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튀르키예 지진 여파는 진행형…곳곳에 상흔 가득
해안가 호텔 문닫고 황량…이스켄데룬 항구 화재는 진화 중도로는 주저 앉고 솟아 차량 통행 방해…가로등은 휘고 쓰러져카라만마라슈 초입부터 차박 행렬…시내는 주차장으로 변해이재민 임시 시설 인산인해…구조 기다리는 간절함은 여전
[이스켄데룬·카라만마라슈=뉴시스] 이종희 기자 = 12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항구도시 이스켄데룬은 강진으로 처참히 무너진 모습이었다. 이스켄데룬 항구로 향하는 해안가 도로는 지진 발생 이후 해수면이 상승해 바닷물에 잠겼었다. 바닷물이 해안 깊숙이 들어오면서 인근 주민은 외곽으로 대피해야 했다. 차오르던 바닷물은 이제 빠져 나갔지만, 해안가 건물 곳곳에는 펌프로 남아 있는 물을 퍼올리고 있었다. 도로에는 지진으로 생긴 상처가 남았다. 차들은 도로가 군데군데 파이고 갈라진 곳들을 힘들게 피해 다녀야만 했다. 바닷물과 함께 찾아온 진흙도 도로를 뒤덮었다.
이날 호텔 앞에서 만난 한 보안 직원은 기자에게 지하 2층에 균열이 가고 계단이 부서진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직접 보여주면서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말했다. 유명 브랜드 호텔 외에 다른 곳들도 모두 영업을 멈추고 일시 정지 상태였다. 호텔에 머물던 관광객들이 모두 대피하고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이 황량하게 느껴졌다. 인근 주거지가 무너지면서 생긴 폐허는 가슴을 아프게 했다. 폐허 마다 중장비를 동원해 구조 작업도 진행 중이었다. 콘크리트 잔해와 가구, 생활용품, 쓰레기 등이 뒤엉키면서 이곳이 지진 피해 현장임을 실감케 했다.
주변 학교는 이재민들은 위한 구호품을 배분하는 장소가 됐다. 튀르키예 국기가 조기로 게양된 학교에는 구호품을 기다리는 이재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인근 지역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구호품을 받기 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이재민들은 차분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양손에 물과 옷가지, 음식들을 들고 돌아가기 바빴다. 구호품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알리시씨는 "주변 마트와 식당들이 문을 닫아 구호품을 받지 않으면 당장 생활이 어렵다"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기다려야만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항구에 직접 접근할 수는 없었지만 잠시 쉬고 있던 소방관과 눈이 마주쳤다. 멀리서 보기에도 그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고된 작업을 잊고 쉬는 시간에도 기자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로 이동하는 도중에 잠시 들른 휴게소에는 이재민들이 많았다. 차에 짐을 한가득 싣고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절박하게 느껴졌다. 카라만마라슈로 향하는 도로에도 지진 피해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도로는 아래로 움푹 들어가고, 위로 솟아 있어 차량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가로등은 휘어지고 쓰러져 있었다.
시내도 큰 차이는 없었다. 도로 대부분이 이재민들의 차량으로 주차장이 됐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생긴 잔해들로 시내를 빠져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숙을 하는 이재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불과 담요로 지붕을 하고, 비닐 한 장으로 문을 만든 그들의 거처를 보고 나니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근처에 이재민 임시 시설이 여러 곳에 마련됐지만 지진 피해 규모가 크다 보니 이재민 모두를 수용할 수 없어 보였다.
구호품을 나르는 차량은 계속해서 들어오지만 물과 음식 등 필수품은 금세 동이 났다. 이재민들은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근처에서 시설을 통제하는 군인과 경찰에게 물어봐도 이곳에 있는 이재민의 규모를 모른다고 답했다. 낮에는 비교적 따뜻했지만 밤이 되자 기온은 영하 가까이 떨어졌다. 이재민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운 모닥불에 시설 주변은 연기로 뿌옇게 변했다.
포크레인들은 잔해를 치우느라 연신 기계음을 냈다. 구조대원들도 잔해 사이를 다니면서 구조 작업에 열을 올렸다. 현장 근처에는 이재민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되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다른 지역의 피해 상황을 살피고 온 뒤여서 나름대로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피해 현장을 마주하니 정신이 멍해졌다. 현장 근처에서 불을 쬐고 있는 남성에게 다가가 이곳이 집이었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내와 딸 사진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의 눈이 슬퍼 보였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물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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