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안'에 뒤집혔던 여야, '밥그릇' 놓고 일치단결
3당 원내대표, 선거구획정위에 재의 요구…정의당도 동의오후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재의 요구안 신속 결의선거구 획정 책임 여태 방기하고 '농산어촌 대표성' 핑계선거법 위배 여부도 명확치 않아…획정위 밤샘회의 할 듯
이를 놓고 밥그릇 앞에서는 역시 여야가 따로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구 획정안의 국회 제출이 그동안 지연된 책임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역구를 사수하기 위한 여야의 힘싸움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미래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와 민생당 유성엽 공동대표(민주통합의원모임 원내대표) 등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구 획정안의 재의를 요구하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3당 원내대표는 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이 '선거일 전 15개월이 속하는 달의 말일 현재 주민등록표에 따라 조사한 인구로 한다'는 선거법 제25조 1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 '선거구 획정에 있어 인구비례 2대 1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선거법 25조 2항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선거구획정위가 서울시(605㎢)의 약 8배 크기에 달하는 5개 군과 1개 시를 하나로 합쳐 속초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고성군 선거구로 만든 것은 농어촌 배려라는 선거구 획정의 기본 정신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정의당의 윤소하 원내대표도 같은 뜻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내 밥그릇 지키기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국회 주요 정당이 똘똘 뭉친 셈이다. 3당 원내대표의 합의문 발표 뒤 약 2시간20분 만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선거구획정위가 제출한 선거구 획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를 신속히 의결했다. 전날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1대 총선의 시·도별 의원정수와 인구 상·하한선을 확정한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세종특별시, 강원 춘천시, 전남 순천시, 경기 화성시에서 1개씩 총 4개 선거구를 늘리는 대신 서울 노원구, 경기 안산시, 강원, 전남에서 1개씩 총 4개 선거구를 통합하는 게 골자였다.
이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13개월 전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총선 1년전에는 지역구를 확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자기 이해득실에만 몰두하다가 4·15 총선의 운동장을 확정해야 하는 책임을 방기한 탓이 크다. 그 결과 예정된 선거 사무일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선거구획정위의 판단에 따라 독자안이 전날 제출된 것이다. 그나마도 선거구 획정안 제출 시한을 354일이나 넘긴 것이었다. 선거구획정위는 그동안 수차례 국회에 선거구 획정을 촉구했지만 여야 간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결국 이같은 상황을 정치권이 스스로 초래한 셈인데도 여야는 획정안을 받아들자 발칵 뒤집어졌다. 선거구 통합 대상에 포함된 의원들은 입장문이나 성명을 통해 "심각한 게리멘더링", "정략적 야합으로 만들어진 누더기 선거구" 등으로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야가 선거구 획정안을 반려한 명분도 약하다는 지적이다. 행안위는 선거구 재획정을 요구하면서 "이번 선거구 획정안은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 반영에 노력해야 한다는 선거법 25조 2항에 역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선거법 25조 1항을 위반했을 경우에만 선거구 획정안의 재의 요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농산어촌 지역대표성 문제로는 재의를 요구할 수 없다.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획정위가 제출한 획정안을 넘겨받은 소관 상임위나 특별위원회는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1회에 한 해 다시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선거일 15개월 전 인구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선거법 25조 1항의 기준에 명백하게 위배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안위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지나치게 멀고 상호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 하나의 선거구가 되거나 생활권이 전혀 다른 지역이 하나의 지역구가 돼 지리적 여건·교통·생활·문화권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인구 수에 비례한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못해 지역 간 의석수 불균형이 심각하게 발생해 선거법 25조 1항의 취지와 정신을 훼손했다"고도 했다.
게다가 속초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고성군 같은 '메가 선거권'이 탄생한 근본 이유도 여야 간 협상 실패로 각 지역별 정수가 조정되지 않은 데 있다. 선거법상 인구 상한선을 초과한 춘천시의 분구가 필요해 강원 지역의 다른 선거구 1개는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안에 대한 여야의 '비토'로 선거사무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초 여야는 오는 5일 본회의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재외선거인과 국외부재자 명부를 오는 6일까지 작성 마감하고 16일에는 최종 확정해야 하는 일정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재의 요구에 따라 물리적인 시간이 촉박해 5일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행안위는 이날 중에라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재획정안을 만들어 오면 오는 5일 오전에라도 전체회의를 열어 처리하고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후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획정위는 이날 오후 7시부터 관악청사에서 재획정안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밤샘회의를 통해서라도 결론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김세환 선거구획정위원장은 이날 행안위 전체회의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단 회의는 소집하되 행안위가 의결한 것이 어떤 것인지, 선거법 25조 1항 위반이 무엇을 들어서 얘기한 것인지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선관위 관계자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선거구가 바뀐 예비후보자나 유권자들은 아직까지 내 선거구와 후보자가 확정이 안돼 선관위가 불확정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법보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빨리 확정해 주시는 게 맞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