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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정만 남은 피범벅 괴물…이근민 '환각 회화'

등록 2022-03-05 06:00:00   최종수정 2022-03-21 09: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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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K 서울’ 올해 첫 전시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피해망상의 배열'등 신체와 장기 엉킨

회화+드로잉 31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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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근민 화가가 3일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개인전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전시 작품 '피해망상의 배열'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2022.03.0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심장과 남근 (Heart and Penis)이 엉켰다. 신체와 장기가 캔버스를 지배한 기괴한 그림이다.

화가는 이근민. 1982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예쁜 그림'이 인기인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먼저 알려졌다. 2016년 미국 뉴욕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 미국 파이어니어 웍스(Pioneer Works)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등 해외에서 활동을 넓혔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콜렉시온 솔로(Colección SOLO)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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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근민 화가가 3일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개인전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전시 작품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는 경계성 인경장애라는 자신의 병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회화 20여 점과 드로잉을 오는 10일부터 5월 18일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2022.03.03. [email protected]


◆'경계성 인격장애' 예술로 승화...'환각 드로잉'

내장이 뒤엉킨 듯한 그림은 일명 '환각 드로잉'으로 불린다. 작가 이근민은 '경계성 인격장애'로 자신의 병리적 경험을 캔버스에 쏟아낸다.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는 애착 능력 결함과 중요한 대상과의 분리 시 부적응적인 행동 패턴, 감정의 불안정성이 중심이 되는 인격장애를 말한다.

2001년 대학생이 된 후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그는 시선과 싸워야 했고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치료 과정에서 경험한 환각은 괴로웠지만 작업의 밑천이 됐다. 당시 신경정신과 의사가 내린 진단명과 이를 표기한 진단 번호는 자신을 향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정의’로 각인되었는데 이 반감과 저항감도 작업의 방향으로 작용됐다.

이근민에게 회화는 병적 고통과 진단이 가져온 억압을 해방하는 통로다. 덕분에 차별화가 무기인 미술계에서 그의 '환각 회화'는 독특함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파편화된 신체와 장기,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 은유적인 형상...가공되지 않은 환각을 예술적으로 구현한 그의 작품은 사회의 규범적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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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스페이스K 서울은 올해 첫 전시로 화가 이근민 개인전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에는 오는 10일부터 5월 18일까지 작가 자신의 병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회화 20여 점과 드로잉을 선보일 예정이다. 2022.03.03. [email protected]


◆ ‘스페이스K 서울’에서 올해 첫 전시, 이근민 개인전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에서 올해 첫 전시로 화가 이근민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And then none were sick)'라는 제목으로 회화와 드로잉 31점을 선보인다.

징그럽고 섬짓한 그림들이 전시장에 채워졌다.  작품 '다친 바보(Injured Dumber)'는 욕정만 남은 피범벅의 괴물로 변한 작가 스스로를 마주한 그림이다. 상처 가득한 육신에서 흘러나온 피의 세포분열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성기가 등장한다.

또 작품 '피해망상의 배열(Paranoia Sequence)'은 분노에서 시작하여 자책으로 끝맺는 피해망상의 단계적 과정을 연작의 형식으로 담고 있다. 10m  화폭에 스펙타클하게 담아낸 '문제 구름(Matter Cloud)'은 이번 전시에 가장 시선을 끈다. 기억과 상처의 퇴적물이 거대한 구름 덩어리를 이루고 다시 그 사이에서 생겨난 기생체가 기억을 빨아먹으며 번식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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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스페이스K 서울은 올해 첫 전시로 화가 이근민 개인전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에는 오는 10일부터 5월 18일까지 작가 자신의 병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회화 20여 점과 드로잉을 선보일 예정이다. 2022.03.0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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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스페이스K 서울은 올해 첫 전시로 화가 이근민 개인전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를 준비했다. 2022.03.03. [email protected]


스페이스K 이장욱 수석 큐레이터는 "그의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개인의 병상일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병리적 기록을 통해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시사하고 더 나아가 규범이 주는 한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신질환의 억압에서 벗어나 환각의 세계를 예술 언어로 풀어낸 그림은 신선한 충격을 가한다. 징그럽다는 느낌은 보는이의 내장까지 미묘파장을 경험하게 한다. 전시는 5월18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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