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셸 가보니①]죽기 전에 또 가고 싶은 파라다이스
【빅토리아(세이셸)=뉴시스】김정환 기자 = '비행기 편도 탑승 시간만 12~14시간, 환승하기 위해 2~4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또 올 수 있다면? 기꺼이 오겠다. 아니, 꼭 다시 오겠다."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세이셸(Seychelles) 공화국을 떠나올 때 갖게 된 생각이다. 앞서 2007년 한국에 세이셸 관광청 사무소가 오픈한 당시 약 20명에 불과했던 연간 세이셸 방문 한국인 수는 10년이 지난 지난해 약 2300명으로 100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직항 노선은 여전히 없다. 아무리 방문객 수가 늘어났어도 직항을 하기에는 아직도 적은 탓이다, 결국 다른 나라를 경유해야 한다. 5월 하순 어느 날 세이셸에 가던 나 역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국영항공사 에티하드를 이용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오전 1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서해를 건너 중국과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 상공을 차례로 지나 약 10시간이 지났을 때쯤 환승지인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약 4시간가량 머물다 세이셸로 향하는 조금 작은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4시간 남짓 갔을까 싶을 때 창 너머를 내려다보니 짙푸른 숲과 푸른 하늘 그리고 쪽빛 바다가 어우러진, 낯선 섬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세이셸에서의 4박5일, 휴가가 아니라 업무의 연장인 탓에 몸은 분주했으나 마음은 편했다. 돌아오기가 싫어지는 외국 체류는 얼마만의 일인가. 영국 BBC방송이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은 지상 낙원이 바로 이 나라다. 갈 때까지는 이 말에 설렜고, 머무는 동안에는 '정말 맞는 말이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물론, 돌아온 뒤에는 그 말 때문에 한걱정하게 됐다. '한참 뒤에 죽을 텐데 너무 빨리 세이셸에 다녀왔으니 죽기 전에 거기보다 더 좋은 곳을 가볼 수 있을까?' 싶어서다.
◇세이셸은 어떤 나라? 세이셸행을 앞둔 5월5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세이셸'이 올랐다. 미국 하와이주를 구성하는 8개 섬 중 가장 큰 하와이섬(일명 '빅 아일랜드')에서 킬라우에아 화산이 폭발했다는 외신 보도가 계속 나오던 시기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아니 세이셸에서도?"라는 불안감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이내 "세이셸에는 화신이 없는데…"라는 생각에 마음을 놓았다. 실제로 그랬다. 그날 '검색어 1위 사태'는 화산 탓이 아니라 모 지상파 방송의 한 여행 프로그램에 세이셸이 소개됐기 때문이었다. 방송 중과 방송 직후 네티즌이 일제히 '세이셸'을 검색하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만큼 관심을 끌 만한 나라인 동시에 아직 낯선 나라라는 얘기다. 세이셸은 1억5000만 년 전 곤드와나 대륙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로 분리될 때 인도양 한복판에 남은 '조각'이다. 덕분에 크고 작은 섬 115개로 이뤄진 세이셸 군도의 섬들은 거의 화강암으로 이뤄졌다. 한 마디로 서울 인왕산이나 도봉산이 바다에 떠 있는 셈이다. 화산섬인 하와이나 모리셔스, 산호섬인 몰디브 군도와 전혀 다르다. 화산 폭발이 아예 일어날 환경이 아니라는 얘기다. 화산섬은 없지만, 산호섬은 세이셸에도 있다. 데니스, 데로쉬 등이다. 덕분에 세이셸 내 다른 섬들과 전혀 다른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세이셸 총면적은 455㎢로 서울(605㎢)보다 작다. 다만 바다를 포함하면 남한의 14배에 달한다. 아프리카 옆, 중동 아래 적도 지방에 있는 나라답게 기온은 연중 24~31도다. 그런데 내가 머무는 동안 더위로 고통받은 적은 전혀 없다. 숙소가 있는 마헤(Mahe)섬에서 수도 빅토리아(Victoria)에 오전 무렵 나갔을 때도, 마헤섬의 비치에서 한낮부터 오후까지 바다 수영을 즐길 때도, 이른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 프랄린(Praslin)·라 디그(La Digue) 등 다른 섬에서 투어를 할 때도 모드 그랬다. 뜨거운 햇살이야 예상대로 작렬하나 공기가 맑은 데다 바람이 잘 불어 더위를 '순(간)삭(제)'해줬다. 습도도 의외로 높지 않아 활동하기 한결 편했다. 세이셸은 18세기 프랑스, 영국이 차례로 식민지로 삼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유럽인의 '로망'이자 '이상향'이 됐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매년 세이셸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 중 유럽인 비중이 가장 크다. 내가 갔을 때도 한국인은 보기 힘들었고, 중국인도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유럽인 천국이었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세이셸이 가까운 것은 전혀 아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도 세이셸까지 8시간가량 걸린다. 그래도 유럽인은 그 거리와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세이셸을 찾는다. 직항이 있는데도 경비를 아끼기 위해 아부다비, UAE 두바이 등을 거치는 사람도 많다. 한국인 못잖게 그들도 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기꺼이 온다. 다만 한국인과 다른 점은 있다. 그들은 대부분 한 번 오면 최소한 10여 일간 묵고 간다. 왕복 비행시간, 환승 시간 등을 포함해 1주일 정도 일정을 잡는 것이 '한계'인 한국인과 전혀 다른, 그들의 '여유'가 부럽다. 세이셸은 1976년까지 영국 식민지였다. 그래서 국가 시스템, 교육, 문화 등에서 유럽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영어와 프랑스어, 크레올(Creole: 프랑스인이 아프리카 노예들과의 소통하기 위해 간소화한 프랑스어) 등을 사용한다. 많은 국민이 영어를 사용하므로 영어만 조금 할 줄 알면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다.
세이셸이 좋은 점은 또 있다. '안전'이다. 2년 전 나는 네팔에 가면서 콜레라, 장티푸스 등 각종 풍토성 전염병을 막기 위해 예방접종을 하고, 예방약을 복용해야 했다. 그런데 이 나라는 마치 제주도 가는 것처럼 간편했다. 그런 것이 필요 없어서다. 세이셸은 아프리카로 분류되나 케냐에서 동쪽으로 1800㎞, 마다가스카르에서 북쪽으로 1100㎞ 넘게 떨어져 있다. 덕분에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황열 등 예방접종이 전혀 필요 없다. 아프리카에서 다시 창궐한다는 에볼라 걱정도 없다. 정치적으로 분쟁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고, 치안도 안정적이다. 유럽인이 앞다퉈 휴양을 즐기러 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