과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수석무용수 자리의 무게감이 더 느껴진 계기가 됐다. "수석무용수의 멘털에 대해 많은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뭘 해야 될 지 정리가 됐어요. 강 단장님과 대화하면서, 오랜만에 머리가 깨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기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재학 시절 러시아 스승이 누차 강조한 무용수는 '가장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을 여전히 뼛속 깊숙하게 새기고 있다.

수석무용수 승급은 자신의 기량을 다시 점검하고 살펴보는 기회도 됐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쉬울 수 있어요. 위에서 계속 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죠. 동기 부여가 쉽지 않잖아요. 사실 예술가는 끝이 없어야 하죠. 랭크만 중요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연습하는 습관, 리허설하는 습관을 다시 살펴보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예술가'라는 말을 점점 믿게 됐다. 자신은 좋은 예술가가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좋은 예술가'에 가까운 무용수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기민(27)이라고 꼽았다. 김기민은 김기완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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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마타하리' ⓒ국립발레단
작곡을 공부한 어머니가 김기완이 열 두 살, 김기민이 아홉 살 때 발레를 권했는데 이들 형제는 단숨에 낯설던 이 장르에 반해버렸다. 이들 '발레 형제'는 실력뿐 아니라 우애 깊기로도 유명하다. 김기완 역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무용수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김기민이라 형을 언급할 때 동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지겨울 법도 해 이번에는 절대 김기민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는데, 김기완이 예고도 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동생 이야기를 먼저 했다. 동생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미소 짓는 형의 진심도 파악하지 못한 지레짐작은 피하시라. "이번에도 국립발레단에서 승급 소식을 공식 발표하기 전에 기민이가 먼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렸어요."

 김기민은 누누이 말했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무용수는 형이라고.

김기완은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기량과 연기를 펼쳐왔다. '지젤'의 알브레히트,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스파르타쿠스'의 스파르타쿠스,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카라보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 등이 대표 캐릭터다. 특히 지난해 '마타 하리'의 마슬로프 등 감정 연기가 기반이 돼야 하는 드라마 발레에서 도드라져왔다.

"드라마 발레가 좀 더 편안하기는 해요. 그런데 클래식 발레에서는 다소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요. 클래식 발레는 규격이 필요한데, 몸과 움직임의 라인에 아직 자신이 없어요. 몇년 전 내한한 프리드만 보겔처럼 피지컬 좋은 무용수는 엄청난 근육 라인을 가지고 있거든요. 타고난 것이 있어 부럽기도 하지만, 저도 그렇게 라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죠. 제가 단점이 있는 무용수지만, 포기하지는 않아야죠."

한예종 재학 시절 오른쪽 다리 아킬레스 건이 끊어져 1년4개월 동안 쉬기도 했던 김기완은 부상 방지 등 철저한 자기 관리에도 힘 쓰고 있다. 프로로서는 당연하다는 태도다. "몸 관리로 기본 체력을 키워야 해요. 체력이 안 되면 무대에서 다칠 확률이 더 커져요"라며 기본부터 차근차근 되짚고 있다.

마흔살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이 목표라는 김기완은 스스로에 대한 판단이 분명했다. 자신은 안무 능력이 없다며 안무가 욕심은 아예 품지도 않는다.

"물론 제 개인 발표회라면 그냥 즐겁게 안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춤에 엄청난 재능이 있지는 않지만, 노력할 수 있고, 집중은 할 수 있거든요. 안무는 좀 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현재는 훌륭한 작품에서 제 춤을 완벽히 보여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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