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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폭풍의 언덕'과 영국 와인

등록 2021-02-20 09:03:00   최종수정 2021-05-11 15: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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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 2019년 12월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한 바에서 촬영한 '뮬드 와인(mulled wine)' 사진. 소설 '폭풍의 언덕'에는 뮬드 와인 등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서울=뉴시스]  눈보라가 거세게 휘몰아치는 밤중에 한 나그네가 추위에 떨며 들어와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부탁한다. 침울한 분위기의 집주인은 마지못해 창문이 덜커덩거리는 방 한 칸을 내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가 1847년 발표한 장편 소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도입부 장면이다.

소설의 원제는 'Wuthering Heights'로 작품 속 배경인 잉글랜드 요크셔에 있는 저택의 이름이다. '폭풍의 언덕'은 일본어 번역을 중역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에서 작가가 폭풍이나 비, 눈보라 등의 날씨를 분노와 폭력, 열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상징 언어로 쓴 것을 보면 제목은 밋밋한 원제 보다는 오히려 번역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에밀리 브론테는 단 한편의 소설과 미발표 작을 포함한 200편에 달하는 시를 남기고 나이 30세에 결핵으로 요절하였다. 가족 외의 외부 사람과는 거의 접촉이 없었던 그녀는 시골에 묻혀 작품을 썼는데 발표 당시에는 '제인 에어'를 쓴 언니 샬럿 브론테의 명성에 묻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후일 영국의 옵저버지는 폭풍의 언덕을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설로 선정하기도 했다. 리어왕, 모비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히기도 한다.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의 황량한 들판을 무대로 하는 소설은 복수심으로 불타는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에 대한 광기 어린 사랑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소설에는 주옥 같은 명구들도 많다.  

“만약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가 곁에 있다면 나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해도 나에게 있어 우주는 거대한 무의미(mighty stranger)일 뿐이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그리워하며 내뱉는 말이다.

또 이러한 표현도 있다. “서로에 대한 배신과 폭력은 창을 겨눈 양 당사자들에게 적(enemy)보다도 더 심한 상처를 입힌다.” 

와인에 관련된 멋진 표현도 있다. “나는 평생을 함께한 꿈을 꾸었고 그 꿈은 내 생각을 바꾸고 항상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마치 물에 희석한 와인처럼(like wine through water) 내 마음의 색깔을 바꾸어 놓았다.” 물에 와인을 섞었을 때 이를 분리할 수 없듯이 평생을 따라다닌 꿈을 물에 섞은 와인에 비유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800년대 초의 빅토리아 시대인데 소설 중에서 와인을 권하거나 마시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이를 보면 그 당시 영국의 중류가정에서는 와인을 마시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뱅쇼로 불리는 '뮬드 와인(mulled wine)'과 에일 맥주를 데운 '뮬드 에일(mulled ale)'을 마시는 장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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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후대의 연구에 의하면 폭풍의 언덕에는 브론테 가문의 실제적인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 작품 속에서 기괴한 성격을 보이는 히스클리프의 실제 모델은 에밀리의 한 살 많은 오빠로 같은 해에 역시 요절한 브란웰 브론테로 알려지고 있다. 그도 역시 문학과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나 유명한 누이들 사이에서 알코올 중독자로서 생을 마쳤는데 히스클리프가 보이는 광적인 행동은 브란웰이 술에 취했을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에서도 와인을 생산할까?

생산은 한다. 하지만 와인 소비는 세계 6위권이지만 생산량이 미미하여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2000년 전에 로마군이 영국을 정복할 당시에 이미 포도나무를 들여왔으나 습하고 추운 기후 탓으로 발전이 없었다. 현재 웨일즈의 일부 지역과 잉글랜드 남부의 서섹스, 켄트 지방에 있는 450여개 와이너리에서 국내 소비량의 약 1% 정도를 생산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생산량이 없다.

14세기에는 잠시 영국의 헨리 2세가 보르도 지역을 지배하면서 직접 와인을 조달하였으나 이로 인해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에 패하면서 이후 대부분의 소비량을 외국으로부터 충당한다. 이에 따라 대신 맥주와 위스키가 발전하였다.

 '브리티시 와인(British Wine)'은 수입한 포도로 만든 영국산 강화 와인을 뜻한다. 현재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폭풍의 언덕 배경인 요크셔 지방에서도 얼마전부터 와인을 생산한다. 어쩐지 포도밭이 있는 풍경은 폭풍이 몰아치는 소설의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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