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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선아 "암네리스를 연기할수록 성숙해졌다"

등록 2019-11-03 11:29:33   최종수정 2019-11-11 1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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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아이다', 오리지널 마지막 시즌 출연

13일부터 2020년 2월2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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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아 (사진 =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컬계 비욘세' 정선아(35)는 '캐릭터 장인'이다. 파워풀한 생명력이 일품인 그녀가 맡은 뮤지컬 역들은 새 숨결을 부여 받은 듯 다시 태어난다. 

그녀에게 '정암네'라는 수식을 붙여준 뮤지컬 '아이다'의 '암네리스'가 대표적이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 '암네리스' 공주, 그리고 두 여인에게 사랑받는 장군 '라다메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아이다'에서 자칫 암네리스는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방해하는 조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암네리스는 약혼자였던 라다메스를 노예로 끌려온 이웃 나라 공주 아이다에게 빼앗기는 비련의 주인공이다.

겉보기에 강해보이지만 실은 약하고 소박한 정선아와 닮았다. 정선아는 이 역을 강렬하면서도 애절하게 소화하며 '아이다'의 주역으로 만들었다.

"배우는 어떤 역을 해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야 해요. 자기만의 정체성과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암네리스가 제게는 딱 그러한 역이었죠. 암네리스가 철없고 물질적인 것만을 원하는 여자로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깊은 슬픔, 아픔, 사랑을 갖고 있거든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암네리스를 통해 깨달았고, 암네리스를 연기할수록 성숙해졌어요."

7년 만에 암네리스 돌아온 정선아는 "이번에 연습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난다"며 애틋해했다. 최근 신사동에서 만난 그녀는 '아이다'에 대한 마음이 더 절절해져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국내에서 '아이다'의 오리지널 버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다' 제작자인 디즈니 씨어트리컬 프로덕션이 이번을 끝으로 '아이다'의 브로드웨이 레플리카 버전 공연을 중단하기로 했다. 레플리카는 음악과 대본은 물론 안무, 연출, 의상, 무대 등을 오리지널과 똑같이 제작하는 것을 가리킨다. 13일부터 2020년 2월2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무대가 '아이다' 오리지널 레플리카 공연의 마지막이다.

팝의 거장인 영국 싱어송라이터 엘턴 존과 뮤지컬 가사의 전설 팀 라이스가 탄생시킨 '아이다'는 2005년 국내 초연 때 막대한 물량으로 공연이 불가능하다고 전망됐다. 당시 1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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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이 뚝심으로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2010년 재연, 2012년 삼연 2016년 사연까지 4번의 시즌 동안 732회 공연, 73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정선아는 2010년과 2012년에 이 작품에 출연하며 명실상부 스타덤에 올랐다. 2013년 '제7회 더 뮤지컬 어워즈'와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휩쓸기도 했다.

"이번 연습에서 모든 신을 임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굿바이니까'라는 생각에 더 그런 것 같아요. 한 작품을 세 번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그 만큼 사랑을 받아서 가능한 일 같고요. 책임감이 더 무거워지네요."

'아이다'는 눈이 황홀한 뮤지컬로 통한다. 40톤 컨테이너 9대 물량의 무대, 800여벌의 의상과 60여개의 통가발, 900개의 고정 조명, 90대가 넘는 무빙 라이트 등을 기반으로 삼은 휘황찬란한 무대 장치와 조명 덕이다.

특히 암네리스가 '마이 스트롱기스트 수트(MY STRONGEST SUIT)'를 부르며 패션쇼를 벌이는 장면이 관객의 찬사를 자아낸다. 특히 정선아는 이 장면에서 모든 관객을 휘어잡는다. 많은 후배들이 오디션에서 '제2의 정선아'를 꿈 꾸며 이 곡을 부른다.

"예전에는 솔직히 정선아가 좀 더 잘 드러났으면 했어요. 그런데 이제 모든 장면에서 제 색깔을 옅게 하고 암네리스 이야기를 좀 더 진중하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아이다와 라다메스를 이어주고 싶은 마음을 더 잘 표현해서 관객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더 따듯하셨으면 해요."

사실 정선아는 2005년 초연 때 아이다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 어린 마음에 주인공이라 여겨지는 아이다에만 눈길이 쏠렸다. 그래서 아이다처럼 보이려고 피부를 그을리는 태닝까지 하고 오디션장에 갔다. 

하지만 키스 배튼 협력 연출은 "너는 암네리스 색깔을 갖고 있으니 다음에 암네리스 역으로 오디션을 보라"고 조언했다. 이후 재연 때 암네리스로 오디션을 봐 당당하게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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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네리스 정선아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정선아는 누비아 출신으로 라다메스의 부하가 된 메렙 역을 초연 등에서 연기한 김호영에게 암네리스 역을 빚졌다고 귀띔했다. 김호영은 남성 배우지만 스타일과 패션 감각이 여성 배우 못지 않은 재간꾼이이다. 배우들이 원캐스트로 나섰던 2012년 '아이다' 공연에서 정선아와 김호영은 같은 대기실을 썼다. 당시 김호영이 본인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며 정선아는 흡족해했다. "제가 받은 박수의 반은 김호영 씨에게 돌려야 한다"고 했다.

스무살이 채 안 된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정선아는 또래가 없어 항상 막내였다. 하지만 그 덕에 김호영 같은 좋은 선배, 감독들을 만나 많이 배웠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놓지 않는 이유다. 중국에서 어학연수 를 하는 가운데도 지난 6월 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의 첫 단독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가는 등 의리도 중요하게 여긴다. 정선아는 "나이는 다르지만 함께 걸어가는 분들이 아직 주변에 있다는 것은 진짜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을 발탁해준 신시컴퍼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다. 신시컴퍼니는 정선아의 데뷔작 '렌트'의 제작사이자 '아이다'의 제작사이다. 박명성 전 대표는 현재 예술감독을 맡고 있고, 현재 최은경 대표가 살림살이를 챙기고 있다.

정선아는 "뮤지컬이 물론 상업예술이지만 신시컴퍼니 분들의 마인드는 좀 달라요.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지 않고, 줏대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죠. 제 친정과도 같은 곳이에요"라며 웃었다.

정선아는 '렌트'로 데뷔한 이래 17년 동안 무탈하게 꾸준히 성장해왔다. '드림걸즈' '지킬 앤 하이드' '아이다' '에비타' '드라큘라' '광화문연가' '위키드' '킹키부츠' '데스노트' '안나 카레니나' '보디가드' 등 27편가량의 뮤지컬에서 활약했다. 올해 초 국내 개봉한 뮤지컬 영화 '메리포핀스리턴즈'의 한국어 더빙판에서도 활약했다.

작년 '웃는 남자'를 끝으로 중국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며 잠시 휴식기를 보냈다. 러브콜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행을 택한 그녀의 행보에 일부에서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선아는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일 수 있어요. 하지만 중국으로 가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고 무작정 갔죠. 어학원 가서 고생도 많이 했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웃었다.
 
"나이를 먹고 가서 힘든 부분도 많았어요. 처음에 말도 통하지 않았죠. 무엇보다 일을 안 하니 갑자기 불안한 거예요.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고 초조해지기도 했죠. 그 새 관객들에게 잊히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들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덕분에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어요. 배움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거죠. ‘아이다’로 돌아오니 또 이렇게 행복하게 맞아주시고요. 하하."

중국에서 한국 뮤지컬과 한국 뮤지컬배우들의 힘을 새삼 느꼈다는 정선아는 "중국 친구들도 생겨서 앞으로 중국과 한국이 뮤지컬 교류를 하는데 교두보 역도 하고 싶다"고 바랐다.

정선아는 대극장 뮤지컬배우로 굳혔지만 언제가는 소극장 뮤지컬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작품은 뮤지컬 '틱틱붐'. 뮤지컬 '렌트'와 '틱틱붐', 단 두 편의 뮤지컬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1960~1996)의 작품이다.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불꽃처럼 살다가 요절한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꿈과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이의 삶과 사랑,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런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열망은, '렌트'로 데뷔한 정선아가 한결같이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방증한다. "서른즈음에 꼭 출연하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더 늦기 전에 출연하면 더할 나위 없겠죠." 항상 형형한 눈빛, 정선아 그리고 그녀의 캐릭터가 계속 살아 숨 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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