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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30대에 쓴 에세이집 '장수 고양이의 비밀'

등록 2019-05-24 16:42:41   최종수정 2019-06-03 09: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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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어느날 나는 고양이와 함께 자고 있었다. 낮잠이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아내는 나가고 집에 나 혼자라 고양이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자고 있었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베개를 나란히 놓고서. 뮤즈는 사람처럼 베개를 베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이쪽을 보고 누워 코를 골거나 내 귀에 콧김을 뿜어서 이따금 잠을 설칠 정도였다."

일본의 스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70)가 30대 시절에 쓴 에세이들이 담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나왔다. 하루키와 막역한 사이인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1942~2014)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문학동네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네 번째 시리즈다.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잇는 작품이다.

1995~1996년 '주간 아사히'에 연재된 에세이 60여편이 담겼다. 당시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과 '태엽 감는 새'로 대중적인 성공과 문학적 성취를 함께 거뒀다.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사건 피해자를 취재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한창 작업 중이었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어우러지면서 위트가 넘친다. 기발한 발상과 섬세한 감성, 천재적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안자이의 아기자기한 삽화와 어우러져 맛깔스러움을 더한다.

'노르웨이의 숲'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하루키 붐이 일었을 때의 소회, 작가로서의 정체성, 출판계의 현실에 대한 단상 등을 엿볼 수 있다. 반려묘를 향한 애정어린 글도 눈길을 끈다. 하루키는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부터 샴고양이 '뮤즈'를 길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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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평소 꿈이란 걸 별로 꾸지 않는다. 학자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하니, 사실은 나도 남들만큼 꿀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면 머릿속에 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눕자마자 잠들어 REM 수면의 수렁 속에서 장어처럼 아침까지 쿨쿨 자버리기에, 가령 꿈을 꾸었다 해도 그 기억은 국자로 사막에 물을 뿌리듯 스르르 허무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리는 모양이다. 꿈 입장에서도 기껏 오색찬란 재미난 이야기를 펼쳐줬는데 '아침이면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 하면 허망할 터다. 나도 변변찮으나마 소설가니까 그 기분은 잘 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기억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니까 할 수 없군요."

"여행에 무슨 책을 가져갈 것인가는 동서고금 누구나 고민해본 고전적 딜레마일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독서 성향이 다르고, 여행 목적과 기간, 장소에 따라서도 선택의 기준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약 당신에게 '이런거라면 언제 어떤 여행이든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만능 책이 한 권 있다면 인생이 편해질 확률이 상당히 높다."

"음악은 때로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똑바로 날아와 우리 마음에 꽂힌다. 그리고 몸의 조성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그렇게 근사한 체험은 자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는 몇 년에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기적 같은 해후를 찾아, 우리는 공연장과 재즈 클럽을 드나든다. 실망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다 하더라도." 홍은주 옮김, 344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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