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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두중량 해제 합의...미국의 다른 요구 조건은 없었을까

등록 2017-09-06 0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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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38년만에 우리 군의 탄도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키로 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일단 우리 군 입장에서는 독자적으로 파괴력 강한 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수십년 반대했던 사안을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풀어줬을까 하는 점에서는 부분적으로 의문이 든다. 당장 이날 미국에서 '한국이 수십억달러 어치의 미국 무기와 장비를 구매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청와대는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상대가 경제인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 임을 감안하면 개연성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통화에서 현행 미사일지침상 최대 500㎏까지 제한된 우리 군의 탄도미사일 탄두중량 제한을 해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점증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으로 한미동맹에만 의존하기 보다 우리 군 자체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시 선제타격할 수 있는 우리 군의 '킬체인(Kill Chain)'의 핵심무기체계인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2C의 시험발사를 직접 참관한 것도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대목이라 볼 수 있다.

 우리 군이 보유한 현무계열의 탄도미사일에는 실전배치 된 현무-2A(사거리 300㎞ 이상)와 현무-2B(500㎞ 이상)가 있다. 현무-2C(사거리 800㎞)는 연내 전력화를 목표로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에 있다.

 문 대통령은 현무-2C의 시험발사 현장에서 현무 미사일의 탄두중량이 최대 500㎏까지만 묶여있는 현행 미사일지침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후 물밑에서 진행 중이던 미사일지침의 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뤄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도발(7월28일)은 미사일지침 개정 협상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북한의 도발 하루 뒤인 7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했던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을 즉각 개시할 수 있도록 미국과 협의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사일지침(Missile Guideline)은 탄도미사일 개발 규제를 담은 한·미간의 가이드라인이다. 미국은 1978년 박정희 정부시절 성공한 첫 국산 지대지 탄도미사일 '백곰' 개발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중단을 요구했다.

 당시 미국은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을 통해 탄도미사일 개발 중단을 권고하는 형태의 서한을 보냈고, 노재현 국방장관이 이에 서면으로 동의한 것이 굳어져 현재의 미사일지침이 됐다.

 미사일지침은 국가간 체결한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당사자인 미국의 동의를 얻어 개정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1998년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인 대포동 1호를 발사한 것을 계기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개정을 요구해 사거리 300㎞의 탄도미사일(탄두중량 2t)까지는 개발이 가능하게 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막바지 사거리 800㎞까지 늘렸지만 사거리를 늘리면 탄두 중량을 줄여야 한다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원칙에 따라 탄두 중량은 500㎞까지만   허용됐다.

 미국이 무분별한 군축경쟁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이토록 엄격하게 적용해 왔던 미사일지침의 개정을 쉽게 합의해줄리 만무하다는 목소리가 군 안팎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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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합참이 4일 오전 북한 6차 핵실험 도발에 대응해 동해에서 현무2 탄도미사일을 실사격 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사격에는 육군의 지대지탄도미사일인 현무와, 공군의 장거리공대지 미사일을 동해상 목표지점에 사격을 실시, 명중시켰다. 특히, 이번 합동 실사격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까지의 거리를 고려해 공해상 목표지점을 향해 실시됐다. 2017.09.04. (사진=국방부 국방홍보원 제공) [email protected]

 군 관계자는 "미측이 무엇을 바라고 우리 정부에 이토록 호의적인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한·미 정상이 미사일지침 개정을 논의하던 시점에 한국이 미국의 군사장비를 구매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했다는 내용이 백악관을 통해 공개됐다.

 백악관은 지난 1일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 사실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양국 정상은 국방협력을 통해 동맹을 강화하고, 한국의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방력 강화에) 한국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 계획을 개념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또 4일 미사일지침 개정 합의를 발표했던 한·미 정상통화 이후에도 같은 내용을 외신들이 5일 거듭 보도하면서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5일 문자메시지를 통해 "어제 한·미 정상통화 시 무기 도입에 대한 협의는 없었다"고 외신 보도를 공식 부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백악관과 미국측에서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확인해봐야겠다"면서도 "양국 실무자간 탄도미사일의 탄두중량 확대 논의 과정에서 많은 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 정상이 4번의 전화통화 등 여러차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하는 방편으로 한국군의 독자적 방어능력 향상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사일 탄두 중량을 해제하면서 나머지 뭉뚱그려 '실무적 협상을 시작해봐라'라는 원론적인 승인을 말한 것으로 해석이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군은 대체적으로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미국의 무기를 도입한다. 구매의향서를 미측에 보내면 미국 정부는 의회에 판매 승인을 요청하고, 미 정부의 승인이 나면 우리 측에 통보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개념적 승인(conceptual approval)'이라는 단어는 구속력을 갖는 미 정부의 공식승인이 아닌 원론적인 차원의 승인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백악관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한·미가 어떤 식으로든 서로가 원하는 것들을 주고받기식 형태로 거래를 했을 것이라는 시선은 여전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적인 측면과 무역 등 통상적인 측면을 연계해 협상하려는 경향이 아주 짙다"면서 "정부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잘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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