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문제로서 기본 역할 못해"…평가원 뼈 때린 법원
법원,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오류 인정"변별력 위한 문항" 평가원 주장 배척"정답유지시 불필요한 고민 하게 돼"평가원 "항소 안할 것"…곧 확정 전망
1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수험생 A군 등 92명이 평가원을 상대로 "수능시험 정답결정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선택한 수험생과 그렇지 않은 수험생들 사이에 유의미한 수학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수능 문제로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18일 치러진 2022학년도 수능에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에 제기됐다. 수험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문제를 공론화했고, 유명 석학들도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생명과학Ⅱ 20번은 동물 종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 멘델집단을 가려내 옳은 선지를 구하는 문제다. 계산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보기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평가원은 156건의 이의제기를 접수했지만 정답은 5번으로 유지하는 처분을 내렸다. 전문가 자문과 심의를 거친 만큼 문제와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수험생들은 충분한 논리성·합리성을 가진 풀이방법을 수립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 자체의 오류로 인해 정답을 선택할 수 없게 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제의 오류가 있음에도 정답을 유지하겠다는 평가원의 핵심 주장을 반박하면서 사실상 교육당국을 꾸짖는 것과 같은 판단을 내놨다. 이어 "만일 이번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유지한다면 수험생들은 앞으로 수능 과학탐구 영역에서 과학원리에 어긋나는 오류를 발견해도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평가원은 "문항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교육과정 학업 성취 기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평가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번 문제로는 수험생들의 학업 성취 능력을 변별할 수 없다고 꼬집은 것이다. 나아가 재판부는 수능 문제로서 기본적인 역할을 못 하므로 평가지표로서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보고 정답이 5번으로 유지한 평가원의 처분을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재판부의 판단에 책임을 지고 선고 직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강 평가원장은 "수험생과 학부모님 그리고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국민께 충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평가원은 해당 응시자 모두를 정답 처리할 예정이다. 평가원이 재판부의 판단에 불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사상 초유의 수능 오류 소송은 1심 재판부의 판단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