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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해녀의부엌' 김하원·석재원 "비대면 시대, 사람과 사람 이야기에 더 관심 갖게 되죠"

등록 2020-11-09 09:25:59   최종수정 2020-11-16 09: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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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제주서 새로운 공연 '부엌 이야기' 쇼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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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김하원(왼쪽) 해녀의부엌 대표와 석재원 디렉터가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1.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해녀의 부엌 김하원(29) 대표는 아동 연극 치료를 업으로 삼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합교 연극원 출신으로 '드라마 테라피'를 심도 깊게 배우고 싶어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고향인 제주도에 잠깐 내려간 것이 삶을 바꿨다.

어머니로부터 제주 해녀가 힘겹게 길어 올린 해산물의 값어치가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해녀의 집안에서 태어나 해녀 이모들과 함께 자라난 청년 예술가는 그 말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제주 구좌읍 종달리 부둣가의 극장식 레스토랑과 해산물 유통을 겸하는 '해녀의 부엌'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랫동안 창고로 내버려졌던 어판장을 공연장 겸 식당으로 탈바꿈시켰다. 해녀 어멍(어머니의 제주 방언)을 비롯 해녀의 이야기로 공연을 만들고, 해녀가 직접 잡은 해산물로 요리를 낸다. 해녀와 관객의 Q&A 시간도 인기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컸을 때 잠시 문을 닫기도 했지만, 방역 지침을 지키는 가운데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오는 11일 제주에서 새로운 이야기인 '부엌 이야기' 쇼케이스도 연다. 내년 초에 정식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다. 기존 공연도 계속 이어간다.

최근 석관동 한예종에서 만난 김 대표는 "공연이라는 장르는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함과 신뢰를 준다"고 말했다.

예컨대, 제 값을 받지 못하던 제주 종달리 특산물인 '뿔소라'는 '해녀의 부엌'을 통해 소비 시장을 창출, 새로운 판로를 열었다. 제주의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악착 같이 버티기 위해 뿔이 팔처럼 돋아난 뿔소라와 매일 그 찬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여든 여덟살 해녀의 삶은 닮았다.

김 대표는 해녀의 삶에서 인간과 이야기를 끌어냈다. 연기과를 나왔지만,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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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김하원(왼쪽) 해녀의부엌 대표와 석재원 디렉터가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1.09. [email protected]
"연기라는 학문은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힘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죠. 연기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줬어요."

하지만 고민은 있었다. '해녀의 부엌'은 학교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기분으로 만들었다. 서른 살 안팎의 청년 예술가 10여명이 뭉친 스타트업이다. "회사로서의 체계를 잡는 것이 어려웠어요. 여러 일을 하다 보니, 공연에만 집중할 수도 없었죠."

25년간 공연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프로듀서인 석재원 디렉터를 만난 것이 행운이 됐다. 석 디렉터는 전미도가 주연한 연극 '비(Bea)', 정동환·방진의의 2인극 '하이젠버그' 등을 제작한 베테랑 프로듀서다.
 
김 대표는 "작년 가을 쯤에 팀 빌딩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왔어요. 외부에서 공연 요청도 점점 많아지면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디렉터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석 PD님이 오셔서 외부의 스태프를 모아 주시고, 저희 조직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석 디렉터는 일찌감치 '해녀의 부엌' 콘텐츠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이은석 무대 디자이너가 가교 역할이 돼 두 사람이 만났다. 처음에는 '그냥 만나보자'는 생각이었지만, 김 대표를 만나고 그녀와 공연에 더 흥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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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김하원(왼쪽) 해녀의부엌 대표와 석재원 디렉터가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1.09. [email protected]
석 디렉터는 '해녀의 부엌' 공연에 대해 "보완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스타일로 매만지다보면, '해녀의 부엌'이 갖고 있는 "존엄성이 없어질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신 자신의 사회 생활을 좀 더 공유하려 애썼다.

'해녀의 부엌'은 조직은 수평적이다. 김 대표와 석 디렉터의 관계가 멘티, 멘토처럼 보이다가도 동료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로즈(김하원 대표), 리타(석재원 디렉터) 등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자랑하는 IT 기업처럼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아울러 석 디렉터는 새 공연인 '부엌 이야기' 창작진 구성에 공을 들였다. 뮤지컬 '쓰릴미', '블러디 사일런스 : 류진 더 뱀파이어 헌터'의 이대웅 연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이진욱 작곡가, 연극 '사막 속의 흰 개미'와 '궁극의 맛'의 황정은 작가 등 대학로에서 내로라하는 창작진이 뭉쳤다.

기존 공연은 해녀의 삶 자체가 주제였다면 이번 공연은 해녀의 문화로 파생된 음식, 그것을 만들내는 부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섬 제주 어판장을 떠나 육지 그리고 해외에서도 공연이 가능할 수 있게끔 구상 중이다. 젊은 배우들이 등장하며 일부 장면에서는 영상도 삽입된다.

'해녀의 부엌' 공연의 힘은 무엇보다 일상에서 뿌리 내린 삶을 무대 위로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해녀 이야기'는 89세 해녀의 삶 그 자체예요. 처음에는 연기를 한다는 사실에 해녀 이모들이 부끄러워하시기도 하셨는데, 본인 삶을 자연스레 녹이고 관객분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치유를 받는다고 하셨어요. 89세 할머니는 엄청 우셨어요. '내 인생을 부끄러운 것만으로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죠. 이 공간에는 거짓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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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김하원(왼쪽) 해녀의부엌 대표와 석재원 디렉터가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1.09. [email protected]
해녀의 생활력 강한 기운을 김 대표는 진작에 물려 받았다. 고등학생 때 한예종 예비학교 연기 영재 과정을 위해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자취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가장의 역을 한 어머니, 이모들을 보면서 잡초 같은 생활력을 길렀다"고 했다.
 
석 디렉터는 김 대표에 대해 "우뇌와 좌뇌를 동시에 쓰는, 공연계에서 보기 드문 인물"이라면서 "사업적 수완도 좋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크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고집을 절대 꺾지 않는 것"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처음에는 그런 부분이 경력자로서 당황스러웠어요. 하하. 하지만 '해녀의 부엌'은 김 대표를 비롯해 처음부터 접해온 친구들이 전문가죠. 특히 김 대표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아요. 고집을 부릴 건 부리고, 나머지는 믿고 의지하며 지지해주죠. 제주도의 특성인지 모르지만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사람입니다."

김 대표가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예술계 대다수가 온라인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더 사람에 집중하는 뚝심을 보일 수 있는 이유다. 온라인 시대에는 결국 더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를 찾게 된다는 것이 김 대표의 판단이다.

김 대표는 "예술은 결국 사람은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증명이 될 겁니다. 비대면 시대에 사람과 사람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를 공부한 것이 마케팅,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연기는 모든 영역에 적용이 됩니다. 기업 스토리를 만들 때도,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요. 앞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과 키(Key)가 될 거예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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