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아미' 40대 아저씨가 쓴 짧은 라스베이거스 방탄소년단 순례기
"사막에 있는 도시인데, 바다에 온 기분 이거 뭐죠?"
그런 상황에서 저 역시 방탄소년단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팀을 절로 응원하게 됩니다. 2년 연속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이 불발됐을 때, 속보보다 아쉬움의 탄식이 먼저 나왔으니까요. '그래미 문턱'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방탄소년단은 기대를 품게 만드는 팀입니다. 10여년간 대중음악을 취재해왔는데 '설마 되겠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 팀이기 때문이죠. 또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국 가수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이렇게 당연해질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2012년 그야말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핫100'에서 7주 연속 2위에 머무른 걸 보고, 현지 진입장벽을 깨기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그 이후에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과 달리 '핫100'에서 한국 가수가 높은 순위에 진입하기는 힘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재작년 '다이너마이트'를 시작으로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마이 유니버스'(콜드플레이와 협업곡)까지 연달아 '핫100' 1위에 올리는 걸 보면서 아직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방탄소년단 멤버 진 말마따나 그래미 역시 "계속 도전 가능하기 때문에" 언젠가 수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품게 됩니다.
사실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가 '더 시티(The city)'라는 타이틀로, 방탄소년단 IP(지식재산권)를 가지고 이 거대한 도시를 채운다는 이야기가 처음엔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상징색인 보랏빛으로 물들고, 각종 전광판에 방탄소년단 콘서트 광고가 등장하고, MGM 그룹 리조트 등 현지 업체들이 방탄소년단과 하이브에 적극 협조하는 걸 지켜보면서 도시 전체가 방탄소년단 위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공식 트위터 계정 이름을 '보라해가스(BORAHAEGAS)'로 바꾸고 도시 알리기에 적극 나서기도 했으니까요. 보라해가스는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애정표현인 '보라해'와 라스베이거스의 합성어입니다.
현지에서 또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세계 3대 분수쇼'로 통하는 벨라지오 호텔 앞 분수대에서 '다이너마이트'와 '버터' 음악에 맞춰 펼쳐졌던 화려한 분수쇼입니다. 9일 지켜본 콘서트에서 '아이돌' 무대가 끝난 후 앙코르를 기다리는 객석에선 분수쇼보다 더 유려한 파도타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는데요. 제이홉은 이 풍경에 "여러분들 저는 방금 바다에 온 줄 알았어요. 여기는 사막에 있는 도시인데, 바다에 온 기분 이거 뭐죠? 여러분들의 웨이브를 보고 정말 감동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죠. 방탄소년단의 앨범 '러브 유어셀프 승 허'(2017) 수록곡 '바다'의 노랫말이 떠오르는 말입니다. 방탄소년단은 이 곡에서 "내가 닿은 이 곳이 진정 바다인가 아니면 푸른 사막인가"라고 노래하기도 했죠. 물론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모든 이들이 호평만 쏟아낸 건 아닙니다. 만달레이 베이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카페 인 더 시티'라는 타이틀로 구성한 한식 메뉴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식을 알리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이번에 하이브는 이번에 '더 시티' 프로젝트를 알리면서 상당 부분 솔직했습니다. 특히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병역과 관련, 병역법 개정안 보류 등 불확실성으로 인해 멤버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으니까요. 아울러 "팬들에게 즐거운 경험, 행복한 경험을 주는 것도 사업의 일환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공존됐으면 한다"고도 밝히기도 했습니다.
카페 인 더 시티 메뉴 중 저는 부러 비건(vegan) 메뉴를 골라 먹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빔국수가 입맛에 맞았습니다. 스캘리언, 참깨, 붉은 고추, 해초 등을 사용했는데 상당히 맛이 좋았습니다. 얼마 전 국내에서 유행한 들기름 막국수의 풍미가 배어났어요. 이밖에도 김치 볶음밥, 빙수 등이 비건 등을 위한 메뉴로 준비됐죠. 비건, 즉 채식주의자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나 아직은 그 수가 많지 않죠.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기간(8~9일, 15~16일 얼리전트 스타디움)에 맞춰 하이브 산하 7개 레이블이 연 합동 오디션에서도 다양성을 품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성별에 관계없이 만 11세부터 19세까지 지원자를 받으면서, 지원서 란에 성별을 데이(they)로 표시할 수 있는 칸을 만들었어요. 실제 데이(they)들이 이번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했죠. 자신을 남녀의 이분법적 구분에 넣지 않고 '논바이너리(non-binery)'라고 규정하는 이들은 '그'나 '그녀' 대신 '그들(they·them)'로 본인들을 지칭합니다.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가 대표적이죠.
특히 K팝은 해외에서 다양한 인종이 뭉친 팬덤의 연대 게릴라 활동을 통해 퍼져나갔고, 이제 주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음악이 됐습니다. 그 절대적인 본보기가 바로 방탄소년단이죠. 사실 전 아이돌을 꽤나 좋아하는 편에 속합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이던 시절에 등장한 1세대 아이돌부터 지금의 4세대 아이돌까지 관심 있게 지켜봐왔습니다. 그럼에도 사실 아이돌의 활동이나 가치에 한계를 뒀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최근 예고된 미국 힙합 스타 스눕독과 협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 아미가 된 분들이 있다면 방탄소년단 정규 1집 '다크&와일드(DARK&WILD)'(2014) 수록곡 '힙합성애자'(Hip Hop Phile)를 적극 추천합니다. 프로듀서 피독과 함께 멤버들이 스눕독에 대한 존중심을 표하기도 한 곡인데요. 피독, RM, 슈가, 제이홉이 노랫말을 함께 만든 이 곡에서 "남들처럼 제이-지(Jay-Z), 나스(Nas) 물론 클래식한 일매틱(Illmatic)과 '도기스타일(Doggystyle)"이라고 언급하는데, '도기스타일'은 스눕독의 데뷔 음반(1993) 제목입니다. '일매틱'은 힙합 거장 나스의 데뷔음반이자 힙합계의 전설적인 명반 제목이죠. 힙합계의 전설과 명반들을 연달아 언급한 '힙합성애자'는 데뷔 초창기 힙합 아이돌 그룹을 표방한 방탄소년단과 피독의 힙합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곡으로 평가 받습니다. 수많은 아미들을 만났지만 이번엔 얼리전트 스타디움 앞에서 만난 주부 이은영 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마흔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앳된 얼굴을 지닌 그녀는 이번 라스베이거스 4회 콘서트를 모두 보고 '더 시티' 프로젝트도 적극 즐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자신을 위한 휴식을 즐기는 듯한 그녀를 보면서 "자신을 사랑하라"는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셀프'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미국 올랜도에서 왔다는 엠마도 방탄소년단 노래에는 "꾸준히 서로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메시지가 담겨 힘을 얻는다"고 했죠.
뜬금없이 한국 기자단 옆을 지나가면서 "BTS XXXX"라고 욕을 한 백인 청년에게도 이 덩굴에 들어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막에서 라스베이거스가 탄생한 것처럼, 이번 방탄소년단 콘서트로 사막이 마치 바다가 되는 신기루를 경험한 것처럼, 방탄소년단을 제대로 알게 되면 네 메마른 가슴에도 꽃은 피울 거라고요. 네 자신을 좀 더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이유 없이 미워하지 않을 거라면서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