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박현주 아트클럽]박수근, 기분 좋은날...사후 56년만 '국민화가' 대접

등록 2021-11-11 05:30:00   최종수정 2022-01-21 18:27:00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첫 개인전…덕수궁서 11일 개막

유화 드로잉 등 174점 역대급…'노인들의 대화' 최초 공개

'밀레를 좋아하던 소년'...예술 원천· 성취 집중조명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130x89cm, 리움미술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오늘은 하늘에 있는 박수근(1914~1965) 기분 좋은 날이다. 생전 꿈꿨던 일이 이뤄졌다. 사후 56년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이 열린다. 정부에서 열어주는 최고의 전시이자 국민화가 칭호를 제대로 인정하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도 개관이래 처음으로 선보이는 박수근 개인전이 11일 개막한다.

덕수궁미술관에서 펼치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시는 국민화가 박수근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점으로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 공개다. 특히 1962년 작품 '노인들의 대화'가 최초로 선보인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인 조지프 리(1918~2009)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그동안 이 작품의 존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조지프 리가 타계한 후 미시간대학교미술관에 기증되면서 전해졌다.  2016년 박수근 전작도록 발간사업 때 실물이 확인되었고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박수근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협업하고 유족, 연구자, 소장자 및 여러 기관의 협조로 만들어진 대규모 전시”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시 시대상과 화단의 토양을 재인식해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박수근.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수근, 명동 PX 작가에서 국민화가까지

박수근을 화가의 길로 이끈건 프랑스 농민화가 밀레의 그림때문이다. '만종'을 보면서 “하느님,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18세 때인 1932년 이른 봄의 농가를 모티프로 한 수채화 ‘봄이 오다’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진짜 화가가 됐다.

가난한 화가의 꿈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기록했다. 빨래터의 아낙네들, 시장 사람들, 절구질하는 여인등 당시 우리나라 풍경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가난한 삶을 살아낸 그는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전형적인 서민상을 보여줬다. 49세때 백내장으로 한쪽눈을 실명한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다가 51세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가난과 싸웠던 화가 박수근은 죽은뒤에야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가 됐고 그렇게 유명해졌다.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대표작 ‘빨래터’(1959)가 45억2000만원에 낙찰되면서다.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이후 위작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국민화가'로 등극하며 작품값은 고공행진했다. 현재 작품값은 호당 가격 2억9000만원선이다. 이후 박수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가나아트센터, 갤러리현대등 국내 메이저화랑에서 박수근을 '제대로 보자'며 전시를 열기도 했다. 미술계는 "박수근이 한국 근대작가의 뿌리"라고 여긴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개막을 앞둔 10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최초 공개되는 작품 '노인들의 대화'를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내일부터 3월 1일까지. 2021.11.10. [email protected]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서구의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어 화단을 풍미했지만, 박수근은 시종일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단순한 구도와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표현한 그림을 고수했다.

창신동 집에서 명동 PX, 을지로의 반도화랑을 오가며 목도한 거리의 풍경, 이웃들의 모습을 화폭에 주로 담았다. 동시에, 동시대 서양미술의 흐름에도 관심을 가지며 공간, 형태, 질감, 색감 등의 회화요소를 가다듬어 나갔고, 자신의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모던한 회화 형식과 화법을 구축했다.

일체의 배경을 제거하고 간략한 직선으로 형태를 단순화하고 거칠게 표면을 마감한 그의 회화는 ‘조선시대 도자기’, ‘창호지’, ‘초가집의 흙벽’, ‘사찰의 돌조각’ 등을 연상시키는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현재 국내 20종의 미술 교과서에서 박수근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필수교육만으로도 박수근을 알고 그림도 익숙하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박수근, 고목과 여인, 1960년대 전반, 캔버스에 유채, 45x38cm, 리움미술관


◆덕수궁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시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선한 화가’,‘신실한 화가’, ‘이웃을 사랑한 화가’,‘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등의 수식어로만 제한되던 박수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우선 박수근이 살았던 전후(戰後) 시대상에 주목하였고, 당시 화단의 파벌주의로 인한 냉대나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불우한 화가였다는 고정관념을 벗겨내고 박수근의 성취를 조망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시행된 박수근전작도록 발간사업을 통해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과 연구성과를 토대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수근의 활동을 소개한다.

전쟁 전 도청 서기와 미술교사를 지냈던 박수근은 전쟁 후에는 미군부대 내 PX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렸고 그곳에서 소설가 박완서를 만났다. 미군부대는 박수근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온갖 수모를 견뎌내야 했던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을 아끼는 후원자들을 만나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박수근은 해방 후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에서도 외국인들에게 먼저 주목받았고, '동서미술전(Art in Asia and the West)'(샌프란시스코미술관, 1957), '한국현대회화전)'(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1958) 등을 통해 한국 중견작가들과 함께 해외에 소개되었다. 참혹한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고단한 이웃의 생활을 담담하게 표현한 박수근을 통해 전후 1950-60년대 한국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박수근, 복숭아, 195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28x50cm, 고려대학교박물관


◆ '밀레를 사랑한 소년' 박수근...예술의 원천은?

전시는 박수근의 시대를 읽기 위해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4가지 키워드로 꾸몄다.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으로 구성했다.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된 반도화랑과 그의 그림을 수집한 외국인들을 소개, 이들이 박수근 작품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이것이 어떻게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폭넓은 공감을 얻어냈는지 살펴볼수 있다.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은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박수근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0대 시절의 수채화부터 1950년대 유화까지 그의 초기 작품들을 선보인다. 박수근이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했던 화집, 미술 잡지, 그림엽서 등의 자료들은 그가 다양한 미술 정보를 섭렵하며 화풍을 완성하게 된 과정과 박수근 예술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부 '미군과 전람회'에서는 한국전쟁 후 재개된 제2회 국전에서의 특선 수상작부터 그가 참여한 주요 전람회 출품작들을 전시한다. 박수근의 미군 PX 초상화가 시절과 용산미군부대(SAC) 도서실에서 열린 박수근 개인전(1962)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매개로 박수근이 견뎌낸 참혹한 시대를 공감하고, 2부에서 소개되는 그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을 새롭게 감상해 보기를 제안한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박수근, 판잣집, 1950년대 후반, 종이에 유채, 20.4x26.6cm,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3부 '창신동 사람들'은 박수근이 정착한 창신동을 중심으로 가족, 이웃, 시장의 상인 등 그가 날마다 마주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최근 박수근전작도록사업을 통해 조사된 유화 2점이 공개된다.

또한 박수근의 그림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담은 한영수의 사진이 전시되어,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1950-6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을 따스한 시선과 모던한 감각으로 표현한 예술가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이 완성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박수근이 평생 즐겨 그린 소재는 여성과 나무이다. 그의 그림에서 고단한 노동을 하는 여성과 잎사귀를 다 떨군 나목은 ‘추운’시대를 맨몸으로 견뎌낸 한국인의 자화상으로 보인다.

전쟁후 질곡의 삶을 살며 화폭에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았던 가난한 화가의 열정과 성취감을 만나볼 수 있다.  왜 '국민 화가'인지를 제대로 느껴볼수 있는 기회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박수근을 새로운 시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작가의 가방(Artist Box)(가제)’교구재를 개발하여 전시가 종료되는 3월 1일부터 전국 중등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2년 3월 1일까지.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개막을 앞둔 10일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전시 관계자가 작품 '쉬고있는 여인'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는 내일부터 3월 1일까지. 2021.11.10.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