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중국 견제'에 동참 압박…미·중 고래싸움에 韓 고심(종합)
美 "한국과 EPN 논의"…反중국 참여 압박 심화대중국 견제 참여 땐 中 보복·공급망 차질 우려사드 악몽 재현 우려…미중 갈등서 선택지 좁아靑 "미국, EPN 검토 단계…제안 여부 확인 불가"
미국은 21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대표적인 약탈적 경제 정책의 사례로 지목하고, 한국을 포함한 7개국을 피해국으로 명시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전했다. 특히 보고서는 역내 동맹들과 파트너들에게도 "중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역량 개발과 안보 지원에 참가하도록 촉구하고 있다"며 "인도·태평양 내 가치를 공유한 나라들과 계속해서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민주적 통치를 보장하기 위한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미국이 '신냉전 시대'를 선포한 성격이 짙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대중국 견제 참여 촉구는 역내 국가들에게 향후 미중 사이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정책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키스 크라크 경제차관은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서 "미국, 한국 등 국가의 연합을 위한 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 이니셔티브에 관해 대화했다"고 밝혔다. EPN은 미국이 세계 경제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미국 중심 경제 블록을 구축하는 구상을 말한다. 이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EPN 구상에 대해 "검토 단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글로벌 차원에서 경제 분야에서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는 정도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미국 측이 한국) 정부에 제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부는 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코로나19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대중국 견제에 참여 요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화웨이를 미국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반도체 설계 및 제조에 활용할 수 없도록 규제한 데 이어 중국기업을 겨냥한 미국의 '외국기업 책임법' 등으로 고삐를 죄고 있다. 미국은 중국 견제 움직임이 삼성 등 비중국 글로벌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을 끌어들이고 있다. 크리스토퍼 포드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차관보는 20일(현지시간) 전화브리핑에서 "각국이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술 기업들의 위협을 알아챈다면 점점 더 중국 기술 기업 생태계 바깥에서 신뢰받는 공급자를 찾을 것"이라며 "한국의 삼성을 포함해 세계 전역의 신뢰받는 공급자들에게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국 견제 구상 등에 참여할 경우 경제 보복과 공급망 차질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 조치와 관련해 애플, 퀄컴, 시스코 등 미 기업에 대한 중국 내 제한 및 조사, 보잉 항공기 구매 중단 등 보복 조치를 거론했다. 이미 코로나19 발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제안한 호주에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며 경고장을 날렸다. 특히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로 악화된 중국과의 협력 관계 복원에 시동을 걸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도 딜레마다. 미국이 2016년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은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을 통해 유·무형의 보복 조치를 취했다. 이후 정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협력을 강화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에 힘을 쏟고 있다. 그간 정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등 역내 핵심 국가들의 지역 구상과 관련해 개방성·투명성·포용성·국제성 등 역내 협력 원칙을 기초로 한국의 신남방 정책과의 접점을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미중 모두 선택을 압박하는 양자택일의 국면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은 지난 20일 한미 언론 합동 토론회에서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의 입지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계속 고민해 왔다"며 "현실적인 미중 갈등 구조 하에서 우리의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지가 실무 외교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다만 고 국장은 "코로나19 협력을 통해 미중 관계 갈등 국면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며 "남북 관계 개선을 잘 활용해 나가면 우리한테 주어진 외교 공간이라는게 현실적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부분은 아니라고 믿고, 실무적으로 그런 공간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사태의 대응 과정에서 증명된 한국 방역 모델의 우수성은 한국 외교가 추진하는 역내 협력 원칙에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공하고, 미·중의 요구에 대해 보편적 원칙에 기반해 국익을 추구하는 한국형 중견국 외교가 명분적 우월성 뿐만 아니라 실리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정부는 외교전략조정회의를 통해 미중 갈등의 영향과 한국의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조정회의에는 외교부 뿐만 아니라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 국방부, 산업부 등 15개 관계부처 및 국립외교원과 학계, 경제계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 인사들이 참여한다. 지난해 7월과 12월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