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단거리패 해체...성추행으로 사라진 영광의 30년
부산 가마골소극장을 중심으로 첫 작품 '죽음의 푸가'에 이어 '히바쿠샤' '시민K' 등 독자적인 연극 양식을 실험하며 성장한 극단이다. 1988년 바탕골소극장에 올린 '산씻김'을 시작으로 서울 대학로에 부산 연극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지식인의 고뇌를 다룬 '시민K'가 큰 호평을 받으며 명실상부 전국구 극단이 됐다. 1994년 우리극연구소를 만들면서 서울에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이와 함께 '바보각시' '오구' 등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무대, '햄릿'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피의 결혼' 등 서양 고전을 한국적 양식으로 소화해낸 무대들이 호평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극단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1990년부터는 일본.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해외 공연을 하기도 했다. 중심에는 이 전 예술감독이 있었다. 부산에 기반한 신문사의 편집기자 출신인 그는 비평 활동과 시 쓰는 일을 겸하다 연극계에 주력한 뒤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다. 독자적인 양식과 카리스마로 자칭, 타칭 문화 게릴라로 통하며 연극계 선구자 또는 거장으로 불렸다. 1999년 밀양시의 지원으로 설립한 밀양연극촌이 이 전 감독의 명성을 대변하는 곳이다. 이듬해부터는 매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열어 공연을 하고 젊은 연출가, 배우들을 발굴했다. 하지만, 현재는 이 전 감독 성추문의 본거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일정 기간 이곳에서 합숙을 하면서 생활하는데 이 전 감독이 성추행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도 있었던 셈이다. 한 때 밀양연극촌은 이상적인 '연극공동체'로 통했다. 연희단거리패의 존재감은 서울에서도 대단했다. 특히 이 전 감독은 국립극단이 재단법인되기 전인 2004~2005년 이곳의 예술감독을 맡는 등 명망이 드높았다.
이 전 예술감독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1호'로 통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것이 이유로 알려졌었다. 게릴라 극장의 지원이 끊긴 것 역시 그 때문으로 알려져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고등학교 동창인 이 전 감독은 문 대통령 당선 후 문화권력의 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뜻이 없다며 연극계에 매진했고, 일부에서는 그런 선택에 대해 호평했다. 하지만 이 전 감독은 성추문 이후 나락으로 떨어졌다. 서울연극협회와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한국본부가 이날 성명을 내고 제명 조치를 밝히는 등 연극계에서 퇴출되고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