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아리랑제③]러시아에 울려퍼진 아리랑 "한민족 공동체 결속"
16일 유즈노사할린스크서 12개 지역 아리랑꾼 한자리한인 2세들 "언제들어도 좋고 울림" 감동...내년에도 개최
【유즈노사할린스크(러시아 사할린)=뉴시스】이재훈 기자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 한 많은 남화태(사할린) 징용왔네 / 철막 장벽은 높아만 가고 정겨운 고향길 막연하다"(사할린 아리랑) 노래에도 넋이 있다. 우리 민족 모두가 안다. 아리랑,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16일 하얀 눈이 한 없이 쏟아지는 러시아 사할린 주(州)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 시 내 사할린 한인문화센터에서 역시 한 없이 쏟아진 아리랑 노래 가락과 눈물을 통해 이 사실이 새삼 증명됐다. 이곳에서 사할린주한인협회와 한겨레아리랑연합회가 공동 주최하고 아리랑스프링이 주관한 '한민족공동체실현을 위한 – 2019 사할린 아리랑제'가 열렸다. 김옥순이 '살풀이 아리랑'이 축전의 문을 열었다. 아리랑을 통해 드리는 제사와도 같은 이날 공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만들었다.
이후 '사할린 아리랑'을 김명기가 불렀다. 러시아 연해주의 동쪽 오호츠크 해에 위치해 있는 사할린은 위아래로 길쭉한 섬이다. 한 때 남사할린을 일본이 지배했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점령해 통치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국이 되면서 반환했다. 현재 약 3만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 징용령에 의해 끌려간 조선인과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부른 아리랑의 노랫말에는 가슴 속 응어리가 한 가득 묻어난다. 이날 김명기가 부른 '사할린 아리랑'은 무반주라 더 절절했다. 이후 저마다 사연과 한이 가득한 아리랑들이 이어졌다. 이날 전체 공연의 예술감독을 맡은 중국 동포 3세 작곡가 겸 양금연주자 윤은화가 주축이 된 통일앙상블의 '아리랑 판타지'는 몽환적이면서도 박진감이 넘쳤다. 통일앙상블은 서울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왕십리아리랑' 반주도 맡았다. 이후 '신무용의 개척자' 최승희의 춤 전승에 주력하고 있는 탈북 무용가 최신아가 '쟁강 춤'을 선보였다. 손에는 부채를 달고, 손목에는 방울을 단 그녀의 춤사위는 고전적이면서 세련됐다.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의 '영천아리랑'이 울려퍼진데 이어 사할린 한인 2세 박영자가 이끄는 사할린아리랑무용단의 아름다운 몸짓이 이어졌다.
결기가 넘치는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의 '의병아리랑', 해녀 분장을 더한 연극적 구성으로 시각적 재미를 준 제주아리랑보존회의 '제주아리랑'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 사할린으로 넘어간 우리 민족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고종의 마음을 담은 양주아리랑보존회의 '고종의 아리랑'은 작은 극 형식으로 펼쳐졌다. 사할린 에트노스 예술학교의 학생들이 현지 춤을 선보이고 전통 악기 '구슬리'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울릉도아리랑보존회의 '울릉도 아리랑', 예천아리랑보존회의 '예천아리랑'의 절절함은 고려인 2세 게나 김이 딸 이리나와 함께 부른 '카레이츠(카레이스키)아리랑'에서 극에 달했다. 블루스풍의 멜로디와 리듬은 처연함을 넘어 감동을 안겼다. 이후 통일앙상블이 우리에게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로 유명한 라트비아 작사가 레온스 브리에디스, 작곡가 라이몬츠 파울스가 만든 '마라가 준 인생'을 연주했다. 마라의 고난을 담은 이 곡이 주는 애절한 정서는 아리랑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었으니, 탁월한 선곡이었다. 이후 이날 무대에 오른 12개 지역 아리랑 꾼들이 무대 위에 올라 다 같이 신명을 즐기는 것으로 이날 공연은 마무리됐다. 아리랑은 조선말기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가 계기가 돼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국 인부가 모여 민요를 교류했다는 것이다. 2012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아리랑이 등재된 이후 새삼 생명력과 소통력을 인정받고 있다. 전국에 70종이 있는데 '사할린 아리랑'처럼 우리 동포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 뿌리 내리는 절박함과 강인함까지 갖추고 있다.
'사할린 아리랑제'는 2016년 출발했다. 해마다 1회씩 열렸는데 이번이 3회째다. 작년에는 12월11일 경북 문경시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연 '디아스포라 아리랑, 제11회 문경새재 아리랑제'으로 대신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지에 흩어져 있는 아리랑을 한 군데서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사할린 아리랑제'는 아리랑 축제가 해외에서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내년에도 축제가 이어진다. 이날 공연이 끝난 뒤 주최측은 "내년 아리랑제 때 만났겠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리랑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는데 기여한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사할린 아리랑제'에 대해 "첫째 우리 아리랑을 사할린에 알리고, 둘째 사할린 동포의 노래와 춤을 우리가 배우고, 셋째 우리 노래와 춤·사할린 노래와 춤을 우리 민족과 동포 그리고 현지 분들이 함께 나누는데 의미가 있다"고 봤다. 공연을 보러 온 사할린 한인 2세들은 이날 아리랑이 큰 감동을 줬다고 했다. 조부자(86) 씨는 "집에 가요무대 테이프도 많은데, 아리랑은 언제 들어도 좋고 울림을 준다"고 했다.
김문대(80) 씨는 현재 한국 정부가 여전히 사할린 동포를 홀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지난 2월 사할린 동포를 위해 영주 귀국 대상자의 범위를 넓히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박순옥 사할린주한인협회 회장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한국을 찾아 국회 앞에서 1위 시위를 하기도 했다. 현재 사할린 동포 1세와 배우자, 장애인 자녀만 영주 귀국할 수 있다. 또 다른 형태로 이산을 겪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김씨는 "우리 부모님은 강제 징용을 와서 고생을 하면서 우리를 낳고 키웠다"면서 "2세 자식들부터 조선글을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 전통을 이어가고, 우리가 조국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공연이 열린 한인문화센터 앞에는 사할린 희생 사망 동포 위령탑, 사할린 한인 이중징용광부 피해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사할린 동포들의 아픔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곳으로 강제 징용을 왔지만 광복 후에도 돌아가지 못한 한인들의 아픔이 알알이 맺혀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이번 공연단에 참여한 36명은 영하의 날씨에 강풍이 부는 악조건 속에서도 제를 올리고, 살풀이를 했다. 이번 공연단 단장을 맡은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가 바람을 뚫고 '제3회 사할린아리랑제 추도식 제문'을 낭독했다. "저희들은 아리랑의 저항 대동 상생정신을 통해 한민족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함께 사할린과 북한 그리고 국외 동포사회에서 공연과 추모사업을 추진 하옵는 바, 이번 제3회 사할린아리랑제는, 하나는 추모사업, 둘은 교민과 현지민과의 교류, 셋은 아리랑합동공연을 통해 사할린동포와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 한민족임을 뜨겁게 인식하고자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리랑은 '공동체 결속에 기여한 노래'로 평가 받는다. 세상의 풍파에 긁히고 깨져도 아리랑은 불렸고 살아남았다. 아리랑이 계속해서 세계 곳곳에서 불려야 하는 이유다. '사할린 아리랑제'에서 불린 아리랑은 이런 의지에 찬 명령과 같은 노래들이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