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애증 70년…'쿠데타 동지'에서 '청산대상 정적'으로
하나회 핵심 2인…12·12서도 주도역할盧, 5공 후계자 지켜 차기 대통령까지6공 출범후 '5공청산'...全 백담사 유배全 '대통령이어도 나한테 맞는다' 분개97년 내란죄로 법정서 만나 손잡기도광주책임에 盧는 침묵, 全은 적반하장
[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지난 10월26일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애증 관계다. 삶의 전반기에는 '쿠데타 동지'였고, 후반기에는 정적이었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11기 동기생으로, 1959년 미국 특수전학교 교육을 함께 받고 1970년 베트남 전쟁에도 함께 참전하는 등 남달리 가까웠다. 노 전 대통령은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핵심 일원이었고 전 전 대통령은 회장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군사쿠데타의 주도한 수괴였고, 당시 9사단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전방에 주둔하던 자신 휘하의 29연대를 후방으로 이동시켜 서울을 장악하는 '수훈'으로 5공화국의 2인자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5공화국에서 육군 대장, 장관, 올림픽조직위원장, 여당 대표 등을 지낸 뒤 6·29선언을 주도하고 차기 대통령에까지 오른다. 전 전 대통령은 집권 말기인 1986년 7월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에게 "자네는 일생동안 나와 함께 지낸 일등 참모장"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 급격히 경색됐다. 자신이 신군부의 핵심 일원이었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차별화가 필요했던 노 전 대통령은 국정기조의 하나로 '5공 청산'을 내걸었고,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1988년 3월 전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씨 구속을 시발점으로 2년여간 '5공 비리 정국'이 지속됐다. 궁지에 몰린 전 전 대통령은 1989년 11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강원 인제의 백담사에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출범한 5공비리특별수사부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차규헌 전 교통부 장관, 김종호 전 건설부 장관 등 5공 인사 47명을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서 '노태우가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나한테 귀XXX 맞는다'라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7년, 전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반란수괴·상관살해·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 재판에서 징역 17년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 선고공판 법정에 나란히 선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손을 잡은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그해 바로 석방됐다. 그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건강 악화로 공개 활동이 없었고, 아들 노재헌씨가 5·18광주민주화운동 책임을 사과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고(故) 조비오 신부 비난 등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적반하장식 태도로 일관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망 한 달여 전인 지난 10월26일,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조문은 이순자씨와 전재국씨가 대신 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