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여성 징병제 도입, 미국 실패했고 노르웨이 성공했다
미국,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 징병제 주장노르웨이, 여성 정치인 앞장서 도입 제안박진수 "한국, 남성 역차별 해소에 집중"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발표한 '한국, 미국, 노르웨이의 여성 징병제 논의와 사회적 갈등 연구: 행위자, 쟁점, 갈등 표출과 해소를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성 평등 수준이 높은 유럽에서는 노르웨이가 2013년 6월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결정하고 2016년 7월부터 여성 징병제를 시행했다. 스웨덴은 여성 포함 보편적 징병제를 2018년 1월부터 시행했다. 네덜란드도 2018년 10월 법을 개정해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켰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 역시 2017년 이후 여성 징병제 도입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반면 세계 최강 군대를 보유한 미국은 여성 징병제 도입에 실패했다. 여성 징병제 논의는 있었지만 미국 사회는 최종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미국은 현재 모병제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징병제는 1973년에 폐지됐다. 대신 만 18세 이상 남성은 군 의무병역시스템(MSSS)에 등록해 유사시 징병에 응해야 한다. 미국 내 여성 징병제 논의는 이 같은 배경하에서 진행됐다. 미국에서 여성 징병제 논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치적 행위자와 남성인권 운동가에 의해 제기됐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여성 징병제를 제안한 이는 F. D. 루즈벨트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부족한 간호병을 충당하기 위해서 의무병역법(the Selective Service Act)을 수정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미국이 1973년 모병제로 전환함에 따라 의무병역시스템 역시 중단됐지만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의무병역시스템을 부활시키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동시에 카터 대통령은 의무병역시스템에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비전투 요원으로 등록하라고 요구했다. 2000년대 들어 여성 징병제 이슈는 남성인 찰스 랭글 민주당 하원의원이 발의한 보편적 병역법(the Universal National Service Act)에 의해 주도됐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내 일부 반전주의자들과 남성 인권 운동가들도 여성 징병제 도입을 주장했다. 남성을 위한 국민 연합(the National Coalition for Men)은 2013년 2월 남성만 의무병역시스템에 등록하도록 한 의무병역법이 남성에 대한 성차별이라고 주장하며 이 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역시 2016년 12월1일 여성을 의무병역시스템에 등록하는 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은 약 1여년 동안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다 임기 마지막 주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실현 가능성보다는 상징성에 무게가 실렸다.
공화당은 곧 한 발 물러섰다. 하원 의원들이 여성 의무병역시스템 등록 조항을 제외한 수정 법안을 5월에 발의했고 이 법안이 7월 찬성 217명, 반대 203명으로 통과됐다. 또 상원과 하원은 타협을 통해 2016년 11월 의무병역시스템에 여성을 포함하는 안을 폐기하고 대신 의무병역시스템 여성 포함과 의무병역시스템 폐지 등을 연구할 위원회를 창설했다. 이에 따라 현재 1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the National Commission on Military, National, and Public Service)가 활동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여성 징병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반면 북유럽 국가 노르웨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 중 최초로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결정했고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노르웨이에서 여성 징병제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주도한 것은 사회주의 계열 정당 출신 여성 인사들이었다. 노동당 출신 여성 국방부 장관인 스트롬-에릭센(Anne-Grete Strøm-Erichsen)은 2007년 7월 "만일 우리가 징병제 법을 오늘 제안했다면 인구의 반을 생략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여성 징병제 도입 논의를 주도했다. 그는 노르웨이 정부가 군대 내의 여성 비율을 높이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 징병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앙당 출신 파스터라누 도브로 시장(Bengt Fasteraune, Mayor of Dovre)은 당시 노르웨이의 징병제가 사실상 모든 사람이 복무하는 보편적 징병제가 아니며, 능력을 갖춘 여성이 군대에 복무하기 원하면 군대에 복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굳이 여성 징병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중앙당의 여성 중앙위원회 의장인 베르그하임(Bjørg Bergheim)은 2020년까지 군대 내 여성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수당 대표인 솔베르그(Erna Solberg) 역시 여성들이 군에 지원하도록 독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페미니스트 단체인 '노르웨이 여성 연합(NKF: Norsk Kvinnesaksforening 2019)'은 반대에 앞장섰다. 이 단체는 남성과 여성의 실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상황에서 기계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성 평등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전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에게 사회적 부담까지 부가하는 것은 성 평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강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찬반 대립 속에 여성 징병제는 2009년 총선을 앞두고 연립정부를 형성한 노동당, 중앙당, 사회주의 좌파당의 공식 강령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노르웨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방부 등 정부 부처와 각 정당의 찬성론자들은 여성 징병제가 성 평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성계를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주도했다.
쇠레이데 장관은 군대가 노르웨이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 중에 하나이며, 그 힘이 남자에게만 허락된다면 이는 노르웨이가 추구하는 평등이라는 기본적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4년 뒤인 2013년 6월 노르웨이 의회는 성 중립적 징병제를 위한 결의안을 승인했다. 이후 노르웨이 의회는 2014년 10월 성 중립적 징병제를 반영할 수 있도록 병역법(vernepliktsloven)과 국토수호법(heimevernloven)을 수정했으며 여성 징병제는 2016년 시행됐다.
미국과 노르웨이 병역제도가 우리나라 현실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양국의 경험은 향후 우리 사회의 여성 징병제 도입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박진수 교수는 "미국과 노르웨이의 사례처럼 정부 관료와 의원 등 국가행위자들이 사회적 갈등의 표출과 해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정부, 의회, 정당이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시민 사회의 다양한 논의를 수용하고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시민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갈등을 수용해 제도권 내부에서 안정적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또 "한국에서 여성 징병제 논의가 단순하게 남성에 대한 역차별 해소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돼있는 반면 미국과 노르웨이의 경우 여성 징병제 도입이 가져올 안보적 효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되는 젠더 평등의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며 "안보적 차원, 여성의 평등권 향상 문제, 남성에 대한 역차별 문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병역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