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한류③]일리한 오지서 꽃 피운 한전 '기술력'…"무(無)에서 유(有) 창조"
【일리한=뉴시스】박성환 기자 =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160km가량 이어진 '슬랙스(South Luzon Expressway)' 고속도로. 지난 21일(현지시간) 오전 이 도로를 따라 3시간 남짓 내달리자 바탕가스(Batangas) 시(市)가 나타났다. 바탕가스에서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1시간 가까이 곡예 운전하듯 달리자 일리한(Ilijan)이라는 오지 어촌 마을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열대림을 불태우듯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일리한 마을에서 동쪽으로 10여분 더 들어가자 100여m 높이의 굴뚝 4개가 위용을 뽐냈고, 송전탑이 나란히 우뚝 솟아 있었다. 단번에 이곳이 한전의 1200MW급 일리한가스복합발전소임을 실감케 했다. 한국의 고리원자력발전소(100만㎾)보다도 큰 규모다. 인적이 뜸한 오지에 자리 잡은 일리한발전소는 언뜻 봐서 최첨단 연구단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잘 정돈돼 있었다. 섭씨 35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발전소에서는 안전모 등을 착용한 한국전력공사(KEPCO) 파견 직원과 현지 직원들이 분주하게 작업하고 있었다. 일리한발전소는 지난 2002년 6월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20년간 운영 후 필리핀 정부에 인계하는 사업(BOT)으로 운영되고 있다. 500km 떨어진 바다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말람파야 가스전)를 해저로 끌어와 연료로 사용한다. 최고 성능의 가스터빈 2개가 양질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극심한 전력난을 고민하던 필리핀 정부가 사업기간 동안 연료 및 부지를 무상제공하면서 수익성도 뛰어나다. 지난해 말 기준 누계매출 약 2조1000억원을, 대림과 효성 현대중공업 등 20여개의 국내기업이 기자재 공급 및 시공에 참여해 1억4000만 달러의 부대효과를 달성하는 등 명실상부한 KEPCO의 대표적인 성공 해외사업으로 꼽힌다. 일리한발전소는 세계 최대 가스복합화력발전소로 필리핀 루손지역 발전량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필리핀 당국이 허용하는 불시 정지 허용일이 연간 10.95일이다. 하지만 일리한발전소는 지난해 3.3일에 불과했다. 한전의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안정성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3년 에너지 전문지 '파워(Power Magazine)'가 선정한 세계 톱12 발전소 중 하나다.
하지만 발전소 업무를 총괄하는 한전 파견 직원 8명의 근무 여건은 역할하다. 워낙 오지라 발전소 인근에는 문화시설은커녕 변변한 음식점도 없다. 또 주중에는 발전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에 도시지역에 사는 가족들과 상봉한 뒤 일요일밤 기숙사로 돌아오는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기숙사 식당이 일리한 지역 내 유일한 한인 식당이자 최고의 식당"이라며 너스레를 떤 이병윤 일리한발전소장은 "한전이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가장 큰 이유는 어려운 여건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한전인들만의 고유한 DNA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일리한발전소는 전기 공급 사업은 물론 교육 및 의료, 생계지원 사업 등 꾸준한 지역협력 사업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름도, 주인도 모르는 동네 개 2마리와 고양이 2마리가 어느 날부터 발전소에 찾아와 마치 제집인양 스스럼없이 한전 직원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다. 이 발전소장은 "해외사업은 아무것도 없는 낯선 불모지에 가장 먼저 씨를 심는 것과 같다"며 "여건이 힘들다고, 과정이 어렵다고 중간에 포기해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공기업이지만, 사업에 본격 뛰어들면 공기업 마인드를 버리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심정으로 모든 걸 걸고 도전해야 한다"며 "한전만의 뚝심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조직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되면 세계 어디에서라도 한전이라는 브랜드를 꽃 피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