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실종 된 국회…巨與는 입법독주, 小野는 지리멸렬
민주당 입법독주로 '반쪽 입법부' 전락…의회 협치 위기법안 밀어붙이다 무리수·실책…"법적 안정성·신뢰 저하"야권은 지리멸렬 상태 反文연대 함몰, 여당 독주 부추겨대여 공격만 치중, 대안정당 증명 못해…민심 흡수 한계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민주당의 입법 속도전에 야권에선 "입법 독재"라는 비난을 쏟아냈지만, 야권의 지리멸렬 속에정부·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이나 반문(反文) 연대에 함몰된 전략이 자업자득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최우선 입법과제였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과 공정경제3법 등을 처리한 데 이어 국정원법 개정안과 '대북전단금지법(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기 위해 연말 임시국회까지 가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지층 이탈하자 입법 강행…무리수와 실책, 법안 끼워넣기도 속전속결로 입법을 강행하다보니 부작용도 속출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최장 90일 이내 활동을 보장하는 안건조정위를 신청했지만 민주당은 77분 만에 끝냈다. 낙태죄 관련 공청회가 진행될 법사위 전체회의에선 공수처법 개정안을 기습 상정해 의결했다. 야당이 신청한 반대토론은 토론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종결했고, 다급하게 처리하다보니 법안 표결 전 공수처 예산 내역이 담긴 '비용 추계서'를 의결하지 않고 생략하는 촌극도 빚었다. 민주당은 정무위 안건조정위에서도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정의당 배진교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했다가 전체회의 의결 과정에서 다시 합의를 뒤집어 정의당이 강력 반발했다. 5·18 왜곡 처벌법은 국방위에서 법사위로 넘어가 급하게 처리되다보니 여야가 합의한 형량(5년 이하 징역)이 반영되지 않고 원안(7년 이하의 징역) 상태로 의결해 처벌 수위를 다시 정정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절차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문제가 있다"며 "한번도 시행해 보지 않았는데 공수처법을 바꾼다는 것도, 공수처 안전장치 중 하나가 야당 비토권이었는데 그걸 없애고 끼워팔기 식으로 다른 법안들을 처리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3차 추가경정예산안과 임대차 3법, 이인영 통일부장관·박지원 국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도 반대하는 야당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대신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은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은 국정원법 개정안 등 나머지 개혁법안도 12월 임시국회에서 모두 강행 처리할 기세다. 여권의 이 같은 입법독주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동반 하락으로 내부적으로 팽배해진 위기감과 무관치 않다. 정치권에선 "호남과 청년층, 진보성향의 전통적 지지층 이탈 현상을 보면서 여권 지도부가 핵심 지지층을 지켜야겠다는 방침을 굳힌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민주당은 (개혁법안 처리를) 지체해버리면 집권 4년차에 국정 성과가 다 날라가고 지지층이 분화된다. 자칫하면 대통령도 레임덕에 걸릴 수 있어서 180석을 밀어붙여 문재인 정부 국정 과제를 법대로 처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민주당 입장에선 부작용이 문제가 아니라 성과가 중요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국정 혁신을 바라는 중도층을 끌어 안아 지지율을 회복하려고 할 것"이라고 짚었다. 巨與 입법 독주 일상화 되나…"법적 안정성·신뢰도 저하" 문제는 야당의 존재 가치를 무시하는 집권당의 일방통행이 21대 국회 내내 반복되고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압도적인 의석수 덕분에 여야 간 합의가 없더라도 여당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입법 드라이브를 걸 수 있어 국회에서 야당이 배제된 채 결국 '정치 실종'을 불러올 수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정치는 설득과 타협, 대화를 핵심 요체로 하는데 우리 정치를 보면 '제로섬 게임'을 계속 하면서 후진적 행태를 되풀이 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엄 소장은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으면 사회적 신뢰도 저하되고, 사회적 신뢰 저하는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촛불 민심으로 등장한 민주당과 정부의 최근 일방적 국정운영은 다소 실망"이라고 덧붙였다. 박상병 교수도 여당의 입법 강행에 대해 "법률적인 문제는 없다. 법대로 하는 것"이라면서 "국회라고 하는 것이 법률적인 문제만 다루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치의 공간이고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게 정답"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야당과 협력하든가, 동의를 구하든가, 딜을 한다든지 해야 하는데 지금 여야 관계에선 공수처장 추천처럼 동의를 구하는 게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위기에 빠질수록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입법 강행을 국면 전환을 위한 출구전략처럼 활용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여당이 지난해 말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킨 공수처법을 불과 1년 만에 핵심 사항인 야당 비토권을 폐지하는 개정안을 다시 낸 것처럼 정국 유불리에 따라 법을 임의로 손질해도 지금의 여대야소(與大野小) 구도에선 제동을 걸 만한 견제장치가 사실상 전무한 게 현실이다. 야권에선 "공수처장 임기(3년)가 끝나는 시점과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 거의 비슷해 민주당이 불리할 것 같으면 또 공수처법을 바꿀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 교수는 "법을 자의적으로 막 개정하면 어떤 명분이 있더라도 합리화하기 어렵다"며 "대북전단살포법, 낙태법 등도 단독으로 추진했는데 임대차3법도 혼자 처리하지 않았나. 이럴거면 뭐하러 국회를 여나. 당론으로 정하면 끝이다. 합의제(의회 민주주의) 운영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조 없이 지리멸렬한 야권, 여당 독주 부추긴 셈 이와 함께 무기력한 야당이 집권여당의 자만을 키웠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집권여당의 독주는 지리멸렬해진 야권의 현 상황과 동전의 앞뒷면 관계라는 것이다. 일례로 라임·옵티머스 사건과 관련, 국민의힘은 국민의당·정의당과 함께 민주당과 대척점에 있었지만 특검법 공동 발의에 정의당을 설득하지 못했다. 정의당은 라임·옵티머스 특검과 공수처 출범을 동시 처리하자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수사·기소권 분리 등을 독소 조항으로 보고 법 개정안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야권 공조가 무산됐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 관련 '법치문란 사건 국정조사' 추진 과정에서도 정의당은 "정쟁용 국정조사"로 보고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일부 무소속 의원만 참여한 국정조사요구서는 여론전을 통한 대여(對與) 압박에 한계가 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도 야권 공조가 무산되면서 오히려 무게중심이 민주당으로 옮겨지는 양상이다. 당초 국민의힘은 정의당 강은미 의원을 초청해 정책간담회까지 열고 당 지도부 차원에서 관심을 표명해 정의당과 손을 맞잡는 듯했으나 후속 논의가 지지부진해 실제 야권 공조는 실현되지 않았다. 최근 이낙연 대표가 1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약속하면서 국민의힘이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지적이다.
여당에 맞서 정책 대안 역량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우리 당 부동산 대책 자료를 초반에 몇 페이지 읽어보다가 한심해서 덮었다"고 개탄했다. 정부·여당 실정 반사이익 기대, 反文 연대 의존도 문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반문(反文) 연대나 세력화에만 너무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최근 보수 진영의 정당·시민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자 '반문 비상시국연대' 결성에서 국민의힘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다. 한동안 강성보수 단체와 거리를 두고 장외투쟁에 선을 긋던 전략을 수정하고 아스팔트 투쟁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문정권 폭압이 심해진다고 과거와의 연대로 회귀해선 안 된다"며 "문정권의 실정이 과거 우리 당의 잘못을 모두 없던 것으로 덮어주지 않는다. 문정권과 싸운다는 핑계로 과거와의 연대로 회귀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반문재인 연대와 투쟁은 맞지만, 강경 태극기 세력에 휘둘리거나 탄핵반대 세력이 주도하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며 "문재인 반대를 외치지만, 아스팔트 우파가 중심이 되는 반문 연대는 중도층을 등돌리게 하고 국민들의 눈살을 더 찌푸리게 한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