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새로운 아이돌·인간 블랙핑크, '세상을 밝힌' 이유
넷플릭스 최초 K팝 아티스트 다큐멘터리'블랙핑크:세상을 밝혀라' 190개국에 공개
하지만 14일 세계 190개국에 공개된 넷플릭스 최초 K팝 아티스트 다큐멘터리 '블랙핑크:세상을 밝혀라'(Blackpink: Light Up the Sky)의 시청을 끝낸 순간, '셀럽 블랙핑크'가 아닌 인간 김제니(제니)·김지수(지수)·로제(박채영)·리사(라리사 마노반)를 톺아보게 된다. 그렇다고 다큐가 억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소금. 산. 지방. 불'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던 한국계 미국인 캐롤라인 서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담백하다. 러닝타임 1시간19분 동안 담아낼 것만 담아냈다. 그 중 가장 많이 할애되는 건, 어린 시절 집을 떠난 멤버들의 마음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서 유학한 제니,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로제, 태국이 고국인 리사까지. 이들은 각각 6년, 4년, 5년 간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며 땀, 눈물을 흘렸다. 학교를 중퇴한 로제를 비롯해 이들에게 평범한 학창 시절의 추억은 쌓이지 않았다. 비교적 뒤늦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추억을 쌓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지수는 "연습생 기간 동안 우는 것을 딱 한번 봤다"(블랙핑크의 프로듀서 테디 박)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야무지게 생활해왔고 멤버들을 감쌌다. 다큐에서 로제가 집, 가족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연습생 생활을 쉽지 않았다. 멤버들은 매월 소속사 대표와 프로듀서 앞에서 개인·그룹평가를 받았다. 연습생 초반에는 '경쟁'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블랙핑크 멤버들은 연습생 생활을 긍정했다. 제니는 "K팝을 K팝답게 만드는 건 연습생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네 멤버가 어느 날부터 한 팀으로 움직이게 된 순간, 이들은 가족이 됐다. 다큐에서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지만 지난 2018년 11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펼쳐진 블랙핑크 국내 첫 단독 콘서트가 떠올랐다. 2016년 데뷔, 꾸준히 성장해온 블랙핑크가 왜 걸그룹 형세의 주도권을 잡았는지 확인시켜줬던 공연. 백조 같은 연악한 몸에서 쏟아져나오는 래핑과 절창에 맹목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을 쏘아대다가도 소녀의 미소와 애교에, 관객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화끈한 라이브 밴드 연주도 블랙핑크의 기를 누르지 못했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그들은 블랙핑크를 외쳤다. 제니는 "코첼라 관객들은 저희의 음악이 단순한 K팝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계셨어요. 저희의 음악을 새로운 무언가로 봐주시는 것이 정말 좋았죠"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음악에 열려 있는 새로운 시대를 산다는 것이 기뻐요." 블랙핑크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아이돌. 블랙핑크는 다른 K팝 걸그룹보다 멤버 숫자는 적지만, 각각이 문화 아이콘이 돼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뚜렷하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전화로 음식 주문도 못했던 제니는 이제 '인간 샤넬'로 불리며 음악계뿐 아니라 패션계도 주름잡고 있다. 리사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녀를 소셜 미디어 최고 스타로 만들어줬다. 로제가 제이슨 므라즈의 '아이 원트 기브 업(I Won't Give Up)'을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아이돌 너머, 그 이상을 본다. 경기 군포 산본의 대가족에서 출생한 지수는 뚝심이 무엇인지 안다. 이번 다큐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은 블랙핑크 멤버들이 '블랙핑크 다섯 번째 멤버'라고 입을 모은, YG의 간판 프로듀서인 테디 박이다. 힙합그룹 '원타임' 출신인 테디는 그룹 '빅뱅' 등과 작업하며 YG를 대형 기획사로 키운 일등 공신이다. 현재는 블랙핑크의 메인 프로듀서다. 하지만 프로듀서로 전향한 이후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베일에 쌓여 있다. 그런 그가 블랙핑크 멤버들을 위해 기꺼이 인터뷰에 나섰다. 테디는 "블랙핑크는 유니크하며 다양한 문화의 결합"이라고 했다. 블랙핑크 전에 넷플리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여성 아티스트는 단 3명뿐이다. 비욘세, 레이디 가가, 테일러 스위프트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이다. 누군가는 갓 데뷔 5년차를 맞이한 블랙핑크가 쟁쟁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가라며 물음표를 찍는다.
블랙핑크는 이미 가가를 비롯해 두아 리파, 셀레나 고메즈, 카디 비 등 세계 톱 여성 가수들과 협업했고 케이티 페리, 체인스모커스, 맥스 등 세계적 다른 뮤지션들로부터 협업하고 싶은 1순위 아티스트로 꼽힌다. 이번 다큐 제목은 블랙핑크의 대표곡 중 하나인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속 노랫말 '세상을 밝혀라'(light up the sky)에서 차용됐다. "멤버들이 같이 있을 때 가장 빛난다"는 의미도 담았다. 콘서트 막바지, 로제가 울기 시작하자 멤버들이 따라 우는 장면에서 제목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제니는 "자랑스러워 흘리는 눈물"이라고 했다. "저희가 블랙핑크로서 이뤄낸 것들이 자랑스러워요." 블랙핑크 멤버들은 벌써부터 멀리 내다보고 있다. 리사는 "나이를 먹고 저희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내줘도 괜찮아요. 누군가 계속 저희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만 한다면요. 우리가 얼머나 밝게 빛났는지 다들 계속 기억해줄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한동안은 블랙핑크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코첼라 이후, 다큐 공개 전후로도 역사를 계속 쓰고 있기 때문이다. K팝 걸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2위, '아티스트 100' 1위 등을 차지했다. 제니는 부담감을 느끼냐고 누가 물어오면 이렇게 답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 아주 잘하고 있고 아직 더 보여드릴 게 많으니까요.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이에요." 화려한 아이돌의 삶은 백지로부터 쉽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풍파와 고통에 깨지고 긁혀 만들어진 검정 속에서 세상을 밝힐 빛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블랙핑크:세상을 밝혀라'는 그걸 보여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