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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서클 "음악 기원은 주술…유사과학처럼 힘 됐으면"

등록 2021-08-23 13:51:02   최종수정 2021-08-23 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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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필·박경소·서영도·크리스티안 모란 뭉친 팀

2년 만에 정규 2집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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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박서클. 2021.08.23. (사진 = 플랑크톤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유사과학(類似科學)이란 무엇인가. 특정한 이론이나 지식에 대해 과학적이라고 간주하는 믿음을 뜻한다. 증명과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특정 입장이다.

가야금·색소폰·드럼·베이스로 구성된 크로스오버 쿼텟 '신박서클(SB Circle)'은 이 유사과학에서 주술의 기원을 읽었다. 23일 오후 12시에 발표한 정규 2집 '유사과학'을 통해서다.

최근 연남동 연습실에서 만난 신박서클 멤버들은 "음악의 기원은 어디에나 주술적인 의미와 연결이 돼 있잖아요. 그래서 음악을 하는 사람도 이미 주술사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신박서클은 '연주계 어벤저스'로 통한다. 각자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색소폰 신현필(신)·가야금 박경소(박)·베이스 서영도(서) 그리고 영국 출신 드러머 크리스티안 모란(클)이 2019년 결성했다. 구성원들 이름의 한 글자씩을 따 밴드 이름을 지은 이 팀의 음악은 '신박'하다. 변성(變聲)의 생동감과 수사(修辭)학적 영감이 넘쳐 장르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숭고함이 있다.

이번 음반에 실린 9개 트랙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변칙엔 계시를 바라는 자의 단단함이 있다. 긴박한 '밀실의 선풍기', 의뭉스런 '평면지구', 위트가 넘치는 '사카린', 포근함을 안기는 '해독', 청량한 '피톤치드', 영검한 '파워 스톤', 미스터리한 '음이온', 능청스러운 '당신의 혈액형', 이국적이고 오묘한 '점성술' 등 각 트랙은 유사과학이 풍기는 뉘앙스와 유기호흡한다. 노랫말은 없지만, 글이 가본 적 없는 삶의 현장이 각 트랙마다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2년 전 발매하셨던 1집 '토폴로지(Topology)'는 '위상수학'(형태를 데이터로 바꿔주는 학문)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번 2집은 '유사과학'을 다뤘죠. 신박서클에 대해 '이과 밴드'라는 수식이 나옵니다.

"처음부터 콘셉트를 잡고 시작한 앨범은 아니에요. 곡을 반 정도 썼는데, 어떤 것에 대한 가능성을 유사과학에 비유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토테미즘이나 아버지·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중 미신 같은 내용은 사실 안 믿지만, 괜히 따르게 되잖아요. 현대 과학 시대에도 그런 것이 존재하는 현상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곡마다 붙인 제목은 직관적인 것이 커요."(서)

-유사과학은 일종의 기원 혹은 바람에 대한 은유처럼도 읽힙니다. 그건 노래의 주술적 기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요. 

"개인적으론 음모론에 관심이 많아요. '팩트'로 믿는다기보다는 생각을 다양하게 하는 거죠. 이번 앨범의 소재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골라낸 거예요. 앨범엔 넣지 않았지만 '도가니탕을 먹으면 정말 도가니(무릎뼈)가 좋아질까?' '돼지 껍데기를 먹으면 피부가 좋아지나?' 등의 고민을 하기도 했죠. 한스 짐머의 말을 빌리자면, '질문은 항상 답보다 중요하다'를 요약한 앨범이에요."(신)

"공연장에서 관객분들을 만나면 주술사 혹은 인도자가 되는 느낌이에요. 얼마 전에 '여우락페스티벌'에서 '불안한 신세계'라는 제목으로 공연하면서 했던 말이 있어요. '우리는 늘 불안한 시대를 살며 신세계를 꿈꾼다'고요. 일제감정기, 한국전쟁, 금융위기, 지금의 코로나19 시기도 그렇고 아마 우리는 늘 힘든 시기를 겪을 것이고 또 꿈을 꾸며 헤쳐나갈 거예요. 저희의 음악이 우리가 기대는 유사과학처럼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도움이 되든 말든, 그냥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놓이자나요. 음악은 늘 그런 역할을 해 왔는데 이번 앨범에 그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녹여봤어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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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박서클 정규 2집 '유사과학' 커버. 2021.08.23. (사진 = 플랑크톤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지난달 22일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의 하나로 열린 '불안한 신세계'를 통해 재즈피아니스트 윤석철 씨와 협업하셨는데요. 묘한 긴장감이 완벽함을 이루는 좋은 무대였습니다. 

"저희로서는 첫 번째 협업 시도였어요. 윤석철 씨가 저희 음악의 '숨어 있던 공간'을 잘 꺼내주셨죠. 저희는 음악을 만들 때 건반이 없어요. 저희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까요. 그런데 석철 씨로 인해 즐겁게 합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신)

"저희 사운드가 비워서 채우려고 한 것이 아니에요. 특정 악기가 없다고 해도 빈틈이 없을 수 있고, 100명의 오케스트라가 해도 빈틈이 있을 수 있죠. 사운드의 공간 문제는 연주자가 아닌, 화학 작용이 중요한 거 같아요."(서)

-신박한 악기 조합으로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장르를 선보이는 것이 신박서클의 매력입니다. 혹시 팀 활동을 통해 몰랐던 악기의 가능성을 발견한 부분이 있나요?

"이 밴드에 있어서 가야금의 역할이 굉장히 제게는 도전이고 새로웠어요. 멜로디도, 즉흥 솔로도, 컴핑(중간자 역할, 리듬과 화성을 만드는 일)도 하고 뭐 그냥 다 해야되더라고요. 하하. 아마 우리 팀의 다른 멤버들도 그럴 것 같아요. 기존의 보편적인 악기 구성이 아닌 악기들이 만났으니 새로운 사운드 스펙트럼을 만드는 거죠. 결국은 그렇게 됐어요. '가야금은 결국 다 할 수 있다!' '우리는 다 할 수 있다!'"(박)

"콘서트에서 음악은 볼륨감이 중요하죠. 국악악기는 공간 음향(음향증폭 장치 없이 공연장 울림으로만 소리를 내는 악기)이 원래 중요한 악기라 다른 악기와 밸런스에 대해 항상 고민합니다."(신)
 
"가야금과 베이스는 줄 악기라 음역대 부딪힐 수 있거든요. 최대한 피해 작곡을 하거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그 밸런스는 연주자의 능력이 중요해요. 경소 씨가 참 잘 연주를 해요."(서)

-모란 씨는 신박서클을 통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미지를 깨게 됐는지, 아니면 한국적인 이미지가 구축됐는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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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신박서클. 2021.08.23. (사진 = 플랑크톤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한국에서 국악이 너무 중요해요. 저 역시 국악을 좋아하고요. 혼자 장구도 배우러 다녔는데 신박서클 활동 이후 경소 누나에게 국악을 많이 배워서 좋아요."(클)

-경소 씨의 통통 튀는 밝은 성격이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거 같아요.

"신박서클 만난 후로는 완벽주의에 대한 개념(?)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느슨해졌다는 건 아니고요. '음악과 공연을 따듯하고 즐겁게 만들자'가 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멤버들을 긴장하게 하는 역할을 하긴 하죠. 음악은 적당한 긴장과 이완이 중요하니까요. 하하."(박)

-여느 음악가들처럼 코로나19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거 같아요.
 
"정말 인구가 나약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있어요. 이 시기에 유사과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있습니다."(서)

"코로나19로 관계성이 새롭게 정립되고 있는 거 같아요. 채팅 창을 통해 대화했다고 소통했다고 생각하고, 영상을 봤다고 공연을 봤다고 여기게 됐죠. 근데 특정 공간에서 한 경험이 음악보다 중요할 수 있어요. 같은 공기를 느끼는 것이 감동이거든요."(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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