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성실함은 때로 예술이 된다…영화 '암살자들'
다큐멘터리 영화 '암살자들'(감독 라이언 화이트)은 이 세 가지 팩트 사이의 빈 곳을 추적한다. 시티와 도안은 누구인가. 북한 공작원인가, 아니면 북한이 고용한 청부살인업자인가. 둘 다 아니라면 두 사람은 김정남을 왜 죽였는가. 그들이 이 암살을 은밀히 수행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데 그들은 무슨 이유로 석방됐는가. 그렇다면 '암살자들'은 무가치한 작품인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미덕은 이 희대의 살인 사건에 관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시간을 들여 직접 확인한 뒤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해낸다는 점이며, 그것을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통해 알기 쉽게 풀어내 관객에게 소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암살자들'은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해 기록으로 남긴다. 어떤 작품은 이렇게 그 시도와 성실함, 존재 자체만으로 예술이 된다. 라이언 화이트가 내세운 가설은 이것이다. ①시티와 도안은 평범한 여성이다. ②돈을 벌기 위해 쿠알라룸푸르에 왔다. ③북한 공작원들은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한 뒤 두 사람에게 접근했다. ④그들은 시티와 도안에게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던 몰래카메라를 찍는 데 참여하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⑤두 여성은 수개월에 걸쳐 이 비디오 촬영에 참여하다가 북한 공작원의 최종 목표인 김정남에게까지 장난을 치기에 이른다. ⑥그렇게 시티와 도안은 1급 살인 용의자로 체포됐고, 북한 공작원들은 출국하거나 자취를 감췄다. 정리하면 '시티와 도안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이용당했고, 그들은 김정남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조차 몰랐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북한 공작원이 이처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김정남을 죽일 수 있었던 배경엔 돈만 주면 쉽게 접근 가능한 동남아시아의 취약한 여성 인권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 또 북한 용의자들이 단 한 명도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에 잡히지 않은 건 당시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상황과 관계가 있다는 것. 또 시티와 도안의 무죄를 방증하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2년 넘게 구금돼 있을 수밖에 없던 정치적 이유와 반대로 이들이 풀려나게 된 정치·외교적 상황의 변화,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김정은의 국제 정치 데뷔 등이다. 라이언 화이트 감독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김정남을 죽인 것이 반인륜적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암살을 위해 그들이 판을 깔고 이 사건에서 빠져나오는 방식 역시 최악이었다.' '암살자들'은 12일 개봉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