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아리랑제①]"내년 봄 아리랑 공원 생깁니다"
박순옥 사할린 주한인협회 회장 인터뷰"러시아 사람들 아리랑 좋아해...아리랑은 우리민족 심벌"한겨레아리랑연합회와 아리랑제 개최
【유즈노사할린스크(러시아)=뉴시스】이재훈 기자 = 내년 봄에 러시아 사할린 주(州)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 시 내 사할린 한인문화센터 인근에 아리랑공원이 들어선다. 한낮에도 영하 8도의 날씨에 눈이 펑펑 쏟아지는 16일 오후 사할린 한인문화센터에서 만난 박순옥(53) 사할린주한인협회 회장은 온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사할린의 봄은 늦어도 꼭 찾아온다"고 웃으며 이렇게 밝혔다. "제가 지난 8월에 (사할린 리마렌코 발레리) 주지사를 만나서 두 시간가량 대화를 나눴어요. 아리랑 공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드렸고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그 공원에 아리랑비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위아래로 길쭉한 섬인 사할린은 러시아 연해주의 동쪽 오호츠크 해에 위치해 있다. 한 때 남사할린을 일본이 지배했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점령해 통치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국이 되면서 반환했다. 현재 약 3만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 징용령에 의해 끌려간 조선인과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사할린에는 우리 민족 디아스포라들의 아픔이 배어 있다. '분산'이라는 뜻의 디아스포라는 팔레인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에서 유래한 말이다. 세계 각지에서 아리랑을 발굴하고 있는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1990년대 이곳에 와서 '사할린 아리랑'이 불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후렴구는 기존 아리랑들과 비슷하지만 "사할린이 좋다고 내여기 왔나 / 일본놈들 무습어 따라왔지" 등 노랫말에는 가슴 속의 한이 알알이 맺어 있었다. 이날 오후 사할린주한인협회는 한인문화센터에서 한겨레아리랑연합회와 '한민족공동체실현을 위한 – 2019 사할린 아리랑제'를 펼쳤다. '사할린 아리랑제'는 2016년 출발했다. 해마다 1회씩 열렸는데 이번이 3회째다.
작년에는 12월11일 경북 문경시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연 '디아스포라 아리랑, 제11회 문경새재 아리랑제'으로 대신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지에 흩어져 있는 아리랑을 한 군데서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한인문화센터 앞에는 사할린 희생 사망 동포 위령탑, 사할린 한인 이중징용광부 피해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사할린에는 120여 민족이 있지만, 위령탑을 갖고 있는 민족은 드물다. 늦둥이 사할린 한인 2세인 박 회장은 "저희 부모세대가 사할린에 처음 왔을 때는 러시아 말도 몰랐어요.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죠. 힘겨운 시간을 뚫고 자기 자리를 잡고 성공한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고 힘주어 말했다. 말투는 약간 어눌하지만 박 회장의 한국어 실력은 거침이 없었다. 박 회장의 부친은 1939년도 사할린으로 강제이주됐다. 박 회장이 열 살 때인 1976년에 세상을 떠났다. 1975년 한국에서 온 편지를 받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단. 자신의 부친과 모친이 각각 3년 전과 2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 박 회장의 부친은 딸에게 아침마다 인사 대신 "조선에 가겠냐"고 거듭 물었다. 박 회장은 뒷날 사할린 부친 무덤의 주변 흙을 가져다 한국에 뿌렸다.
박 회장의 모친은 그녀가 어릴 때 아리랑을 자주 불러줬다고 한다. 다른 노래는 거의 부르지 않았던 어머니다. 이런 아버지, 어머니의 영향 덕에 박 회장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있지 않았다. 1960년대 초반 현지에서 조선학교를 다 문 닫게 해서 사할린 한인 3, 4세들은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사, 돌, 환갑 등의 측면에서는 한반도에서보다 전통을 더 잘지켜나가고 있다. 박 회장은 부친이 돌아간 이후 3년 동안 제사를 치렀다. 박 회장의 어머니는 부친의 빈소 앞에서 어릴 때부터 아팠던 박 회장을 위해 "순옥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실제 박 회장은 건강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1년 동안 제사를 치렀다. "우리말을 잊었지만 우리문화는 절대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어요. 모스크바에 사는 저희 자녀 둘은 틈 날 때마다 한국에 있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에게 전화를 하죠. 저희는 러시아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한인도 아니라고 하면, 저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할린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은 여전히 디아스포라다. 현재 정부는 여전히 사할린 동포를 홀대하고 있다. 지난 2월 사할린 동포를 위해 영주 귀국 대상자의 범위를 넓히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박 회장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한국을 찾아 국회 앞에서 1위 시위를 하기도 했다. 현재 사할린 동포 1세와 배우자, 장애인 자녀만 영주 귀국할 수 있다. 또 다른 형태로 이산을 겪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박 회장은 "한국 국적을 못 받을까, 러시아 국적을 안 받고 평생 살아간 분들이 있어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 분들은 평생 한국에 못 갈수도 있죠. 요즘은 '조국이 어디냐'고 물으면 눈물부터 나려고 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과정 중에서 박 회장은 '사할린 아리랑제'가 중요하다고 봤다. 이날 공연은 현지 동포뿐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도 큰 관심을 보여 성황을 이뤘다. 내년에도 열기로 했다. 한인들이 현지에서 오랫동안 눈치를 보고 살아왔다는 박 회장은 "주정부 공무원, 시위원이 된 한인들이 생겨나면서 이제는 눈치를 안 본다"면서 "우리나라 문화가 아름잖아요. 한국 발전에도 큰 감동을 하고 있어요. 아리랑제를 더 알릴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박 회장에게 아리랑은 노래 그 이상이다. "아리랑은 문화, 역사"라고 정의했다. "사할린에 아리랑 공원이 곧 문을 여는 것에서 보듯, 러시아 사람들도 아리랑을 좋아해요. '아리랑 사할린제'를 좀 더 크게 발전시켜나가고 싶어요. 아리랑에 대한 애정이 갈수록 깊어져요. 이제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걸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심벌(상징)과도 같죠. 아리랑 역사를 지키면 우리나라 위상도 높아지는 거예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