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과 불멸, 사랑이 '경계'를 넘는 순간…연극 '렛미인' [객석에서]
9년 만에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나는 '렛미인'뱀파이어 일라이와 인간 오스카의 사랑이야기고정된 무대 배경 '미니멀'한 연출로 감정 몰입군무로 점층되는 감정…사랑에 대한 질문 던져'렛미인', 8월 1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생존을 위해 흡혈해야 하는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외로운 소년 '오스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차갑고 단절된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가까워질 수 없어 보였던 이들은 집 앞 숲속에서 계속해서 만나며 조금씩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연다.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제작한 연극 '렛미인'은 2016년 국내 초연 이후 9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올랐다. 이번 내한도 오리지널 팀이 참여해 존 티파니가 연출을, 스티브 호겟이 안무를 맡았다. 작품은 오스카와 일라이가 점차 서로에게 끌리며 만들어내는 특별한 유대감을 그린다. 뱀파이어라는 비현실적 설정 속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주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오스카는 극에서 가장 외로운 인물이다. 학교에서는 괴롭힘에 시달리고 선생님은 이를 방관한다. 집에서는 알코올중독자 어머니로부터 위로는 물론 보살핌조차 받지 못한다. 집도, 학교도 모두 그를 달래주지 못하고 안식처가 돼주지 못한다. 빼곡히 들어선 자작나무와 설원의 숲은 오스카의 유일한 안식처다.겨울 풍경의 나무, 눈바닥, 정글짐 등 최소화한 무대는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숲은 일라이에게도 중요한 공간이다. 그의 굶주림을 채워주는 공간으로, 하칸이 일라이를 위한 피를 얻기 위해 살인을 자처해 실행하는 곳이다. 두 사람 각자만의 의미가 담긴 공간은 무대 전반에 고정된다. 조명, 소품, 인물의 등장을 통한 극적 전환 대신 정서를 축적하는 방식을 채택한 미니멀한 연출은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온전히 인물에게 꽂히게 하는 영리한 선택이다.
대사와 표정 만으로 담기 어려운 감정은 군무를 통해 표현된다. 음악에 맞춰 흐르는 몸놀림은 고요함 속에 생동감을 더하고,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작품은 감정의 깊이와 결을 살리면서 역동성을 놓치지 않는다. 오스카와 일라이의 관계는 후각이라는 감각적 장치를 통해 묘사되기도 한다. 일라이는 끊임없이 냄새에 집착하는데, 냄새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경계를 의미한다. 오스카는 처음 악취에 난색을 보이지만 결국 "나든 상관없어. 네 냄새잖아"라며 일라이와의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있는 그대로 품어내는 장면은 오스카의 헌신적인 사랑이 오롯이 전달된다. 이들의 미래를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오스카의 앞날에 일라이를 사랑한 동반자였던 하칸의 모습을 겹치는 연출로, 이 관계가 이어질지 혹은 또 다른 희생을 향한 길인지를 암시한다. 과연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새드엔딩으로 막을 내릴까. 하칸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하길 바라며 오스카의 선택과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연극 '렛미인'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각자 처해있는 상황은 다르지만 각자의 고독을 공유하며 사랑으로 승화한다. '불멸'의 일라이와 '필멸'의 오스카. 두 사람의 순탄치 않을 여정을 암시하며 여운을 남긴다. 막이 내릴때 쯤 이 잔혹동화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8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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