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은 뮤지컬 '빨래'…추민주 연출 "계속 손때 묻혀야죠"[문화人터뷰]
2003년 졸업 작품으로 출발…2005년 국립극장서 초연인기 스타 없이 꾸준히 공연하며 130만 여명 관객 모아"이렇게 지속적으로 내 인생 불태울 거란 생각 못해""삶의 양식 달라졌어도 서로 연대하는 이야기는 같아"내달 20주년 기념 콘서트 "우리가, 서로의 자랑 되길"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저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죠." 추민주 연출은 국내 대표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작품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20여 년을 이끌며, 그 역사를 써왔다. 지난 23일 만난 추 연출은 '빨래'가 자신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나의 자랑이고, 동시에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일과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 제가 (공연에서) 손을 떼게 될지는 모르지만, 손때가 묻으면 묻을수록 빛나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손때를 묻혀나가야만 한다"고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빨래'는 국내 대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꿈을 좇아 서울로 상경한 주인공 나영과 몽골 청년 솔롱고를 중심으로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출발은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공연이었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추 연출이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살이하며 느낀 경험을 작품에 녹여냈다. 추 연출은 "서울에 왔을 때 그 환경이 충격적이었다. 이렇게까지 빈부차이가 난다는 건 이전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을 봤고 "한 사람이 성장하기까지 도움을 주고받는 삶"을 작품에 담았다. 그때만 해도 20여 년의 세월을 '빨래'와 함께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추 연출은 "('빨래'가) 이렇게까지 지속적으로 내 인생을 불태울 거란 생각은 못했다. 도망 가고 싶을 때가 없었겠나. 처음엔 빚도 많이 졌다"며 웃었다. 졸업 공연을 마친 뒤 작품을 들고 제작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줄곧 거절을 당하다 "이 이야기는 우리 힘으로 올리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추 연출은 "결국 제작을 하게 됐다. 그 시작이 '빨래'를 지속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05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초연한 '빨래'는 이후 20년간 끊임없이 공연되며 130만 여명의 관객과 만났다.
인기 스타를 내세우지 않아도, 대대적 마케팅을 펼치지 않아도 '빨래'를 향한 관객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추 연출은 모든 배역을 오디션으로 뽑는 시스템을 비결로 꼽았다. "누구나 졸업하면서 '한 번 도전해봐야지'하는, 꿈을 키울 수 있는 작품이 된 것 같아요. 스스로 준비하고, 애써서 그 관문을 통과했을 때는 정말 대단한 에너지가 나고요." '빨래'는 이제 뮤지컬 스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작품을 거친 뒤 인기 스타로 우뚝 선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정은, 곽선영, 이규형, 정문성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도 '빨래' 출신이다. 추 연출은 "배우들의 꿈을 실현하는 무대가 되어주고 있는 거 같다. 성장 가능성이 많은 배우들이 무대에 서고, 여기서 역량을 더 키워나가면서 (작품도) 같이 성장해 나가는 것 같다"고 짚었다. 20년이은 강산이 두 번은 바뀔 수 있는 시간인 만큼 처음 작품을 올릴 때와는 사회 모습도 달라졌다. "월급은 쥐꼬리 자판기 커피만 뽑았죠(슬플 땐 빨래를 해)"라는 가사를 두고 최근 관객들 사이에 해석이 갈린 게 대표적이다. 극 중 나영이가 여자라는 이유로 커피 심부름을 하는 불합리한 모습을 담았지만, 돈이 없어서 비싼 커피 대신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관객들도 생겨났다. 이에 대해 추 연출은 "너무 재미있더라"며 웃고는 "생활 양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여직원들이 자판기 커피를 엄청 뽑았는데, 이제는 이전 시대의 산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을 반영해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등 소품에도 변화를 주고 있지만, 큰 틀은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추 연출은 "대본에 있는 상황 자체는 바뀌는 게 없다"며 "삶의 양식은 달라져도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들이나 서로 연대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 같다. 작품 안에서 양식 자체를 바꾸기보다 관객들이 동시대에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연출적 차원에서 시대적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많이 줄어든 동네 슈퍼나, 솔롱고가 전화를 하는 공중전화 등도 그대로 둔 이유다. 다만 작품과 함께 세월을 지나오면서 연출의 시선이 자연스레 바뀐 부분도 있다. 추 연출은 "초반에는 나영이가 겪는 고충 같은 것들을 열심히 표현했는데, 지금은 희정 엄마가 그렇게 눈에 들어온다"며 웃었다. 희정 엄마는 자식을 두고 나와,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인물이다. "이전에는 연민의 시선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희정 엄마 나이가 되니 내 방 하나 차지하고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사랑한다고, 돈이 있다고 다 되지도 않고요. 사실 최근에 결혼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엔 희정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일본과 중국 무대에 진출하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대본 일부가 실리기도 했던 '빨래'의 세상은 여전히 넓어지고 있다. 추 연출은 "곧 대본집이 출판될 예정"이라며 "2차, 3차 저작물들이 더 나올 수도 있다. 그건 또 '빨래'의 운명"이라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놨다. 다음 달 8~9일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는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그간 '빨래' 무대에 섰던 배우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총 3회의 공연 관람권은 판매 시작 9분 만에 매진됐을 정도로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잔치가 되길 바라요. 관객의 응원 속에 커온 작품인 만큼 우리가, 서로의 자랑이 되기를 바라고요. 우리 창작 뮤지컬을 같이 키워온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서로 축하하고, 오랜만에 다시 인사도 하고 싶어요." 10년 후, 그가 그리는 '빨래'의 30주년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배우들이 '빨래' 안에서 결혼을 많이 했다. 그들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데, 그 끼들을 다 어떻게 숨기겠나. ('빨래'의) 오디션을 본다고들 하지 않을까"라며 미소지었다. "오디션에 합격하면 '내가 누구 아들인데', '우리 엄마가 몇 차 나영인데' 하겠죠.(웃음) 출연 배우들의 세대도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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