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초점] '보헤미안 랩소디' 음악영화 1위···퀸, 신드롬
퀸은 결성 43년 만인 2014년 8월14일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펼쳐진 록 페스티벌 '슈퍼 소닉 2014'의 헤드라이너로 첫 내한공연했다.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애덤 램버트(36)가 머큐리를 대신해 보컬로 나섰고,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71)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69)가 건재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비롯해 '위 아 더 챔피언스' '위 윌 록 유' 등으로 무대는 뜨겁게 달궈졌다. 하지만 퀸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퀸의 단독공연도 아니었고, 객석 반응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다시 퀸을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 퀸은 이후 일본을 다녀가면서도 한국을 찾지 않았다. 지난 10월31일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4일 누적 관객 수 627만 명을 넘었다. 퀸과 머큐리를 다룬 작품이다.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2012·감독 톰 후퍼)이 기록한 관객 592만 명을 훌쩍 넘어 국내에서 음악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섰다. ◇'보헤미안 랩소디', 예상 밖 흥행 돌풍 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개봉 전 국내 흥행 성공 전망이 불투명했다. 퀸과 머큐리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으나, 록과 성 소수자는 흥행 요소가 아니어서다. 머큐리 역의 라미 말렉(37)의 인지도도 낮았다. 한국 퀸 팬 클럽인 '퀸 포에버(Queen Forever)' 회장 김판준씨도 "개봉 전 시사회로 영화를 봤는데 뮤지션 소재 영화가 흥행한 경우가 많지도 않고 해서 100만 명만 넘겨도 성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대 영화 시장인 북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영화 누적 관객 수는 퀸의 고향 영국에 이어 한국이 다음 순위다. 메이는 영화사 20세기 폭스를 통해 "수백만 관객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찾아줬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공연을 통해 여러분을 꼭 만나는 날이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한국 관객에게 인사를 했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이유는 '해설의 힘'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면서 "너무도 좋아했고 익숙한 팝송인데 (영화를 통해)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들으니 더 절절하게 와닿는 것"이라고 짚었다. "사람들은 '아는 음악의 모르는 스토리를 듣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음악이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경험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머큐리와 퀸, 이들은 누구인가 모든 밴드가 그렇듯 퀸의 시작도 미약했다. 1970년 메이와 테일러는 보컬 팀 스타펠과 함께 '스마일'이라는 이름으ㅏ 밴드를 꾸려가고 있었다. 스타펠이 다른 팀으로 떠나고 이들과 알고 지내던 파록 불사라, 즉 머큐리가 보컬로 합류했다. 그리고 존 디콘(67·베이스)까지 나중에 가세하면서 우리가 아는 퀸이 형성했다. 1973년 데뷔 앨범 '퀸'부터 머큐리의 사망 이후 발매된 '메이드 인 헤븐'까지 스튜디오 앨범 15장, 라이브 앨범과 베스트 앨범 여러 장을 발매했다. 현재까지 2억 장 넘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퀸 1, 2집은 대중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완숙하지 못하다. 이 팀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3집에 실린 '킬러 퀸(Killer Queen)'이 성공하면서부터다. 록 음악보다 경쾌한 팝에 가깝다. 이후 음반사는 퀸에게 비슷한 스타일의 곡을 요구했다.
퀸은 멤버 네 명 모두가 히트곡을 보유한 작곡가다. 밴드가 결성된 당시로서는 드물게 넷 모두 대졸자인 '고학력 밴드'였다. 머큐리는 본래 디자인을 전공해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다. 대영제국 왕실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퀸의 유명한 '불사조 로고'도 직접 그렸다. 그간 퀸은 한국에서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다. '비틀스' '롤링스톤스' '레드제플린' '핑크플로이드' 등 다른 영국 출신 밴드들보다 덜 조명된 것이 사실이다. 퀸 노래는 록답기보다 멜로디컬했기 때문이다. 또 퀸은 비틀스처럼 음악 사용에 대해 비싸게 굴지도 않아 산발적으로 CF, 영화 등을 통해 언제나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을 좀 안다는 록 마니아들은 속으로는 퀸 노래를 따라부르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무관심한 척했다. 하지만 퀸 음악은 오래도록 남았다. 결국 좋은 음악은 모든 것을 이긴다. 퀸의 음악을 사용한 발레 '발레 포 라이프', 퀸의 음악만으로 구성한 뮤지컬 '위 윌 록 유' 등이 보기다. 힙합, EDM에 빠진 젊은 관객들도 또 다른 예다. 극장 상영관마다 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얼롱 열풍이 영화 흥행과 퀸 재조명에 한 몫 했는데, 체험하고 인증샷을 남기는 문화에 익숙한 10, 20대가 자연스레 동참했다. 영화 중반에 퀸의 대표곡으로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는 '위 윌 록 유'가 흘러나오면 관객은 흥얼거림을 시작한다. 드디어 하이라이트인 극의 종반부 '라이브 에이드' 장면에서 떼창이 폭발한다. 이런 쾌감 덕분에 'N차 관람'이 유행처럼 번졌다. 머큐리 사후 태어난 젊은 세대마저 퀸 음악에 빠져들었다. 지난달 27일 27번째 머큐리 기일에 퀸 노래를 따라부르는 메가박스 코엑스의 '돌비 애트모스 메모리얼 & 싱얼롱 상영회'에는 머큐리 코스프레 의상으로 객석이 넘쳐났다.
일부에서는 가무를 즐기는 한국인의 민족성과 맞물린 점도 영화 흥행 비결 중 하나로 꼽는다. 내한하는 팝스타마다 한국의 합창 문화에 대해 언급하며 "뜨거운 관객들"이라고 입을 모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팝가수들의 내한공연을 기획하는 관계자는 "흥이 많은 한국인은 노래방 등에 가서 유명한 곡을 함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그런 경향이 집단화한것이 떼창 문화인데 멜로디컬한 퀸의 노래가 거기에 최적화했고 극장 공간이 판을 깔아줬다"고 봤다. 머큐리에 대한 관심도 영화 흥행과 퀸 열풍 주역 중 하나다. 1991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름이 끊임없이 회자하고 있지만 사실 머큐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소수자 중 소수자였다. 이민자, 양성애자 등 그의 중심을 붙잡는 정체성은 주류의 그것이 아니었다. 1946년 아프리카 잔지바르(현 탄자니아)에서 태어났다. 복잡한 혈통의 집안은 대대로 소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독특한 외모의 머큐리는 자신의 집안 내력을 비밀에 부쳤다. 부친을 따라 인도를 거쳐 10대 때 영국에 이민 온 그는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화물을 나르기도 했다. 이는 영화에서도 그려진다. 밴드를 결성했다가 해체하기를 수차례 한끝에 퀸을 통해 꿈을 이루게 된다. 이 평론가는 "퀸에 대한 이번 관심은 영화를 통해 알려진 성 소수자로서 머큐리의 삶에 대한 열풍이기도 하다"면서 "이번 영화 흥행을 계기로 성소수자에 대한 국내 시선이 호의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도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퀸, 열풍은 Ing '보헤미안 랩소디'는 5일 현재에도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다. 영화, 음악 관계자들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누적 700만 명도 넘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동시에 문화 전반에서 퀸 관련 음반,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순위권 밖에 있던 'Queen 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는 5일 현재 교보문고 예술 분야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팝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 톱 100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퀸 관련 티셔츠는 제작에 돌입했고, 40∼50대 남성들이 다시 악기를 구매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동시에 퀸을 조명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는 '미니 JIMFF' 형식으로 10~15일 성수동 '다락 SPACE'에서 서울 관객과 만나는데 퀸을 소재로 한 매트 오케이시 감독의 다큐멘터리 '퀸 - 우리의 나날들'(2011) 상영하고,배순탁 음악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한다. 퀸은 내년 새로운 투어를 계획했다. 7월부터 북아메리카 투어 '랩소디'를 돈다. 이에 따라 다시 내한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김 회장은 "메이가 한국 팬들에게 내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인사치레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새로운 팬도 유입한 만큼 성사하면 뜨거운 공연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음악계 역시 퀸을 통해 시장이 좀 더 다채로워진 것을 반기고 있다. 이 평론가는 "한동안 우리 음악계에서 팝이 화두로 떠오른 적이 거의 없었고, 그중에서도 고전은 마니아만 관심 있는 영역이었다"면서 "퀸 덕에 오랜만에 팝의 고전이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좋은 음악이 재평가받고 새롭게 다시 들려지는 일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