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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아미' 40대 아저씨가 쓴 짧은 라스베이거스 방탄소년단 순례기

등록 2022-04-11 01:25:24   최종수정 2022-04-19 10: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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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있는 도시인데, 바다에 온 기분 이거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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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뉴시스] 방탄소년단 BTS PERMISSION TO DANCE THE CITY - LAS VEGAS_메인. 2022.04.08. (사진 = 하이브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라스베이거스=뉴시스]이재훈 기자 = 고백으로 시작하자면, 40대 초반 아저씨인 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팬덤 아미는 아닙니다. '위장 아미'라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주변에 아미 우군도 많습니다. 한집에 같이 사는 사람부터 주변에 친한 지인들 중 아미가 한둘이 아닙니다. 기사를 쓰면 온라인 댓글 반응보다 먼저 스마트폰 메신저로 "잘 봤다"며 응원해주는 아미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 역시 방탄소년단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팀을 절로 응원하게 됩니다. 2년 연속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이 불발됐을 때, 속보보다 아쉬움의 탄식이 먼저 나왔으니까요.

'그래미 문턱'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방탄소년단은 기대를 품게 만드는 팀입니다. 10여년간 대중음악을 취재해왔는데 '설마 되겠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 팀이기 때문이죠.   

또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국 가수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이렇게 당연해질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2012년 그야말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핫100'에서 7주 연속 2위에 머무른 걸 보고, 현지 진입장벽을 깨기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그 이후에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과 달리 '핫100'에서 한국 가수가 높은 순위에 진입하기는 힘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재작년 '다이너마이트'를 시작으로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마이 유니버스'(콜드플레이와 협업곡)까지 연달아 '핫100' 1위에 올리는 걸 보면서 아직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방탄소년단 멤버 진 말마따나 그래미 역시 "계속 도전 가능하기 때문에" 언젠가 수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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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뉴시스] 방탄소년단 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LAS VEGAS. 2022.04.09.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지켜본 방탄소년단 역시 기대감을 품게 했습니다.

사실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가 '더 시티(The city)'라는 타이틀로, 방탄소년단 IP(지식재산권)를 가지고 이 거대한 도시를 채운다는 이야기가 처음엔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상징색인 보랏빛으로 물들고, 각종 전광판에 방탄소년단 콘서트 광고가 등장하고, MGM 그룹 리조트 등 현지 업체들이 방탄소년단과 하이브에 적극 협조하는 걸 지켜보면서 도시 전체가 방탄소년단 위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이 공식 트위터 계정 이름을 '보라해가스(BORAHAEGAS)'로 바꾸고 도시 알리기에 적극 나서기도 했으니까요. 보라해가스는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애정표현인 '보라해'와 라스베이거스의 합성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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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뉴시스]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히트곡 '다이너마이트'와 '버터'에 맞춰 춤을 추는 벨라지오 분수쇼. 2022.04.08. (사진 = 하이브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현지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연 콘서트는 단순한 공연이라기보다 도시 문화 생태계를 재편하는 구심적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회당 5만명, 총 4번 공연에 20만명이 몰리고 이 인원들이 스타디움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진전·팝업스토어 등 방탄소년단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니 그 표현이 마냥 과한 건 아닙니다.

현지에서 또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세계 3대 분수쇼'로 통하는 벨라지오 호텔 앞 분수대에서 '다이너마이트'와 '버터' 음악에 맞춰 펼쳐졌던 화려한 분수쇼입니다. 9일 지켜본 콘서트에서 '아이돌' 무대가 끝난 후 앙코르를 기다리는 객석에선 분수쇼보다 더 유려한 파도타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는데요.

제이홉은 이 풍경에 "여러분들 저는 방금 바다에 온 줄 알았어요. 여기는 사막에 있는 도시인데, 바다에 온 기분 이거 뭐죠? 여러분들의 웨이브를 보고 정말 감동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죠. 방탄소년단의 앨범 '러브 유어셀프 승 허'(2017) 수록곡 '바다'의 노랫말이 떠오르는 말입니다. 방탄소년단은 이 곡에서 "내가 닿은 이 곳이 진정 바다인가 아니면 푸른 사막인가"라고 노래하기도 했죠.

물론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모든 이들이 호평만 쏟아낸 건 아닙니다. 만달레이 베이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카페 인 더 시티'라는 타이틀로 구성한 한식 메뉴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식을 알리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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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전 'BEHIND THE STAGE  PERMISSION TO DANCE'. 2022.04.08. (사진 = 하이브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저도 종종 착각하는 부분인데 방탄소년단의 선한 영향력이 워낙 대단하다보니까 소속사 하이브가 기업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을 때가 있습니다. 하이브 이진형 CCO도 "저희가 기업인 걸 잊으실 때가 있다. 저희에게 도덕적 것도 많이 요구되고. 사회적인 기대치가 높은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니까요.

사실 이번에 하이브는 이번에 '더 시티' 프로젝트를 알리면서 상당 부분 솔직했습니다. 특히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병역과 관련, 병역법 개정안 보류 등 불확실성으로 인해 멤버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으니까요.
 
아울러 "팬들에게 즐거운 경험, 행복한 경험을 주는 것도 사업의 일환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공존됐으면 한다"고도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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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뉴시스] 방탄소년단 카페 인 더 시티(CAFÉ IN THE CITY)_메뉴. 2022.04.08. (사진 = 하이브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기업이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건 당연합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이 있어야 질 높은 문화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제 눈길을 끌었던 건 그런 와중에도 하이브가 다양성을 품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지점입니다.

카페 인 더 시티 메뉴 중 저는 부러 비건(vegan) 메뉴를 골라 먹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빔국수가 입맛에 맞았습니다. 스캘리언, 참깨, 붉은 고추, 해초 등을 사용했는데 상당히 맛이 좋았습니다. 얼마 전 국내에서 유행한 들기름 막국수의 풍미가 배어났어요. 이밖에도 김치 볶음밥, 빙수 등이 비건 등을 위한 메뉴로 준비됐죠. 비건, 즉 채식주의자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나 아직은 그 수가 많지 않죠.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기간(8~9일, 15~16일 얼리전트 스타디움)에 맞춰 하이브 산하 7개 레이블이 연 합동 오디션에서도 다양성을 품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성별에 관계없이 만 11세부터 19세까지 지원자를 받으면서, 지원서 란에 성별을 데이(they)로 표시할 수 있는 칸을 만들었어요. 실제 데이(they)들이 이번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했죠. 자신을 남녀의 이분법적 구분에 넣지 않고 '논바이너리(non-binery)'라고 규정하는 이들은 '그'나 '그녀' 대신 '그들(they·them)'로 본인들을 지칭합니다. 영국 팝스타 샘 스미스가 대표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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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뉴시스] 방탄소년단 팝업스토어 'BTS POP-UP _ PERMISSION TO DANCE in Las Vegas'_외부 전경. 2022.04.08. (사진 = 하이브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K팝 아이돌 음악은 태생과 확산부터 국내외 소수자들의 연대에서 출발했습니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황금기에서 작품성 없는 음악 취급을 받았을 때도, 처음 해외에서 주목을 받을 때도 소수 마니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로 삼았죠.

특히 K팝은 해외에서 다양한 인종이 뭉친 팬덤의 연대 게릴라 활동을 통해 퍼져나갔고, 이제 주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음악이 됐습니다. 그 절대적인 본보기가 바로 방탄소년단이죠.
 
사실 전 아이돌을 꽤나 좋아하는 편에 속합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이던 시절에 등장한 1세대 아이돌부터 지금의 4세대 아이돌까지 관심 있게 지켜봐왔습니다. 그럼에도 사실 아이돌의 활동이나 가치에 한계를 뒀던 것도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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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뉴시스] 하이브 멀티 레이블 오디션. 2022.04.08. (사진 = 하이브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방탄소년단이 데뷔 초창기에 힙합 아이돌을 표방했을 당시 낸 2번째 미니앨범 '스쿨 러브 어페어(Skool Luv Affair)'(2014) 쇼케이스에서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애티튜드도 중요하다"고 슈가가 말했을 때 "귀엽다" 정도로만 반응을 했으니까요. 방탄소년단을 명실살부 글로벌 스타덤에 올린 곡은 '다이너마이트'와 '버터'처럼 '버블검 팝'(10대들을 타깃으로 한 대중음악 장르)이지만 이들이 본격적인 장르 음악을 해도 이제 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 최근 예고된 미국 힙합 스타 스눕독과 협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 아미가 된 분들이 있다면 방탄소년단 정규 1집 '다크&와일드(DARK&WILD)'(2014) 수록곡 '힙합성애자'(Hip Hop Phile)를 적극 추천합니다. 프로듀서 피독과 함께 멤버들이 스눕독에 대한 존중심을 표하기도 한 곡인데요.

피독, RM, 슈가, 제이홉이 노랫말을 함께 만든 이 곡에서 "남들처럼 제이-지(Jay-Z), 나스(Nas) 물론 클래식한 일매틱(Illmatic)과 '도기스타일(Doggystyle)"이라고 언급하는데, '도기스타일'은 스눕독의 데뷔 음반(1993) 제목입니다. '일매틱'은 힙합 거장 나스의 데뷔음반이자 힙합계의 전설적인 명반 제목이죠. 힙합계의 전설과 명반들을 연달아 언급한 '힙합성애자'는 데뷔 초창기 힙합 아이돌 그룹을 표방한 방탄소년단과 피독의 힙합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곡으로 평가 받습니다.

수많은 아미들을 만났지만 이번엔 얼리전트 스타디움 앞에서 만난 주부 이은영 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마흔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앳된 얼굴을 지닌 그녀는 이번 라스베이거스 4회 콘서트를 모두 보고 '더 시티' 프로젝트도 적극 즐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자신을 위한 휴식을 즐기는 듯한 그녀를 보면서 "자신을 사랑하라"는 방탄소년단의 '러브 유어셀프'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미국 올랜도에서 왔다는 엠마도 방탄소년단 노래에는 "꾸준히 서로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메시지가 담겨 힘을 얻는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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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뉴시스] 방탄소년단 콘서트 장소 얼리전트 스타디움(Allegiant Stadium) 외경. 2022.04.09.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전, 팝업스토어, 공연장에는 이밖에도 다양한 모습의 아미들이 함께 어우러졌습니다. 이들이 모일 때 새로운 문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충분히 한 도시를 움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콘서트를 여는 곳은 아미들이 교류하는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합니다. 백인과 흑인, 유럽인과 아시아인, 남성과 여성, 노인과 청년 등 언뜻 모순적이게 보이는 요소들이 덩굴처럼 자연스럽게 엉키죠.

뜬금없이 한국 기자단 옆을 지나가면서 "BTS XXXX"라고 욕을 한 백인 청년에게도 이 덩굴에 들어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막에서 라스베이거스가 탄생한 것처럼, 이번 방탄소년단 콘서트로 사막이 마치 바다가 되는 신기루를 경험한 것처럼, 방탄소년단을 제대로 알게 되면 네 메마른 가슴에도 꽃은 피울 거라고요. 네 자신을 좀 더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이유 없이 미워하지 않을 거라면서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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