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홍등가…'미아리 텍사스촌' 철거에 "미래 막막"[현장]
서울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미아리 텍사스촌'10월부터 재개발로 주민 이주…내년 초 철거성매매 업주 "여기 사람들 가난 때문이 대부분""나가면 쉬고 싶어…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성매매 집결지 '미아리 텍사스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떠날 준비를 하던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은 불안한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11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한 골목길. 입구 한켠에 놓여있던 '미성년자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니 허름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일부는 셔터를 내린 상태였고, 검은색 테이프로 건물을 가려 외부에서 비치지 못하도록 한 곳도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붉은 천으로 덮인 포차 모양 공간이 여러 개 보였다. 원래 호객 행위를 위해 만들어진 듯했으나 지금은 인적이 끊겼고, 한편에는 에어컨과 변기, 책상 등 버려진 가재도구와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여기서 30년 넘게 일했다는 김모(68)씨는 "요즘에는 사람이 없다. 일 안 하고 살림만 하는 사람도 많다"며 "여기는 다 죽었다"고 전했다.
'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는 이곳 집창촌은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적인 윤락가였다. 특히 1960년대 말 당시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이던 양동과 종로3가 지역 집창촌이 폐쇄되면서, 그에 따른 풍선효과로 성매매 여성들이 하월곡동으로 모여들었다. 이후 한때 350여곳의 업소가 운영될 정도로 성업했으나 2004년 성매매 특별법 발효와 함께 정부의 집중 단속이 이뤄지며 쇠퇴의 길을 걸었다. 결국 지난 2009년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과 조합 설립을 시작으로 여러 절차를 거쳐 지난해 11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았다. 해당 지역 재개발을 추진 중인 신월곡 제1구역 조합 측은 내년 초까지 이주를 마무리한 뒤 철거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철거된 자리에는 최고 47층 아파트 2244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며, 2025년 하반기에 착공될 계획이다. 검은색 테이프로 가려놓은 건물 문을 두드리자 50대 여성이 나왔다. 자신을 성매매 업주라 소개한 이미란(57)씨는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에 살고 있었다. 이런 방 5개가 다닥다닥 붙은 곳에 업소 여성들이 함께 지낸다고 했다.
이씨는 "사람들이 아무리 성매매를 불법이라고 해도 우리 같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상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제 재개발돼서 내년 2월29일까지 나가라고 하니까 지금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다"며 "보상금도 너무 적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 업소에서 20년간 일했다는 한 여성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를 묻자 "쉬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정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며 "앞으로는 잘 살고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한 여성은 "이런 곳은 없어져야 하는 게 맞는다"며 "이 업에 종사했지만 어쩌면 부끄럽고 슬픈 이 일이 사라져, 가난 때문에 나처럼 이런 일에 종사하는 비극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만 여전히 성매매 업소 10여곳은 성업 중이었다. 외제 차를 끌고 온 한 남성이 포주의 호객 행위에 이끌려 업소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도 보였다. 재개발 구역에 속한 하월곡동 일대 주민이나 세입자들은 내년 2월까지로 이주 기한이 정해졌지만 업주들은 아직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탓이다.
인근 골목에 있던 여성 정모(68)씨는 "다들 살 방도를 알아서 궁리 중"이라며 "생각 없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성매매 여성들도) 서로 여기를 떠나면 어떤 일을 할지 얘기를 안 해서 모른다"고 말을 아꼈다. 이곳에 있던 성매매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별다른 지원책도 없이 재개발과 이주를 밀어붙이는 데 대해선 여성계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부설 여성인권센터 '보다'는 지난 6일 성북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자활 대책이 없다면 가장 취약한 여성들이 더욱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서울시와 성북구는 성매매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자활 지원 대책을 수립하라"고 밝혔다. 한편 인근 주민들은 집창촌 철거를 반기는 분위기다. 50년 동안 성북구에 살았다는 이모(72)씨는 "미아리가 성매매하는 곳으로 유명해서 그간 이 근방에 산다고 제대로 말도 못 했었다"며 "이제 이곳이 허물어진다는 소식에 거주민 입장에서는 속 시원하기도 하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