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친 사람들, '힐링여행'을 찾는다
사전적으로 마음을 위안하며 치유하는 것을 힐링(healing)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내세운 웰빙(well-being)이 대세였다. 어쩌면 이는 못살다가 잘살게 된 졸부들의 습성 같은 것이었나? 살이 찌면 다이어트가 대세이듯 건강을 챙기고 나니 더 부족한 곳을 메꾸는 데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보다. ◇늦은 밤 안방에서 명상하기도 대한민국이 불경기에 신음하고 있다. 상실의 시대를 사는 88만원세대부터 지갑을 닫기 시작, 국민 대부분이 소비를 모르고 산다. 한 식당 주인은 밤늦은 시간 가게 문을 닫은 후 집 안방에서 명상한다고 말한다. 오매일여(寤寐一如)인가. 성철(1912~1993) 스님이 말한 것처럼, 깨어있으나 자고 있으나 한결같이 정신줄을 안 놓을 수도 있나 보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체념과 달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분수를 알고 만족함을 아는 ‘안분지족’형의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한다. 모든 것은 관계성 위에 있고 얼기설기 이어지다 못해 꼬여있기도 하다. 복잡하게 꼬여진 매듭을 풀려면 가위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서부터 묶인 것인 줄도 모른다. 막무가내로 자른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실보다는 사실관계가 중요하고 어느 때부터인지 ‘느낌’이 더 중요한 시기가 됐다. 이성보다는 감성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복잡한 전자기기 문명의 사회와 최악으로 치닫는 질곡의 인간관계에서 많이 지쳤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치유에 더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듯싶다. TV 광고나 젊은 여성들이 환호하는 뮤지컬 또는 웰빙으로 붐을 이뤘던 음식 여행업계 등에서는 치유를 내세운 힐링 마케팅이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보이차를 비롯해 녹차, 황차 등을 본격적으로 내놓은 차 업계나 침향, 사향, 용연향 등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3대 향을 내세운 향 업계까지…. 과거에는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물건들이 우리 눈앞에 고가로나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모두 치유에 좋다는 명분으로 등장하는 귀한 물건들이다.
차는 나눔이다. 차는 인품이라고 하는데 나눠서 마셔야 할 차를 독차지한다고 행복하지는 않을 듯싶다. 그런 추측이 맞는지 나만의 차방을 가진 사람들은 곧 세상으로 관심을 둔다. 차는 일상다반사다. 어느 나라에 가도 그 나라의 특산 차가 있다. 또 독특하게 마시는 방법이 존재한다. ◇아토피도 낫게 하는 ‘숲의 힘’ 아토피가 심한 한 소녀는 어려서부터 온갖 실험의 대상이 된다. 안 먹은 한약이 없고 안 받은 의학치료가 없을 정도다. 미용실에서도 찜질방에서도 아토피에 좋다는 온갖 물건과 처치를 만난다. 하지만 소녀는 운이 없었나 보다. 옥으로 된 방에 들어가도, 좋다는 온천에 자주 가도 아토피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덧 숙녀가 된 소녀는 우리나라의 산림수도라고 할 수 있는 강원도 평창군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된다. 아토피가 낫는 것은 치유보다는 치료라고 할 수 있나? 몸이 나으면 마음도 낫는다. 가을이면 길에 주렁주렁 걸리는 가지는 농약이 없이도 잘 자란다. 다 자란 가지는 무척이나 싸다. 손이 타지 않아서 그런지 생산량이 많아서 그런지 흔하고 흔한 게 가지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가지를 그늘진 곳에서 말린다. 심하게 말리면 딱딱해진다. 그리고 칼을 대고 조각을 내어 차를 만든다. 자사차호도 좋고 옥으로 만든다면 더 좋다. 하지만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 스테인리스 주전자로 한참 끓이면 된다. 물에 검은빛이 돌 정도로 한참을 끓인 후에 한잔한다. 한잔이 아니라 두잔 세잔 계속에서 마신다. 장복한다는 말이 이에 해당할 것 같다.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끌인 가지 차를 식힌다. 식힌 찻물을 휴대용 물뿌리개 용기에 넣고 아토피가 심한 곳에 뿌린다. 피톤치드를 물론이고 평창군의 온갖 나무들이 뿜어대는 호흡을 맡으며 가지 차를 마시고 뿌리면 몇 달도 안 돼 아토피는 빠르게 치유된다. 우리나라에는 평창을 비롯해 곳곳에 산림이 풍부하고 인적이 드문 힐링의 명소가 적지 않다. 이런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굳이 외국으로 나갈 필요가 없을 듯싶다. 힐링만 제대로 된다면 굳이 외화를 낭비하면서 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국내에 있으면 혼자서 지내기 어려운 사람도 적지 않다. 수시로 걸려오는 휴대전화도 받아야 하고, 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 소리 탓이다.
외국에서 힐링하고 싶다면 동남아의 이름 없는 해변에 유명한 호텔 리조트에서 바다를 한없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별장을 강가나 바닷가에 지으면 허무에 빠져 자살을 하고, 산속에 지으면 외롭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서 다시 사람을 만나러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바닷가보다 산속의 길을 걷는 것이 힐링에 무척이나 좋은 것은 숲 해설사 등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산은 보는 순간 반하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다. 원시 이래로 샤머니즘의 신은 산 그 자체였다. 후대에 산신이라고 하고 인격화시키기도 하지만 산 자체가 ‘신’이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우리 무속은 물론이고 티베트나 인도 그리고 일본인들도 산을 있는 그대로의 신으로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산 가운데 범접하기 어려운 산도 있다. 수미산이라고 하는 지구의 성산을 티베트에서는 ‘강 린포체’라고 부른다. 포커라 주변 8000m가 넘는 고봉 안나푸르나 옆에 있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마차푸차레’(해발 6993m)는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물고기 꼬리’라는 뜻이다. 과거 바다였던 곳이 부상한 것인가? 어쨌든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해발 3700m)에서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성산으로 네팔인들은 이 산에 오르는 것을 금한다. 출입이 금지당한 티베트와 네팔의 이 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순례의 마음으로 간다. 티베트어로 ‘코라’라고 하여 강린포체(눈의 보석: 설산의 의미)를 앞에 두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계방향으로 도는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수미산을 ‘히말라야의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단순한 힐링을 넘어 ‘나는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비롯한 영적인 순례 여행은 아무런 목적 없이 온 사람들에게도 ‘치유’ 나아가 ‘깨달음’이라는 거대한 선물을 선사한다. 카오스 혼돈의 상태로 어지러운 사람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고마운 산이 버티고 있어 순례하는 사람들은 한 바퀴 돌고 나면 세계의 중심이 아니 나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를 알게 된다. 대부분 순례가 끝날 즈음에 샘솟는 환희심에 위대한 치유를 체험한다. 네팔의 마차푸차레 역시 비슷한 체험을 선물한다. 안나푸르나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몸은 고산병으로 힘이 들지만, 알 수 없는 빛이 몸에서 나오는 방광을 체험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6000m 이상의 고봉들이 있는 히말라야는 이렇게 ‘치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침울하고 답답한 시국에 두 산을 순례해서 복잡해진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오는 것도 힐링의 한 방법이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 오대산, 계방산, 가리왕산, 황병산 등도 좋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