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무대 위 엇갈린 연인, 달콤·씁쓸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리뷰]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제미이는 떠났어. 이제 없어. … 뭐였을까, 제이미? 우리 함께 나눈 약속들은? …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까?"(캐시 '아직 아파') 스물여덟의 캐시는 방금 5년간 사랑해온 연인을 떠나보냈다. 눈물을 토해내며 첫 만남의 뜨거웠던 순간을 생각한다. 5년 전의 그 시간 속에 스물셋의 제이미가 있다. 평생을 기다려온 여자를 찾은 그는 "너라서 그냥 좋다"고 노래한다. 설렘과 흥분으로 캐시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네가 타투해도 난 상관 없어. 네가 삭발해도 난 너무 좋아. 너희 집이 스페인이든 페루든 캠핑카든 너라서 그냥 좋아. 이제야 찾아낸 거야 … 기다렸어. 나의 여신이 되어줄 너."(제이미 '나의 여신')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삶의 속도가 달랐던 두 남녀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2인극이다. 2002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15년만에 열리는 세 번째 시즌이다. 제이미 역은 최재림과 이충주, 캐시 역은 민경아와 박지연이 맡아 중간휴식 없이 엇갈린 90분의 시간을 가득 채운다. 유대인 작가 제이미, 가톨릭 집안의 배우 캐시는 여느 연인처럼 설레는 감정을 나눴고, 뜨겁게 사랑했다. 신중하게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캐시와 앞을 향해 달려가는 제이미는 서로의 다름에 점점 지쳐간다.
두 사람의 시간이 엇갈리는 독특한 구성과 무대 연출이 극적인 효과를 낸다. 작품 속 캐시와 제이미의 시간은 서로 반대로 흐른다. 캐시의 시간은 가슴 아픈 이별의 순간에서 가슴 두근거렸던 첫만남으로 회귀한다. 제이미는 사랑이 시작됐던 5년 전부터 오랜 다툼에 지쳐 이별을 선택하는 현재로 흐른다. 무대 위 원형의 턴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긴 테이블이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며 작품의 가장 중요한 설정인 '엇갈린 시간'을 표현한다. 90분의 러닝 타임 중 두 사람은 단 한 번 같은 시간에 존재하며 서로를 바라본다.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결혼식'의 순간이다. 캐시와 제이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로를 마주보지만 곧바로 각자의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 캐시는 과거로, 제이미는 미래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작곡한 14곡의 아름다운 넘버들이 두 사람의 사랑과 환희, 고통, 좌절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노래에 모든 이야기와, 대사, 감정을 담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로, 배우들의 가창력을 한껏 즐길 수 있다. 두 대의 첼로, 바이올린,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등 6개의 악기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가 드라마틱한 맬로디와 변주로 가사로 표현하지 못하는 연인의 진한 감정을 전한다. 제이미와 캐시역의 배우는 중간 휴식 없이 90분 동안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노래를 하지 않을 때도 감정연기를 하며 은은하게 상대의 시간을 흡수하고, 투사한다. 극의 마지막. 제이미가 노래한다. "난 널 지킬 수 없었어, 아무리 애써도. 사랑했던 순간들만 두고 갈게. 내 모든 걸 바쳐 사랑했어. … 계속 싸울까 버텨볼까 그만할까. …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어. 안녕, 캐시." 제이미가 두고간 시간 속 5년 전의 캐시는 너무나도 반짝반짝하다. 그래서 관객들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안녕, 내일까지만. 안녕, 벌써 널 보고 싶어. … 난 기다릴거야, 기다릴거야, 너를 … 내일 또 봐. 제이미, 안녕." 오는 4월7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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