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비경…협곡·산타열차 타고가는 '낙동정맥트레일'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경북 영주역에서 시작해 강원 철암역까지…. 백두대간협곡열차(V트레인)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가장 깊은 협곡을 잇는 3량 짜리 열차다. 탁 트인 창을 통해 백두대간이 숨겨둔 깊숙한 비경을 즐길 수 있다. 지난 17일 낙동정맥트레일 2구간(9.9km)을 걸었다. 갈 때는 백두대간협곡열차(V트레인)를, 올 때는 '동해산타열차'를 이용했다. ◆백두대간 협곡의 비경과 옛 이야기 담은 역사들 여행은 오전 6시 청량리역에서 시작한다. KTX이음 첫차를 타고 푸르른 경치를 감상하며 1시간40분쯤 달리면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탈 수 있는 경북 영주역에 도착한다. 인근 식당에서 소고기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출발할 시간이다. 백호 모양 기관차에 이어진 빨간색의 복고풍 열차에 오르는 기분이 산뜻하다. 영주역을 출발한 기차는 봉화, 춘양, 분천, 양원, 승부를 거쳐 철암역까지 느릿하게 달린다. 분천역에서는 20분, 양원역과 승부역에서는 각각 10분간 정차한다. 잠시 내려 주변의 풍광을 둘러보며 백두대간의 대자연을 즐길 수 있다. 삼삼오오 여행을 온 이들이 역사에 내려 기차 옆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분천은 여우천에서 내려온 냇물이 낙동강으로 흐른다 해 '부내(汾川)'로 불렸던 지역이다. 1956년 이곳에 분천역이 지어졌고, 춘양목이라 불린 금강송 목재 수송의 중심지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금강송 벌목이 금지되고 산업이 쇠락하며 이곳은 한적한 산골역사가 됐다. 분천역은 협곡을 느릿느릿 오가는 관광열차 '빙하특급(Glacier Express)'의 출발지 체르마트역과 닮은 꼴로 불린다. 한-스위스 수교 50주년이던 2013년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V트레인이 운행을 시작하며 관광지로 새롭게 출발했다. 분천역에 조성된 산타마을은 대자연의 비경 속에 빨간색 산타썰매와 루돌프, 호랑이 등 조형물이 펼쳐져 1년 365일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진관을 둘러보고 산타우체국에 들어가 엽서를 쓸 수도 있다. 영암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역사', '국내 최초의 민자 역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위험한 철길을 따라 승부역까지 걸어가야 했던 주민들이 1988년 이곳이 임시정차적으로 지정된 후 자발적으로 대합실과 화장실을 지어 양원역으로 이름을 붙인 곳이다. 승부역은 이곳에서 19년간 근무한 한 역무원이 남긴 '하늘도 세 평(9.9㎡), 꽃밭도 세 평'이라는 시로 유명한 곳이다.
◆오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대자연…낙동정맥트레일 낙동정맥트레일 2구간을 걷기 위해 승부역에서 내렸다. 승부역에서 출발해 배바위고개, 비동마을을 거쳐 분천역까지 되돌아오는 9.9km구간이다. V트레인이 지나는 구간 중 가장 깊숙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뽐낸다. 등산로로 접어들면 낙동정맥대장군과 청정봉화여장군이 오지를 찾은 여행객들을 맞는다. '독사와 독충을 조심하라'는 안내판에 경각심이 느껴진다. 제법 넓은 길이 이어진다. 과거 춘양목을 실어나르던 길이다. 신갈나무 등 활엽수와 소나무들이 조화를 이룬다. 곳곳에서 뱀딸기가 새빨간 자태를 드러낸다. 배바위고갯길은 이 구간 중 가장 험한 길이다.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우리 군에 발각된 공비들의 이동경로였다. 이곳에 마을을 조성해 살고 있던 화전민들이 인근 마을로 이주하며, 뽕나무골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산뽕나무가 무성하다. 수풀을 걷다 뱀 한 마리를 만나고 화들짝 놀랐다. 앞서 홀로 걷던 등산객이 아래로 다시 내려와 경고를 해준다. 길을 걷다 새끼 3마리를 데리고 이동하는 어미 멧돼지를 만났으니 조심하라는 조언이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멧돼지가 나타날까 조심조심 걷는다. 가파른 계단이 펼쳐진다. 난데없이 모기떼가 모여들어 절로 속도가 붙는다.
드디어 배바위고개 정상. 넓은 나무데크와 벤치가 마련돼 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사람이 만들어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대자연의 한복판에서 눈을 감고, 땀을 식힌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산의 사면을 따라 오솔길이 이어지고, 배바위산의 수호신 500년 된 엄나무가 등산객들을 반긴다. 엄나무에 얽힌 전설이 흥미롭다. 옛날 배바위산에는 사람의 혼을 뽑아먹는 도깨비가 살았다. 산나물을 뜯던 처녀, 나무 하던 머슴들이 도깨비에게 혼을 빼앗겼다. 사람들이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렸고, 산신령은 고갯마루에 엄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하지만 도깨비를 만날까 두려워 아무도 산에 올라가지 않았고, 결국 마을의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 엄나무를 심은 후 며칠을 앓다 죽었다. 이후 누구도 도깨비에게 혼을 빼앗기지 않았고, 엄나무는 500년을 이어오며 산을 지키는 길상목이 됐다.
산길이 끝나고 비동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꽃들과 과일나무가 곳곳에 있는 산골마을이다. 이곳부터 분천역까지는 포장된 길이다. 백두대간과 낙동강 상류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편안하게 걸으면 된다. 운이 좋으면 낙동강 위를 지나는 협곡열차를 조우할 수 있다. 볕이 뜨겁다. 한여름에 이 길을 걸으려면 선크림과 모자는 필수다.
◆강원의 산과 바다 가로지르는 '동해산타열차' 승부역에서 바로 서울로 돌아가려면 다시 'V트레인'을 타고 영주역를 거치거나 '동해산타열차'를 타고 강릉을 거쳐야 한다. 승부역에서 막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확인하니 마침 산타열차가 올 시간이다. 이 열차는 하루에 한 차례 운행한다. 분천역에서 오후 3시42분 출발해 6시22분에 강릉에 닿는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루돌프 장식 등으로 꾸며진 열차는 산길을 느릿하게 달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동해, 묵호, 정동진, 강릉으로 이어지는 푸르른 동해를 보여준다. 강릉에서 서울로 곧바로 돌아오기는 아쉽다. 강릉패스를 예약해 전기자전거로 경포대를 한 바퀴 돈 후 당일치기 여행을 마무리한다. 시간이 넉넉한 여행객이라면 강릉에 하루 더 머물며 경포대와 선교장, 오죽헌, 아르떼뮤지엄 등을 들러봐도 좋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