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희망도 절망도 없이 성장 청춘 '룩 백'
애니메이션 영화 '룩 백' 리뷰<체인소 맨> 작가 원작 영화화[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애니메이션 영화 '룩 백'(9월4일 공개)에 성장이나 청춘 같은 단어를 붙이는 데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얘기하고 넘어 갈 순 없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건 그런 말을 쓸 때 으레 가져다 대는 아름다운이나 찬란한 같은 수식어와는 거리가 머니까 말이다. 이건 지독하다 못해 극단적인 성장이며, 처절하다 못해 방구석에 쳐박혀 버리는 청춘이다. 여기엔 낙관이나 긍정이 흐르는 대신 비관과 염세가 서려 있다. 그런데 '룩 백'이 이상한 건 체념과 낙담에 물들어 있는데도 절망과 포기를 향해 걸어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삶을 추진하는 것만 같다는 점이다. 역시나 괴상하다고 밖에 말할 방법이 없다.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룩 백>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만화다. 후지모토 작가는 2019년 발표한 <체인소 맨>을 통해 스타가 된 만화가. 얼굴이 체인소(chainsaw·전기톱)로 변하는 데블 헌터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판타지물인 이 작품은 전형적인 일본소년성장만화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도 과감한 스토리 전개와 비호감에 가깝지만 매력적인 작화로 인기를 끌고 있다. <룩 백>은 후지모토 작가가 <체인소 맨>을 연재 중이던 2021년에 내놓은 143쪽 짜리 단편이다. 짧지만, 강렬한 반전을 품고 있는데다가 스토리에 호응하는 그림으로 대체로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애니메이션 영화 '룩 백'은 이 만화를 영상화했다. 후지노와 쿄모토 두 10대 소녀가 만나 함께 꿈을 키워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역시나 성장물이라고 부르는 건 틀리지 않고, 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열정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청춘물이라고 칭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만화에 홀린 듯 빠져 들어가는 시절을 공들여 묘사한다는 점에서 만화가 업인 사람이 만화를 향해 전하는 열렬한 사랑 표현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쯤에서 그쳤다면 산뜻할 뻔했던 '룩 백'은 이 지점에서 몇 발자국 더 내딛으며 급격히 묘해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러닝 타임이 57분으로 중편 분량이지만, 후지노와 쿄모토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마음 속에 남는 감상(感想)은 쉽게 정리되지 못하고 복잡해서 길고 긴 이야기를 지켜본 듯하다. 이 혼란은 '룩 백'이 던지는 질문에서 온다. 이 작품은 뒤에 감춰 놓은 반전을 꺼내들기 전까지, 그리고 반전을 보여주고 나서도 쉬지 않고 묻는다. 재능이라는 것, 인정 욕구라는 것, 창작이라는 것, 열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서 죽음이, 구원이, 상실이 그리고 결국엔 인생이 뭔지, 꿈이 게 뭔지, 만화가 뭔지 묻는다. '룩 백'은 청춘성장물에서 나올 법하고 나와야 하는 질문은 물론이고, 반대로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나올 수 없는 물음까지 번갈아 내놓으며 보는 이를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런 질의들에 때로는 에둘러 답하고, 때로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또 결정적인 순간엔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말하자면 삶이라는 건 그리 간단하지도 그리 녹록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각자 주어진 삶을 그저 살아갈 뿐이라는 거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떤 희망도, 어떤 절망도 없이 말이다. 후지노와 쿄모토의 삶이 어떻게 엇갈렸든 간에 그들은 함께하면서 기어코 발을 내딛는 데 성공했고, 따로 떨어져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정도로도 그들의 만남은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함께 히키코모리가 되고 말았으나 그것 역시 그들의 청춘이었다고 말하지 못할 게 없다. 후지노는 쿄모토 같은 삶을 살고, 쿄모토는 후지노 같은 삶을 살았으니 두 소녀는 정말이지 소울메이트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만 영화 '룩 백'은 만화책 <룩 백>의 컷을 온전히 구현하진 못한다. <룩 백>의 정수는 만화에 몰두하는 후지노의 뒷모습. 네모칸으로 명확히 구분된 컷 안에 시간의 흐름과 그 뒷모습, 그가 있는 방의 변화를 사진처럼 담아낸 게 이 작품의 백미다. 그러나 '룩 백'은 매체 특성상 이런 연출을 보여주지 못한다. 반면 '룩 백'이 원작의 중요한 순간을 더 극적인 감정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쿄모토의 찬사를 받은 후지노가 빗속을 춤추 듯 달려가는 신(scene). 만화는 이걸 한 컷으로 보여주지만 영화는 연속된 동작으로 보여줌으로써 후지노가 느끼는 환희를 더 강렬하게 선사한다. <룩 백>의 날것에 가까운 작화가 영화에 그대로 옮겨갔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