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킬러문항' 없다→26개 있다…30년 수능 '새 국면'
과거엔 소송전까지 불사…교육장관 첫 공식 사과6월 모평 수학, 시민단체는 "6개", 교육부는 "3개"킬러문항 해석 분분…변별력 확보 여부도 미지수
교육 당국은 킬러문항을 내지 않고도 상위권과 중하위권을 변별할 수 있다고 거듭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제시한 킬러문항을 제외할 경우 어떤 방법이 가능한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당장 다가오는 9월 모의평가와 2024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에서 만점자 속출과 2등급이 사라지는 '등급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26일 교육부가 공개한 2021~2023학년도 수능과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킬러문항 26개는 '사교육을 유발하니 교육과정 밖 내용을 출제하지 말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 수능' 지시를 반영한 결과다. 그간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수능이 어려웠다고 해도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는 없다는 일관된 기조를 유지해 왔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와 법정 공방까지 벌이기도 했다. '불수능' 논란이 됐던 2019학년도 수능에서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국어 3개, 수학 12개 문항이 교육과정을 위반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원은 1·2심 모두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평가원이 객관적 주의 의무를 어기고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 출제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특히 사걱세에 따르면, 당시 2심 재판부는 '높은 난이도의 변별력 있는 문제가 출제되지 않으면 대학의 입장에서 지원자들의 수학 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 수 있다'는 이유로 교육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 당국은 소송 이후에도 2020학년도 수능부터 '초고난도 문항 출제는 배제한다'는 출제 기조를 확립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이번에 소위 '킬러문항'을 직접 공개하면서 이를 스스로 뒤집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며 "전문가와 공급자 입장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킬러문항이 출제돼 왔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교육과정 내에서 수능을 출제한다는 것은 교육부의 오래된 방침이자 역대 정부에서 발표했던 원칙"이라며 "학생과 학부모 눈높이에서 보고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교육부가 제시한 킬러문항의 정의 역시 불분명해 해석의 여지가 많은 상황이다. 한 예로 이번 6월 모의평가 수학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교육부가 제시한 킬러 문항은 3개지만 사걱세는 6개를 제시했다. 교육부는 이날 킬러문항을 공개하면서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아 문제풀이 기술을 익힌 학생에게 유리한 문항'을 정의로 내세웠다. 다만 교육과정 위반 여부나 정답률 등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사걱세는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 학교 교육과정으로 대비하기 힘든 문항'을 킬러문항으로 정의했으며 ▲국가 교육과정 ▲대학별고사 선행학습 영향평가 보고서 ▲교육과정 교수학습자료 등을 토대로 기준을 삼아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신의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수험생 체감 난이도를 예측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교육부가 사례로 든 킬러문항을 빼고 '변별력 있는 수능'을 출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종전 교육과정인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2017학년도 수능부터 수학에서 행렬이, 현행 교육과정이 적용된 2021학년도 수능에서는 벡터가 빠지는 등 시험 범위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문항 수의 경우 2008학년도부터 국어가 60문항에서 50문항으로, 2014학년도에 국어와 영어가 45문항으로 각각 5개씩 감소한 바 있다. 여기에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상위권을 변별하는 장치가 국어와 수학에 국한되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평가다. 범위와 문항 수가 줄어들면 수험생 부담이 줄지만, 그만큼 좁은 범위에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킬러문항을 출제하게 된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이번 조치는 공정 수능에 대한 조치가 사실 당연히 지켜져야 될 교육과정 내에서 다룬 것을 출제한다는 그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원칙, 새로운 유형을 만들겠다는 게 결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수능 난이도가 낮아지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이러한 조치가 결코 변별력 확보라는 중요한 수능의 역할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교육부는 '준킬러', '신유형' 등장과 같은 논리가 수험생들을 불안하게 하는 사교육 업계의 마케팅이라며 현혹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하지만 수능 출제위원장 출신 전문가나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도 킬러문항의 배제로 최상위권을 변별하기 위한 적정 난이도 출제가 무척 어려워진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능 출제위원장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종전처럼 초고난도 문항으로 보이는 문제를 안 넣고, 해당 문항이 나오던 배열에서 문항을 없앨 것"이라며 "이럴 경우 최상위 그룹의 변별이 문제가 될 것이니 고난도 문항 비중을 늘리고 조금씩 더 어렵게 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은 굉장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 한 현직 국어 교사 A씨는 "킬러문항은 애초에 상대평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며 "의대 지망생들이 늘다 보니 최상위권 학생들에 대한 변별 부담이 굉장히 (크다)"라고 지적했다. A 교사는 "예를 들어 만점이 4% 이상 나와 버리면, 2등급이 이제 없어지는 그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텐데 상대평가에서는 그런 부담을 덜어내기가 쉽지 않다"며 "9등급제 상대평가 체제를 계속 가지고 간다면 이 안에서는 어떻게 다른 식의 제언을 해도 그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