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103세 김병기 화백 "색채에 대한 욕망이 인다"
2016년 이후 3년만에 개인전 '여기, 지금' 회화 20점다섯개 감의 공간·역삼감형 나부등 반구상 눈길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5월12일까지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100살이 넘었는데 그림 그리고 전시하고, 세계에 없는 일이야. 역사상 없는 일이야." 3년만에 다시 만난 그는 '살아있음의 위엄'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어떻게 이런 일을 내가 할수 있게 됐나. 우선 하나님께 감사하고, 여러분께 감사하다." 1916년 평양 출생의 그는 2019년 4월 10일 103세 생일에 개인전을 열었다. 김병기 개인전 '여기, 지금(Here and Now)'.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3년만에 여는 전시다. 신작 회화 20점을 선보인다. 여전했다. 목소리엔 힘이 넘쳤고 기억력도 좋았다. "당신 기사를 읽고 매우 좋았다. 지금도 가끔 읽는다"며 손을 맞잡고 반가워했다. 3년이나 흘러 혹시나 몰라보리라 했던 생각을 무색하게 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현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103세에도 김 화백의 정정함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저 '살아있는 노인'이 아니었다. 화가로서, 현재 진행형이다. 미술사를 꿰뚫으면서 논리적으로 작업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장수 시대'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수 없는 예술가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나는 추상을 통과하고, 오브제를 통과하고 다시 수공업적이고 원초적인 선으로 돌아왔다." 1934년 일본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アバンギャルド洋畵硏究所)에 입소, 그곳에서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접한후 추상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친 후, 1939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김 화백은 ‘50년 미술협회’를 결성하고, '피카소와의 결별'(1951)이라는 글을 발표, 제8회 상파울로비엔날레에커미셔너로 참여하는등, ‘추상화가 1세대’ 로서의 전위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1965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하다 70이 넘어 국내화단에 복귀했다. 팔순에는 로망이었던 파리에서 1년간 작업활동을 했고, 2017년 101세에 국내 최고 권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걸어온 김 화백은 이번 전시에 '그리기의 중요성'과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담벼락을 그린 그림은 선이 면이 되어 나왔다. 결국은 다 선이다. 점이 연결되면 선이 되고 선이 연결되면 면이 되고 면이 입체를 만들고 색채가 된다" 그것이 "회화의 조건"이라고 했다. 김 화백은 "이제 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며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강조해 달라"고 주문했다. "너는 뭐하고 있느냐" 묻냐고 한다면."나는 추상을 넘어, 오브제를 넘어 원초적인 수공업적인 상태에서 선에 도달했다. 그런 상태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상을 넘었다는 것, 오브제를 넘은 것도 굉장한 이야기다. 원초적인 상태에서 그린다고 하는 것을 내 자신이 하며, '그린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추상을 넘었다는 말은 보통 중요한 말이 아니다"며 강조했다. "20세기는 양식을 만든 시대였고, 21세기는 그 양식을 부수기도 한다.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시대라고들 한다. 나는 나대로 동양성을 가지고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려고 한다." 그는 "추상화가처럼 작품 활동을 했지만 사실 나는 체질적으로 형상성을 떠날 수 없었다. 형상과 비형상은 동전의 앞뒷면에 불과했다"고 설파했다. 결국 회화는 현실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눈에 보이는 형상만을 그대로 재현한 회화는 모방된 장식품에 불과하다. 비시각적이지만 실재하는 것들, 인간의 감정이나 관념들과 같은 정신적인 것들 또한 화면에 구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형상과 정신의 교감이 화면에 나타나야 진정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 타이틀 '여기, 지금'은 그가 미국에서 접한 장 푸랑수아 리오타르(Jean François Lyotard, 1924~1998)의 글 '포스트모던의 조건(Laconditionpostmoderne)'(1979)에서 따온 것이다. 리오타르는 바넷 뉴먼(1905~1970)의 '영웅적이고 숭고한 인간(VirHeroicusSublimis)'(1950-51)을 예시로, ‘여기,지금(Here and Now)’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지금(now)’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현재의 시간, 의식적으로는 알 수 없는 시간을 말한다.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김 화백은 "질문 하라"며 잠시 말을 멈췄다. 3년전 '그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던 그는 이번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원초적인 동시에 영원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린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거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거다. 나는 보이지 않는 그림, 추상을 한 사람인데 눈에 보이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3년전부터 그린 '누드'화가 보여준다. 화면엔 역삼감형이 중앙에 그려져있다. 김 화백은 "역삼각형은 내가 옛날부터 그려온 형상으로 불안함이 있지만 깊이가 있는 것"이라며 "몬드라인이 이야기하는 수직과 수평을 항상 의식한다"고 했다. '역삼각형의 나부'를 제목으로 단 그림은 실제 여성 누드를 보고 그렸다. 그는 "젯소에 목탄으로 자꾸 그렸다, 지웠다, 그렸다, 지웠다를 3년간 했더니 누드 그림이 천근만근 무거운 캔버스가 되었다"면서 "우리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고 했다.
"역삼각형속에 그린 것은 어려운 상태를 극복해 나온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가 이 만큼 된 것은 우리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한 것이다. 한국 여성은 똑똑했다. 당신은 할머니의 할머니의 하나의 분신이다. 한국여성이 세계에서 제일 이쁘다. 점수 받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작가와 캔버스는 일심동체. "코끝이 짜릿해지고 눈물이 핑돈다. 작품이 완성됐다"는 신호다. 이번 전시에 내건 신작은 노란색, 빨간색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그는 "그동안 오랜기간 다크 브라운을 썼다. 그래서 화면이 시커멓게 됐는데, 지금은 색채에 대한 내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컬러플한 작품...아..앞으로?" 라고 말하던 그는 잠시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더듬었다. "지금 내가 몇살인데...앞으로?..."라고 말하다, 껄껄 웃어제쳤다. "한국은 백색이 좋다고 일본인이 이야기 했다"며 단색화에 대한 지적도 했다. "단색화는 한가지 색으로 덮는거다. 단색화의 내용은 있지만, 신라 고려 이조 시대에 직공들이 한 정신을 다시 가져오는 것이 단색화의 주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전개시켜나가는게 예술가다. 한국이 색채적으로 단순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 의상을 봐라. 얼마나 칼라플한가." 말은 청산유수처럼 이어졌다. "인상파는 태양광선에서 오는 색채고, 우리는 오방색에서 온다. 북현무(玄武), 남주작(朱雀), 동청룡(靑龍), 서백호(白虎), 이게 오방색이다. 가운데는 황색이다. 우리나라는 칼라플하게 살아왔다. 그걸 살려야 한다. 무시하면 전통에 어긋난다. 우리 산수를 보세요."라며 잠시 말을 고른 그는 강원도 산불 이야기를 꺼냈다. " 강원도 불 붙을때 MBC가 강원도를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난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인줄 (알았는데) 몰랐어. 그렇게 아름다운 산하가 다른 나라에는 없다. 우리는 축복받은 나라에 살고 있다. 여러분이. 칼라를 살려야 한다."
김 화백은 언술(言述)의 고수다. 적확(的確)하면서도 함축 또한 깊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말이 곧 도(道)라 했다. 말이 통하니 이 또한 도통(道通)이다. 굳이 구분해서 말하면 김화백은 ‘일상형 도통’"이라며 "당신에겐 자기구원형 도통이 지난 반생의 과제였다. 김화백은 프랑스 미술가 뒤샹(MarcelDuchamp)을 롤 모델로 삼았던바, 그가 말하던 뒤샹의 작가정신은 <위대한 유리> 작품 이력에 잘 담겨 있었다 했다"고 소개했다.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합리 또는 이성의 세계고, '영원하다 할 수 없는 도'는 불합리 또는 감성의 세계인데 반대 둘이 일치한다는 미학이 김화백 자신이 지향해왔던 바'다." 김 화백의 그림을 비평가들은 촉지(觸知, haptics)적이라고 불렀다. 직선이 수직으로 수평으로 또는 사각(斜角)으로 먼저 포치(布置)한 것을 근거로 삼각, 역삼각, 직사각의 평면이 생겨난다. 그 사이로 한없이 자유로운 무수한 붓질이 사선을 이루면서 그림의 역학 구조를 만들어낸다.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 내는 방식으로 빈 여백을 만든다. 이는 하나의 선으로 구현되어 조형적이면서도 비조형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짧고 강렬한 필선이 그어지고 나누어진 추상과 구상, 그 틈새에 있는 그의 작업은 선적이면서 회화적인 추상화다. 그에게 있어 여백과 선에 의한 분할된 공간은 무위의 개념이자, '지금'이다. 늘 자신의 작업이‘무(無), 허(虛), 공(空)과 같다’ 말한다. 그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하는 0의 공간을 실현하고자 한다 "예술에 있어 ‘1+1’의 답은 2가 아니다. 3도 되고, 5도 되는,모든 게 다 되는 세계다. 복합성의 예술,그것은 창의적 복합이다. 2는 절충이다.예술에 있어 제일 나쁜 게 절충이다.노자의 세계는 0이다. 나는 노자 철학을 존중한다." 사선을 긋는 그의 붓놀림은 이젠 자유로움의 몸짓이다. 순수의 세계다. "나는 모든 것을 통과한 뒤의 종합적인 단계가 지금의 내 세계다."
이중섭·김환기·유영국등 생전 친했던 작가들 이야기가 다시 나왔지만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할때 나를 들러리처럼 취급하는 것은 불만이다. 그들이 한국미술을 높이 끌어어올린 것은 맞지만 이미 간 사람들"이라면서 "나는 나대로 주역이다. 조역이 주역처럼 나오는 영화들 있지않나. 난 그런 사람이다. 마라톤으로 치자면 장거리 선수"라며 '지금 여기 살아있는 화가'라는 자부심을 전했다. 103세. 생일에 펼친 개인전은, 2016년 개인전 이후에 제작된 신작들이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요즘 마음이 약해져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실은 마음이 복합적이다. 그림 몇장 가지고 생일을 맞아서 전람회를 하는 것에 대한 약함이 있다. 100살이 넘어 전시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세계에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월적인 것과 약함이 교차상태에 있다. 그런데 나는 노인이 되어서 그런지 이해하기 힘든 현대미술에 부정의식이 있다. 어느새 내가 그렇게 되어있다. 현대미술의 허위성에 반발하는, 저항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개념미술, 남는게 뭐냐, 변기만 남고 TV박스만 남았다. 길게 이야기하면 복잡해진다. 또 질문해라. 하하하." 아직도 무한히 할말이 많은 그는 대화를 즐겼다. 결국 그림도, 예술도 '살아있는 자의 것'이다. 산 자가 그린 '여기, 지금'을, 또 산 자에 지금을 연결하는 것이 예술이다. 103세 화백, 김병기의 '지금, 여기'가 감각을 일깨운다. 인생은 희로애락 칵테일, 삶은 기쁨이다. 우리 모두에게 건배를 전한다. 전시는 5월12일까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