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귀칼' 이어 '주술회전'…日 애니, 새 시대 연다
日 애니 '주술회전' 미국 박스오피스 2위지난해 '귀멸의 칼날' 이어 또 한 번 성공전형적인 일본 소년만화 세계 관객 겨냥OTT서 쉽게 접해 진입장벽 낮춰 팬 확보뛰어난 연출력·특수효과, 일단 보면 매료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지난 21일 미국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가 내놓은 3월 3주차 미국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엔 어색한 제목의 영화 한 편이 '더 배트맨'에 이어 2위에 올랐다. 'Jujutsu Kaisen 0: The Movie'. 영어 그대로 읽으면 '주줏츠 카이센 0:더 무비'였다. 이 영화는 국내엔 '극장판 주술회전 0'으로 소개됐다. 일본 애니메이션 '주술회전'은 아쿠타미 게게 작가가 2018년부터 주간소년점프에서 연재한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주술사의 이야기를 그린 호러액션물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 중 하나이며,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2020년 말 방송됐다. '극장판 주술회전 0'은 원작 만화 '주술회전 0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핀오프 영화다. 이 작품은 미국 2286개관에서 개봉 첫 주말(18~20일)에만 1480만 달러(약 180억원) 수익을 올렸다. '극장판 주술회전 0'이 확보한 상영관은 3위 '언차티드'(3700개관), 4위 '엑스'(2865개관), 5위 '도그'(3307개관), 6위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2585개관), 7위 '나일 강의 죽음'(2430개관)보다 적었다. 그런데도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극장 상황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반적인 매출 부진 속에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 등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흥행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만화책을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일본 소년만화 애니메이션이 할리우드 대작 영화들을 제치고 미국 관객을 공략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관객의 눈이 달라졌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더이상 일본 애니메이션이 마니아들이나 보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작은 2020년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열차 편'이었다.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4억5480만 달러 수익을 냈다. 일본 매출(3억6480만 달러) 비중이 크긴 해도 이를 제외하더라도 1억 달러(미국 매출 5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수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 '귀멸의 칼날' 역시 '주술회전'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일본 소년만화로, 요괴를 잡는 검사(劍士)의 이야기를 그렸다. '귀멸의 칼날'이 만들어낸 흐름을 '주술회전'이 이어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모습은 국내에서도 똑같이 목격되고 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열차 편'은 지난해 초 개봉해 215만명을 불러모으는 저력을 보이며 그 해 박스오피스 7위에 올랐다. '극장판 주술회전 0'은 지난달 17일 관객을 만나 48만명(2022년 전체 8위)이 봤다. 최민식이 주연을 맡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39만명)보다 많은 관객이 봤고, 21일 박스오피스에서도 5위에 올라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들 두 작품 전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국제 무대에서 충분히 인정받아왔고,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 대표되는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이었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은 전 세계에서 3억5560만 달러 수익을 기록할 정도로 크게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의 흥행 성공과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성공은 결이 다르다.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이 만화책을 기반으로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뒤에 극장판이 나오는 식으로 이어진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애니메이션은 아예 처음부터 극장용 영화로 제작된다. 이 두 가지 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앞에 두 작품의 경우 만화책이나 TV애니메이션을 보지 않고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처음과 끝이 완결된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사전 정보가 필요없이 말 그대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보면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귀멸의 칼날'이나 '주술회전'은 진입 장벽이 큰 작품인데도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과거엔 일본 외 지역에선 일부 소수 마니아층만 제외하면 관객을 찾을 수 없던 일본 만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최근엔 어떻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게 된 걸까. 이 역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의 활성화가 큰 영향을 줬다고 분석된다. 넷플릭스 등이 일본 TV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구독자에게 꾸준히 선보이면서 더 이상 이런 작품을 어렵게 찾아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터치 몇 번, 검색 몇 번만 하면 웬만한 애니메이션은 쉽게 볼 수 있다. 국내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 관계자는 "해외 OTT는 한국에선 드라마, 일본에선 애니메이션을 적극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에 유명 일본 애니는 OTT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시대"라고 했다. TV 애니메이션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자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대한 진입 장벽은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있다. 실제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열차 편'이 미국과 한국 등에서 개봉하기 전, 이 작품 앞 부분 내용을 담은 '귀멸의 칼날 1기'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이를 통해 관객은 넷플릭스에서 '귀멸의 칼날'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가진 진입 장벽을 허물고 마음 편하게 극장에서 이 작품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주술회전' 역시 '극장판 주술회전 0'가 개봉하기 전에 이미 각종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주술회전' TV 애니메이션이 먼저 공개됐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연출력과 기술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주술회전'이나 '귀멸의 칼날' 모두 일본 소년만화 특유의 액션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이를 높은 완성도의 특수효과와 함께 보여주면서 극장에서 즐기는 게 오히려 더 좋을 법한, 말 그대로 영화가 됐다는 것이다. 스토리 면에서 보면, 만화 특유의 허술함이 있을지 몰라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한 감정을 전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극장판 주술회전 0'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액션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비극적이고 눈부신 성장 스토리"라며 "호러 판타지라는 장르를 능숙하게 활용한다"고 평했다. 로스앤젤레스(LA)타임즈 역시 "영화적 표현이 뛰어나고 창의적이다. 기괴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앞서 해외 언론은 '귀멸의 칼날'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했었다. 국내 영화계 관계자는 "앞으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더 흥행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지만, 새로운 흐름인 건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