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서울=뉴시스】임종명 기자 = 검찰 출신 변호사로 승률 100%를 자랑하는 대형 로펌의 수장인 한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사고로 전신이 마비됐다.여기에 말기 암까지 겹쳐 두 달이라는 시간만 주어진 시한부다. 그는 한 친구를 통해 버킷리스트 시행에 나선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이 당한 사고의 가해자와 만나는 것. 이 남자는 사고로 아내와 아이까지 잃었다. 그런데 남자는 가해자를 만나 용서를 구한다. 남자는 재벌가 자녀의 성폭행 사건을 수임해 승소한 적이 있다. 가해자는 당시 성폭행 피해자의 아버지다. 남자는 당시 자신의 변호로 성폭행 피해자가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고 인정한 뒤 사과한다. 가해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자는 운다. 당신이 그렇게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냐고. 당신도 내 아내와 딸을 죽이고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냐고 소리친다. 가해자도 운다. 그 날 그 사고로 이런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며 미안해한다. 그리고 딸은 재판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한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퍼펙트맨'의 한 장면이다. 서로가 상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잘못을 저지른 상황이다. 남자가 먼저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상대의 사과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용서를 구했다. 용서란 무엇인가.가해자가 스스로 죄를 반성했다면 상대가 어떻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건가.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자격이란 게 있을까. 있다면 어떤 상태일까. 어쩌면 용서를 구하는 것 자체가 그저 자기 위안을 위한 시도는 아닐까.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는 많은 궁금증이 떠올랐다. 최근 출간된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용서라는 것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시몬 비젠탈의 자전적 소설 '해바라기'를 읽고 나면 저자가 던진 물음에 대해 지식인, 종교인, 예술가 등 53명이 내놓은 답변을 마주하게 된다. 시몬 비젠탈은 유대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지냈다. 그는 어느 날 나치의 친위 대원이었던 중환자 카를에게 불려간다. 카를은 비젠탈에게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싶다며 용서해달라고 애원한다. 비젠탈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고 카를 곁을 떠났고 카를은 다음날 죽었다. 비젠탈은 용서하지 않았고, 카를은 용서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뒤 독자들을 향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는다. 비젠탈의 수용소 동료 아르투르는 그에게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고, 사람들이 서로 동등한 인간으로 보게 되면 용서니 뭐니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야. (비젠탈의 선택이) 옳다는 사람도, 그르다는 사람도, 자네가 그를 용서하지 않은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도 나올 거야"라고 말한다. 해바라기 뒤에 담긴 저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르투르의 말처럼 다양하다. 누군가는 "참회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혹자는 "살인자에게 용서를 베푸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치즘의 승리를 뜻한다"고 했고, 폴란드 출신의 누군가는 "섣부른 용서는 다른 모든 희생자에 대한 배신"이라며 비젠탈의 선택을 지지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현대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 5·18 민주화 운동 당시의 군 폭력 문제 등에 대한 문제에 접근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평한다. 이 책은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용서할 자격이 있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도와준다. 박중서 옮김, 472쪽, 1만98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