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실험]'아동수당' 쏘아올린 文 정부…기본소득까지 안착할까
아동·노인·청년 등에 대한 부분기본소득 우선 시행 주장도 【세종=뉴시스】이인준 기자 = "그리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가 왜 망했나. 무분별한 복지 남발이 아니냐."(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 "많은 부분 오해가 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부패 등) 국민과 정부간에 신뢰가 없었던 것이다."(박능후 복지부 장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보수야당 의원과 복지부 장관간에 벌어진 설전의 일부다. 한쪽은 '보편적 복지'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전제로, 다른 한쪽은 복지 확대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바탕에 깔았다. 이는 최근 아동수당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진 찬반논란과도 궤를 같이 한다. 특히 아동수당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세계 각국에서 서서히 사회적인 논의와 제도 적용을 위한 실험이 진행중인 '기본소득' 논의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아동수당 찬반 논쟁…왜? 엄밀히 말하면 아동수당은 기본소득은 아니다. '중앙·지방정부 등 특정 정치집단이 모든 개인에게 자격·조건 없이 일정수준의 소득을 동일하게 제공한다'는 기본소득의 원리에서 '모든 개인'이라는 구성요소가 부족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동수당, 청년수당 등 인구학적 특성에 따른 급여도 '부분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 기본적인 원리는 일맥상통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논란이 발생하는 지점도 유사하다. 최근 아동수당을 둘러싼 논쟁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도 '보편적 복지' 논란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복지제도를 공격하는 논리인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을 착취한다'는데 배경을 두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도 복지혜택을 똑같이 제공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미 우리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도입한 '무상보육' 등을 통해 최대 80여만원의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만 0~5세는 가정양육수당을 연령별 월 10만~20만원이 지급되며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0~2세중 종일반은 부모보육료와 기본보육료를 합쳐 43만8000만~82만5000원이 연령별 차등지급된다. 맞춤반은 이보다 적은 37만5000만~73만9000원과 긴급보육바우처(10시간)이 지원된다. 만 3~4세는 누리과정 운영비 월 7만원과 보육료 22만원이 지급된다. 이밖에 소외계층에 대한 한부모 수당 등 급여 혜택도 운영중이다. 여기에 덧붙여 만 0~5세 아동에게 조건없이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것은 복지 과잉이라는 반론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아동수당은 미래세대인 아동에 대한 사회적 투자"라는 입장이다. 급속한 저출산·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가 아동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상황에 관계없이 전계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미 지난 대선에서 5개 주요 정당은 연령별·소득대상별 차등이 있지만 아동수당을 공통공약 사항으로 채택한 바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중에서도 아동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우리와 미국, 터키, 멕시코 등 4개뿐이다. 우리나라의 아동에 대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지출도 1.1%에 그쳐 OECD 평균인 2.1%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라는 점도 근거로 든다. 이와 반대로 자녀가 있는 가구들의 양육·교육 부담은 크게 늘고 있고, 아동·가족 지출 증가가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양측의 팽팽한 논리싸움은 국회 논의를 결론이 날 전망이다. ◇기본소득 도입 단계별 여론 수렴이 우선 다만 '아동수당'의 출현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쌓아올린 복지 체계 전반에 대한 고민을 동반하고 있다. 이미 무상보육과 아동수당간에 중복 논란이 벌어진 상태다. 복지부는 "별개의 제도"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육료는 돌봄부담 경감하기 위한 현물지원이고 양육수당은 과도한 보육시설 이용을 방지하기 위해 '무상보육' 제도를 지원하는 대체급여인 반면 아동수당은 아동이 있는 가구의 경제부담을 덜기 위한 현금 지원으로 상호보완의 관계라는 설명이다. 또 OECD 회원국 중 프랑스, 오스트리아, 폴란드도 우리처럼 이들 제도를 병행 운영 중이라고 복지부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2자녀 이상에 대해서만 보편적 적용하고 있고, 폴란드는 고소득층을 배제하고 있다. OECD 회원국중 전계층 지원 국가는 20개국이지만 이중에서도 금액까지 균등지급하는 나라는 유럽 14개국과 이스라엘 등 15개국으로 범위가 좁혀진다. 결과적으로 아동수당은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재 운영중인 제도개선에 대한 검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복지부는 이미 지난해 도입된 맞춤형 보육에 대해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아동수당의 연령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아동수당 도입으로 촉발된 논의는 우리나라의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취학아동에 대한 지원에 대한 제도 검토로 논의가 확장될 여지가 있다. 해석에 따라서는 독일, 벨기에 등과 같이 대학생이나 구직자의 경우 20대 중반까지 급여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어 청년수당으로까지 논의가 진전될 수도 있다. 최근 기본소득 도입 논의중에서는 우선 아동, 노인, 청년 등에 대한 부분기본소득(사회수당)을 운영하고 이후 전 시민 계층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법도 제시된 상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분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기본소득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기에는 단계별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 등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도입이 섣부르다는 쪽이 중론다. 우리 정부도 "기본소득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지만 세계 각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예산결산위원회를 통해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를 했는데 내년 예산이나 정책에는 담지 않았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통폐합하는 복지 체계 차원에서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수당을 중심으로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는 아직 국내 여건상 재정적 부담 때문에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중인 아동수당 도입과 앞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청년수당, 최저생계비 계측조사 등 새로운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는 상황에서 검토해야할 부분이 많이 있다"며 "아직까지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된 곳은 없는 상황이다보니 현재로서는 논의가 빠르다"라고 말했다. 반면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복지체제로서 기본소득 도입을 논의하자는 주장을 갈수록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은 "지금 같은 복지 재정 상황에서는 교육, 의료 등을 공공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도 "소득불평등이 유발하는 경기침체 등 안 좋은 영향과 4차 산업혁명 이후 어두워진 일자리 전망 등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이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기본소득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증세 합의"라며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015년 기준 18.5%로, 같은 해 OECD 평균수준인 25.1%보다 낮아 세금을 더 걷을 여력은 충분하기 때문에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재정 여력은 충분하지만 증세에 대한 합의 없이는 논의의 발전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