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걷는다, 술에 취한다…삶은 그런 것[이 공연Pick]
차진엽·고블린파티 신작…국립무용단 '더블빌'
국립무용단이 안무가 차진엽의 '몽유도원무'와 고블린파티(지경민·임진호·이경구)의 '신선' 두 편의 신작을 한 무대에 올렸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스타 현대무용가 차진엽, 컨템퍼러리 댄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온 고블린파티와의 협업이다.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선보이는 '더블빌'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고, 새롭고 감각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한 폭의 그림 '몽유도원무'…굽이굽이 풀어낸 삶의 여정 봇짐을 한가득 짊어진 한 사람이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간다. 봉우리는 치솟았다가 낮아지고 물결처럼 흘러 흘러간다.
하얀 옷을 입은 8명의 무용수는 봇짐을 하나씩 나눠 메고 곡선의 춤사위를 이어간다. 장구를 치고 상모를 돌리듯 전통적인 몸짓과 쭉쭉 뻗어나가는 현대적인 몸짓이 섞여 있다. 꼬리물기처럼 서로의 뒤를 잇고, 강강술래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돌기도 한다. 거문고의 라이브 연주와 전자음악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모티브로 한 '몽유도원무'는 현실 세계의 험준한 여정을 지나 이상 세계인 '도원'에 이르는 과정을 춤으로 그려낸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딛고 온 이들은 봄날처럼 피어나는 생명력을 그려낸다. 무용수들은 분홍의 꽃을 피워내고, 청록의 새잎을 돋아낸다. 새소리와 함께 새를 표현해내며 동물의 생명력도 그려낸다. 자연 속 삶의 순환이다. 다른 느낌의 두 세계를 몸으로 그려냈으나 본질은 같다. 차진엽은 몽유도원도 속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가 공존한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상향을 떠올렸을 때 유년기가 생각났다. 똑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데, 시각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상향은 멀리 있을 것 같지만, 우리 마음 안에 공존하고 있다."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잔을 받으시오." '신선'은 현세의 걱정을 잊고 오로지 춤에 심취한 여덟 신선의 놀음을 그려낸다. 귀에 익숙한 '권주가(勸酒歌)'가 몇차례 흘러나오는 작품의 중심엔 '술'이 있다. 들리던 음악 그대로, 객석의 조명이 꺼지지 않은 채 무대엔 검은 옷의 여성 무용수가 슬그머니 등장한다. 천천히 걸음을 떼며 춤을 추고, 무대에 놓인 스탠드 마이크를 툭툭 치기도 한다. 무대가 시작된 건지 관객들이 어리둥절할 때쯤 본격적인 공연이 펼쳐진다.
"이것은 맺고 어르고 푸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평소 신선 같은 모습으로 세상의 근심을 덜어내려 애씁니다. 오로지 춤에 몰두하는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술을 한잔합니다. 우리는 취해져 갑니다." 무용수의 입으로 작품의 의도를 직접 전한다. 몸이 주인공이 되는 무용 무대에서 흔치 않은 모습이다. 무용수들은 말하고, 노래도 한다. '새로운 선'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담은 이 작품에서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해보고 싶었다는 고블린파티의 아이디어다. 하얀 새벽부터 어스름한 노을, 어두컴컴한 밤까지 조명으로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술잔과 술상(소반)도 등장한다. 소반을 장구나 북처럼 두드리고, 술을 마시는 움직임도 이어진다. 어르고 풀며 비틀거리고 흔들리며, 취해 쓰러지기도 한다. 소반은 아슬아슬한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마치 물가에서 놀듯 무용수들은 신선이 되어 자유롭게 춤에 취하고, 술에 취한다. 이는 술에 취해 시름을 잊으려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안부를 묻고 걱정을 내려놓자며 술을 권하는 권주가처럼,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