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의선 시대②]정몽구 회장이 직접 '승계지시'
14일 재계에 따르면 1939년 3월19일생인 정몽구 회장은 올해 82세로, 최근 가족들과 모인 자리에서 아들인 정의선 수석부회장에게 회장직을 맡으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경영능력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판단, 회장직을 넘기기로 결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7월 대장게실염 수술을 마친 후 서울아산병원에 세달째 입원 중이다. 대장게실염은 대장벽 바깥쪽으로 주머니가 돌출, 이물질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통상 회복에 2주 가량이 소요된다. 정몽구 회장의 경우 서서히 건강이 회복되고 있지만 노령으로 입원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 입원 이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부친의 병실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의 건강이 많이 회복됐다고 들었다"며 "정 회장이 정의선 수석부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주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이에 따라 승계준비 작업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회장 취임으로 정몽구 회장은 20년간 맡아온 그룹 회장직에서 내려오게 됐다. 1938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정몽구 회장은 경복고와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1970년 현대차 서울사무소 부품과 과장을 맡았으며, 현대차 서울사업소 부장, 현대건설 자재부 부장, 현대차 서울사업소 이사, 현대차서비스 사장, 현대정공 사장, 현대강관 사장을 지냈다. 1982년 형 몽필씨가 사고로 세상을 뜬 후에는 장자 역할을 맡았다. 현대정공, 현대자동차서비스, 현대강관, 현대산업개발, 인천제철 회장을 지냈고, 1998년 현대차 회장에, 1999년 3월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2000년에는 동생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왕자의 난'을 벌였고, 현대차 계열사만 분리해나와 지금의 현대차그룹을 일궜다.
정몽구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부도위기에 처한 기아차를 인수해 현대차그룹의 외연을 넓혔다. 정 회장은 인도공장을 증설하고, 중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등 해외시장도 개척했다. 특히 현대·기아차의 해외공장을 건설하며 국내 부품업체 공동진출을 유도, 한국 자동차산업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2010년에는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을 품에 안았다. 같은해 자동차사업을 세계적 규모로 확장하려면 고급 자동차용강판을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2010년 충남 당진에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를 준공했다. 2014년에는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아 재계를 놀라게 했다. 현재 현대차가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수소차'의 기틀도 정몽구 회장이 마련했다. 1998년 수소전기차 개발에 착수한 현대차는 2000년 11월 시험용 싼타페 수소전기차를 선보였고, 2013년에는 세계 최초로 투싼 수소전기차를 내놓으며 수소차 양산시대를 열었다. 정몽구 회장은 2006년 조성된 수소 연구개발(R&D)거점 마북연구소를 찾아 "수소는 민주적인 에너지"라며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도 자동차는 굴려야 하지않느냐"라고 말했다. 또 "하고 싶은 기술을 마음껏 다 적용해보라"며 투자의지도 나타냈다. 자동차산업에 대한 정몽구 회장의 공헌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한국인 최초로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 포드 창립자 헨리 포드,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벤츠 창립자 칼 벤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정의선 회장은 그룹 시무식을 처음으로 주재한 2019년 "정몽구 회장의 의지와 품질경영, 현장경영의 경영철학을 계승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의 판도를 주도해 나가는 게임 체인저로서 고객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그룹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