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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열풍...연극계는 왜 성추행이 벌어지나

등록 2018-02-19 18: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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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02.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미국의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가 한 말이 2018년 현재 한국 연극계를 정확히 겨누고 있다.
 
최근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폭탄이 돼 연극계의 어두운 곳을 연이어 터뜨리고 있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이 도화선이 돼 번지기 시작한 미투 운동은 미국 사회를 휩쓸고 한국에서 또 다른 불꽃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활시위를 당긴 격이 됐고, 연극계에서는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이윤택 극단 연희단거리패 전 예술감독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연극계 성폭력…"명백한 권력의 문제"

김 대표는 지난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감독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지방 공연 도중 숙소인 여관방에 불러 안마를 시켰고, 이어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는 '유사 성행위'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전 감독이라고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으나 당시 공연이 연극 '오구'였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이 전 감독임을 특정했다.

김 대표가 해당 일을 겪은 건 10여년 전이다. 그전에 또는 그 동안 이 전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그간 수면 아래 잠복해 있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폐쇄적인 환경에서 공동작업을 해야만 하는 연극계 환경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연극계에 몸 담았던 관계자는 "문학 같은 경우는 혼자 작업이 가능하지만 연극은 함께 하는 작업이라 이곳에 매달려 생계까지 꾸려야 하는 막내 여성 단원들은 입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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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02.19.  [email protected]
연극계, 특히 연희단거리패 같이 연출가가 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단원, 특히 이 전 감독이 주로 성추행을 한 대상으로 알려진 젊은 여단원들은 감히 폭로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연극계의 중론이다.

연희단거리패처럼 밀양연극촌에서 일정 기간 합숙을 하며 이 전 감독이 좌지우지하는 연극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성추행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 대표도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는 말로 이 전 감독이 지위를 이용해 성폭력을 시도했음을 폭로했다. 공연계 관계자는 "누군가는 봤을 테고,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텐데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는 건 '선생님'께 그 누구도 한마디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감독은 지난 2004~2005년 재단법인화 이전으로 국립극장에 속해 있던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을 지내는 등 연극계에서 명망과 권위가 높았다. 그런 이 전 예술감독이 극단을 떠나고 연극 활동을 멈춘다고 선언했음에도 비난이 잦아들지 않자,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결국 극단 해체를 선언했다. 

◇피해자들, 진정한 사과 원한다…이윤택 법적처벌 가능?

이 전 감독이 19일 연희단거리패의 서울 거점인 30스튜디오에서 사과를 했지만, 연극계는 오히려 더 격양된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 전 감독이 성추행은 인정하면서도 잇따라 터진 성폭행 폭로에 대해서는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폭행에 대해 인정하냐는 물음에 "인정할 수 없다. 성폭행은 아니다. 진위 여부는 만일 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는 이 전 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들 중에서는 낙태를 했고,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전 감독의 성추행 사실을 가장 먼저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은 이날 기자회견 관련 보도가 나간 직후 기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정말 욕밖에 안 나온다. 뻔뻔한 태도에 치가 떨린다. 성관계였다고 헛소리하는 그 입에 똥물을 부어주고 싶다"고 격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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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미투 행진. 2018.02.06. (사진 = AP 제공) [email protected]
연극계는 이 전 감독이 법적 절차 운운하는 것을 놓고 볼 때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데 이를 악용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 전 감독이 피해자들에게 가한 성폭행은 공소시효가 지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폭로된 이 전 감독의 성폭력 전력은 발생시점이 2000~2005년 사이에 집중됐다. 더구나 2013년 이전까지 성폭력은 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였다. 이날 기자회견 장에는 이 전 감독으로부터 성추행 등의 피해를 입은 배우가 속한 극단 관계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라"고 목소리 높여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두루뭉술한 이 전 감독의 화법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성관계는 했다는 물음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폭력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상호간에 믿고 존중하는 그런 관계였다"라고 답했다.

합의하에 한 성관계이면 사과는 왜 하나냐는 물음에는 "특정인에 대한 사과를 뛰어 넘어서 모두에 대한 사과 연극계에 대한 사과"라고 답했다. 평소 똑 부러지는 이 전 감독의 화법과 비교하면 듣는 사람이 답답해할 대답니다. 일부에서는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감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는 그에 대한 성추행 또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전 감독이 사과 기자회견을 한 이날 또 다른 피해자가 폭로를 했다.

연극배우인 이승비 극단 나비꿈 대표는 이날 SNS에 2005년 이 전 감독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공연 중인데도 불구하고 낮 연습 도중 저보고 따로 남으라 했고, 그 이유인 즉슨 워낙 큰 대극장이기에 발성연습을 조금만 하자는 거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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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02.19.  [email protected]
이어 "당시에는 CC TV도 없고 그는 그곳에서도 왕 같은 교주 같은 존재이기에 남아서 따로 연습에 응했다. (이 전 감독이) 대사를 치게 하면서 온몸을 만졌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그 날 공연을 못하고 전 마녀사냥을 당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날 몰아세웠고 심지어 당시 제 남자친구가 그 공연에 코러스였는데 그 친구 역시 연희단 거리패였기에 모든 것을 묵인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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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이 전 감독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지난 17일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한국여성연극협회가 성명을 내는 등 각종 연극 단체에서도 이 전 감독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02.19.  [email protected]

 공연계의 미투 운동에 이은 성폭력 또는 성폭행 폭로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명 연극 관계자들이 성추문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밀양연극촌 촌장이자 인간문화재인 하 모씨 역시 이 전 감독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있다. 또 다른 연극계 거장 역시 SNS 등에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으며, 배우로도 활동하는 유명 공연 제작사 대표 역시 성추행 가해자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투 운동에 동참 중인 연극 연출가 김재엽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결과적인 것만으로 평가받는 연극계의 관행 속에서 불합리한 과정과 반인권적인 폭력을 감내해온 수많은 연극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것이 인정투쟁에 목말라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면서 "인정투쟁에서 살아남을 연극 한 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연극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도 무시해 온 우리의 연극이 과연 정당한 연극이었는가 거듭 자문하게 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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