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잘알]'집단 체벌에서 학교 폭력까지' 스포츠 폭력 어두운 역사
프로배구 이재영·다영 자매, 학교폭력 폭로로 추락1994년 OB베어스 윤동균 감독 단체 체벌…선수 17명 집단 이탈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 고발은 체육계에 폭력이 얼마나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조금만 시계를 돌려봐도 그리 어렵지 않게 폭행 사건을 찾아볼 수 있다. 외신 "한국, 수많은 스포츠 폭력으로 타격" 지난 10일 한 포털사이트에는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중학교 시절 가해자가 했던 21가지 행동을 조목조목 짚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쌍둥이 자매' 이재영, 이다영(이상 흥국생명)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구단은 이들에 대해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영국 데일리메일, 프랑스 AFP통신 등도 이 소식을 전했다. 데일리메일은 "한국은 스포츠 강국으로 동하계올림픽 톱10에 정기적으로 속한다"면서 "하지만 최근 수년 간 수많은 스포츠 폭력으로 타격을 입었다"고 소개했다. 부인할 수 없는 지적이다. 체육계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지도자가 선수에게 폭행을 가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기에 동기간 폭행 사실까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폭력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키움 히어로즈 2018년 1차 지명 투수 안우진은 입단을 앞두고 학교 폭력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키움은 안우진에 정규시즌 50경기 출장정지의 자체 징계를 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3년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NC 다이노스는 2021년도 1차 지명 신인 김유성의 학교 폭력 전력이 드러나자 지명을 철회했다. '기강확립' 명분 아래 끊이지 않는 폭력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불렸던 왕기춘이 2014년 SNS에 남긴 글은 일부 선수들이 폭력에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선배를 욕하기 전에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보세요. 이유 없이 폭력을 가했다면 안타깝겠지만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죠"라는 글을 썼다. 사유가 있다면 폭행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듯한 왕기춘의 발언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기강 확립' 등을 이유로 선수단 내 폭행이란 악습은 매우 오랜시간, 꾸준히 이어져 왔다. 프로야구 선수 이택근(당시 키움)은 현역 시절이었던 2015년 팀 후배 문우람에게 야구 배트로 폭행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 2018년 36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구단에는 엄중 경고 제재가 내려졌다. '폭행으로 경기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은 악습이 계속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2002년 9월에는 당시 KIA 타이거즈 김성한 감독이 포수 김지영을 폭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김지영의 아내는 남편이 김 감독에게 야구방망이로 3차례 머리를 맞아 과다출혈로 병원에 이송됐다고 주장했는데 김 감독은 "제자에 대한 애정이 깃든 사랑의 매였다"고 해명했다. 1994년 OB베어스 윤동균 감독 체벌에 선수 17명 집단 이탈 과거 프로야구에서는 감독의 선수 체벌이 선수단 항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94년 9월 OB베어스 윤동균 감독은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를 지적하며 몇몇 선수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몽둥이를 들었다. 이에 불만을 참고있던 선수들도 폭발, 주전 선수 17명이 짐을 쌌다. 결국 OB는 2군 선수로 시즌을 치렀고, 윤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놨다. 당시 주동자였던 '레전드' 박철순도 연세대 재학 시절 경기에 패한 뒤 후배들에 단체기합과 체벌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불세출의 투수 고 최동원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팀을 이탈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여자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됐던 최인철 감독이 과거 인천현대제철시절 선수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심지어 학원축구 지도자로 몸담으면서 미성년 선수들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 국가대표도 예외 없는 폭력의 굴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역도 77㎏급 금메달리스트인 사재혁은 2015년말 후배 황우만를 때려 전치 6주 부상을 입혔다. 수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도 재기에 성공하며 '오뚝이 역사(力士)의 폭행 사실은 큰 실망을 안겼다. 이후 사재혁은 대한역도연맹으로부터 10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유망주로 꼽히던 황우만도 큰 상처를 입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승훈은 후배 선수 폭행으로 1년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는 2011년과 2013년, 2016년 해외 대회 참가 중 후배 선수 2명에게 폭행 및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훈은 "억울한 부분이 있다"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이를 기각했다. 2015년 9월 남자 쇼트트랙 신다운은 대표팀 훈련 중 후배를 폭행해 2015~2016시즌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2004년에는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을 집단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선수들은 코치진의 끊이지 않는 구타와 언어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프로배구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은 2009년 국가대표팀 코치시절 당시 박철우(한국전력)를 구타해 물의를 빚었다. 박철우는 폭행을 당해 엉망이된 얼굴로 기자회견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대한배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2년 뒤 2011년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으로 복귀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KB손해보험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최근 박철우가 현장으로 돌아온 이 감독에 대해 다시금 분노를 드러내면서 이 감독은 잔여시즌을 포기했다. 자성의 목소리에도 끊이지 않던 체육계 폭행은 최근 더욱 심각한 '범죄'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조재범 전 쇼트트릭 국가대표 코치는 선수 4명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또한 그는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선수를 미성년자일 때부터 30차례에 걸쳐 성폭행,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10년 6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태릉과 진천선수촌의 빙상장,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 등 훈련 장소에서 범행을 저질러 큰 충격을 안겼다. 더욱이 혐의를 부인하는 등 반성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고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 선택은 체육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고 최숙현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규봉 전 경주시청 감독과 주장 장윤정은 지난달 각각 징역 7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스잘알은 '스포츠 잘 알고 봅시다'의 줄임말로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와 함께 어려운 스포츠 용어, 규칙 등을 쉽게 풀어주는 뉴시스 스포츠부의 연재 기사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