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빨래처럼 걸린 검은 천 작품은 처음이지?
이민자 출신 런던 작가 오스카 무리조 한국 첫 개인전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검은 천이 빨래처럼 걸린 전시장. 그 사이 사이를 건너다니면 거칠게 휘갈긴 낙서같은 그림이 벽에 걸렸다. 높은 천장과 흰 공간속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느낌을 전한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오스카 무리조(32)의 작품이다. 29일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작업은 "추상적이고 수평적인 것을 탐구한다"고 말했다. "수평적이라는 것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때 쓰는 말이잖아요. 정치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는 공간이죠. 수평적이라는 것은 문화적인 아이덴티티에 귀결되거나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할수 있는 제 소망을 이루어주는 수단입니다." 회화와 설치를 함께 연출, 경계를 넘는 작품은 이민자의 삶이 녹아있다. 1986년 콜럼비아 태생인 오스카 무리조는 1997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후 런던에서 생활했다. 2007년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후 중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그 후 2012년 영국왕립예술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영국 사우스 런던 갤러리(2013), 아제르바이잔 바쿠 야라트 현대미술관(2016),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 뮌헨(2017), 프랑스 보르도 현대미술관(2017)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오스카 무리조를 대중적으로 알린건 2014년 뉴욕 전시다. '캔디가 아트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남미에서 유명한 과자회사의 공장을 전시장에 그대로 재현 주목받았다. 버려진 사탕 껍질이나 통조림 라벨등을 회화에 편입하거나 화려한 컬러들과 병치하여 에너지 넘치는 회화로 재탄생시키는 작품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노동력에 대한 질문이 전제되어 있다. 부모님이 설탕공장 노동자였다. 그는 "그 전시는 노동계급층의 자녀로 태어난 자전적인 요소가 있었다"면서 "세계적으로 상업적이고 문화적인 허브인 뉴욕에서 노동과 인력에 대한 다른 걸 보여주고 싶은 야심이 있었다"고 했다.
이번 한국 전시는 2016년 참여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덕분이다. 당시 주은지 큐레이터와 친분으로 국제갤러리 찰스장 대표와 연결되면서 한국 첫 개인전이 추진됐다. 세계 유명작가들을 초대 전시하는 국제갤러리는 무리조에게 K2, K3 전시장 2곳을 내줬다. 무리조 작품을 국내에 적극 프로모션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flight' 드로잉 연작, 'catalyst' 연작 외 회화 , 대형 캔버스 설치 , 비디오 등 지난 6년간 폭넓게 전개 해온 작업 세계 전반을 대표 하는 20여점을 선보인다. 드로잉 판화 회화 비디어 설치 퍼포먼스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업과 화이트큐브 공간을 에너지가 응집된 긴장의 상태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가 엿보인다. 전시 공간에 간헐적으로 설치된 'flight' 드로잉 연작은 비행기 혹은 호텔에서 보내는 이동 시간에 볼펜으로 그려낸 무의식의 드로잉이다. 복잡다단한 생각이 연쇄적으로 두뇌로부터 자동 다운로드 되어 손으로 흘러나온 그림은 '강박의 낙서'로 읽힌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의 이면에 반영된 무의식의 흐름을 담아내듯 촬영한 비디오 영상도 함께 전시됐다.
K3에 전시된 'catalyst' 연작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담아낸 듯한 드로잉과 유사한 요소들이 응집, 거대한 스케일의 역동적인 에너지로 탄생한 작품이다. 무리조는 종종 이 회화 작업의 제작과정을 “신체의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에 비유한다. 기본적인 도구에만 의존하여 자동적, 직관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 신체의 에너지를 캔버스 위에 축적시킨 결과물이자,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의식(ritual)으로도 설명된다. 그런 점에서 'catalyst' 연작은 작품의 완결성보다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액션 페인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K2와 K3에서 마주하는 검게 드리워진 캔버스 설치는 다양한 작업들이 공간 안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도록 한다. 전시장을 열린 경기장이자 무대로 여기는 작가의 특징이다. 캔버스 천 위에 검은 물감을 여러 겹 채워낸 후 조각 내고 이를 친척, 지인 등 주변 이들과의 협업 하에 새로운 구성과 패턴으로 바느질하여 엮었다. 이후 스튜디오 바닥에 놓인 채 새로운 층을 덧입히거나 재구성되기도 하고, 각종 전시 공간에 설치되어 먼지, 흙, 얼룩 등 시간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유동적인 요소들에 열린 작업으로 지속되어왔다. 마치 피부 혹은 거죽처럼 펼쳐진 어두운 캔버스 군단은 2015년 콜롬비아 국립대학교 미술관 개인전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같은 해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전시관 전면에 거대한 행렬의 깃발로 설치되었고, 2016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2017년 샤르자 비엔날레에서도 장소특정적 설치로 선보인 바 있다. 검은 캔버스 천과 함께 설치된 곡물과 점토가 뒤엉킨 흙같은 덩어리들은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 그리고 생산과 소비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비유다.
K2 1층에 선보인 무리조의 자유분방한 회화는 'flight', 'catalyst' 연작과도 유사한 결을 띤다. 작가가 여행하며 경험한 개발도상국가 도시들의 일상 풍경 내에 잠식한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잔재를 표상하는 듯한 이미지, 단어, 숫자 등을 재편집한 작업들이다. 한글로 적십자사와 붉은 적십자 마크가 보이는 그림은 인류가 지닌 도덕성을 상징하는데,수평적 유대감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고 했다. 이민자로서 분열 단절을 경험하며서 무의미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미술 작품을 만드는 일은 내게 있어 필요에 의한 행위다. 이는 처음부터 내게 내적 에너지를 어떻게 물리적으로 발현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무리조의 회화 작업은 자유로운 에너지의 흐름이다. 평면위에 유화물감으로 맹렬히 휘갈긴 작업은 유랑하며 활동하는 작가의 '역마살'을 보여준다. 교사직을 버리고 '현대미술가'로 성공한 그의 작업은 동시대 현대미술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작가 데뷔 6년만에 세계 미술계를 누비는 성공한 작가로 "작업을 통해 모든 것을 초월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된" 그의 작품은 '대체 이것이 어떻게 미술이 될수 있다는 것인가?'를 반추하게 하며 변화무쌍한 현대미술세계로 다가서게 한다. 전시는 2019년 1월6일까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