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나영 "인간적인 것들에 강하게 끌려요"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로 복귀"더하지 않은 담백함에 끌려 단번에 결정"고교 국어교사 박하경의 당일치기 여행"연기하기보다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의도치 않게 사람 사이 감정 교류 경험""무얼 생각하듯 인간적인 것으로 돌아와"[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과연 배우 이나영(44)은 비인간적이었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그의 외모는 분명 일상에서 거의 마주할 수 없는 종류의 것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나영은 같은 종(種)이 맞나 싶은 그런 외양을 하고 있었다. 25년 가까이 연예계에 있었지만, 알려진 게 많지 않은 그의 독특한 활동 방식도 분명 이런 생경함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배우 원빈과 결혼했다는 것, 꾸준히 연기하고 있지만 작품수는 많지 않다는 것 정도가 대중이 그에 관해 아는 정보다. 이렇다 할 논란이나 스캔들도 없었다. 그런 이나영이 최근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로 돌아왔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이후 4년만의 새 작품. 비인간적인데다가 많이 가려져 있는 이 배우는 그러나 보기와는 달리 인간적인 것에 관해 자주 언급했다. "전 사람에 관심이 많아요. 사람, 인간. 어떤 걸 생각하더라도 결국 이 주제로 돌아오러다라고요." 그러고보니 이종필 감독이 연출한 '박하경 여행기'는 현실에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담은 장르물에 집중하는 여느 온라인스트리밍 플랫폼(OTT) 영화·드라마와 달리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일상을 그린다. "저랑 얘기해보기 전에는 잘 모르시는데, 저 사실 엄청 평범하고 별 거 없어요." '박하경 여행기'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 박하경(이나영)이 매주 토요일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행이라고 하면 일상에서 분리된 특별한 사건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엔 그런 게 없다. 박하경은 해남·부산·경주 같은 잘 알려진 국내 관광지에서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을 만나고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 한다. 이 담담한 여행기가 에피소드 8개에 담겨 있다. 이나영은 이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어 시나리오를 받아보자마자 출연을 결정했다. "저한테는 완벽했어요.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뭔가 더해지지 않은 그 담백함이 좋았습니다. 트렌드에 맞는 미드폼(mid-form) 드라마라는 점도 맘에 들었고요." 연기 키워드는 역시나 자연스러움이었다. 매주 여행을 떠나는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라고 하면 그에게 분명 숨겨진 사연이나 상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박하경에겐 그런 게 없다. 박하경은 이나영이 말한 인간적이고 평범한, 보통의 여성이다. 캐릭터가 없는 캐릭터라고 해야 하나. 이런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이나영은 연기를 하기보다는 이 작품이 보여주는 상황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려고 했다. "멍 때리는 것만 잘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멍 때릴 때의 표정조차도 인위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자연스러운 멍 때리기인 거죠. 딱 맞아 떨어지는 것보다는 어딘가 어정쩡하고 뭔가 어색한 그런 상황들이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랄까요." 이나영이 말한 그 자연스러운 어색함과 어정쩡함 덕분인지 '박하경 여행기'는 보는 이를 편하게 해준다. 박장대소 하게 하지는 않지만 미소 짓게 하고, 눈물이 뚝뚝 흐르는 경우는 없어도 가슴이 순간 저릿해질 때가 있다. 당장에 여행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낭만적이진 않아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 같아 위로가 된다. "전 동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상을 보내요. 사실 그런 게 큰 위안이 돼주잖아요. '박하경 여행기'가 그런 것 같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진솔한 대화인 거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는 것 같아요." 이처럼 연기하지 않는 듯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자 이나영은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오는 경험을 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묵언수행을 하는 여성을 연기한 가수 선우정아와 조용히 마주보는 장면을 연기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고 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제자로 나온 배우 한예리와 연기할 때도 그가 특정 대사를 하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자꾸만 떨어졌다고 했다. 한예리 역시 함께 눈물 흘렸다. 물론 이 두 사례 모두 실제로 사용된 장면은 눈물이 없는 것들이었다. 다만 이나영은 그때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상황을 "인간에 대한 애틋함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이 통했나봐요. 그렇게 통하니까 정해지지 않은 감정이 생겨난 거겠죠." 이나영은 만약 20~30대 때 '박하경 여행기'를 만났다면 이렇게 연기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지금만큼 나이가 차지 않았을 때 박하경을 연기했다면, 그가 언급했던 것처럼 멍 때리는 연기에도 무언가를 넣으려고 고민했을 거라는 얘기였다. 어떤 걸 생각해도 사람이라는 주제로 돌아오기를 반복한 끝에 나온 연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는 툭하고 놓는 연기를 좋아해요. 그런 연기를 하고 싶고 그런 연기를 하는 분들을 닮고 싶어요. 그렇게 가다 보니 '박하경 여행기'를 만난 거겠죠." 2018년 '뷰티풀 데이즈' 이후 내놓은 새 영화는 아직 없고, '박하경 여행기'는 4년만에 출연한 드라마다. 그의 작품 활동 주기는 짧으면 2~3년, 길면 4년이 되기도 한다. 그의 이런 방식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의 팬들은 여전히 이나영을 더 많은 영화·드라마에서 보고싶어 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는 작품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제안 들어오는 작품들을 꾸준히 읽어가고 있어요.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꽂히는 걸 하는 겁니다. 이것 역시 자연스럽게 결정한달까요. 물론 '박하경 여행기' 같은 스타일의 작품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번에 좀 덜어냈으니까, 또 꽉 채워서 연기할 수도 있겠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