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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③]추락하는 국제 유가는 ‘이유’가 있다

등록 2015-01-20 10:29:11   최종수정 2016-12-28 14: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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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턴=AP/뉴시스】전문가들은 국제 유가가 올 상반기 중 배럴달 40달러 중반으로 떨어지면 미국이 감산을 시작하면서 OPEC과 협력해 반등을 모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진은 미국 노스다코타주 윌리스턴에서 한 남성이 유정을 지나가고 있는 모습.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지난해 하반기 들어 시작된 국제 유가의 하락 랠리가 새해 들어와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제 유가는 최근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6월 110달러 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6개월여 만에 반 토막 넘게 난 셈이다. 솟구칠 줄만 알던 유가가 이처럼 하락 일변도인 것은 실로 오랜만에 벌어진 ‘사태’다. 전문가들은 저유가의 원인으로 세계 경기 침체로 수요가 위축됐지만, 공급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을 꼽고 있다. 그렇다면 ‘원인의 원인’은 무엇일까.

◇OPEC의 유가 하락 방치, 미국산 셰일 오일 죽이기?  

 과거 유가 하락 조짐이 나타나면 세계 석유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12개 회원국은 물론 비(非) OPEC 회원국들까지 앞다퉈 생산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유가를 지탱했다.

 그런데 OPEC은 이번에 그런 일치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OPEC 반기 회의가 생산량 감축에 관해 뾰족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막을 내린 뒤에는 아예 두 손, 두 발 다 놓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이를 두고 갖가지 ‘음모론’이 등장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주장은 ‘셰일 오일 죽이기’다.

 전통적인 원유는 유기물을 포함한 퇴적암이 액화한 뒤 지하의 입자 큰 암석 등을 통과해 지표면 부근까지 이동해 한곳에 모여 있게 된다. 이와 달리 현재 미국에서 주로 생산되는 셰일 오일은 지표면 부근으로 이동하지 못한 채 혈암층(Shale·셰일)에 갇혀 있는 원유를 가리킨다. ‘타이트 오일(Tight Oil)’로도 불린다.

 전통적인 원유는 한곳에 모여 있어 수직시추를 통해 손쉽게 채굴할 수 있다. 반면 셰일 오일은 워낙 널리 분포하다 보니 수직·수평시추, 수압파쇄 등 고도의 기술력으로 추출해야 한다.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배럴 당 평균 생산단가가 전통적 원유는 20~40달러지만, 셰일 오일은 50~70달러나 돼 채산성이 낮다.

 그러나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 시대가 수년간 계속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아지자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에서는 관련 업체들이 셰일 오일을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미 정부 역시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셰일 오일 생산에 힘입어 미국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2008년 약 540만 배럴에서 지난해 마침내 900만 배럴을 돌파했다. 글로벌 석유 업계는 미국이 1973년 중동전쟁의 여파로 인한 제1차 석유 파동을 겪은 뒤 전략적인 이유로 금지해 오던 석유 수출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내놓았다.

 그러자 OPEC이 나섰다는 주장이다. 셰일 오일은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경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착안한 OPEC이 저유가를 밀어붙여 미국 내 셰일 오일 업체들의 수익성에 타격을 주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여 추진 중인 채굴 기술 개발을 저지하는 등 궁극적으로는 셰일 오일 산업 기반마저 파괴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의 중소 셰일 오일 개발업체 WBH에너지가 파산하면서 현실화했다. 미국 언론은 이를 신호탄으로 다른 중소 업체들이 줄도산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OPEC의 이러한 셰일 오일 죽이기는 최대 산유국으로 OPEC의 수장 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고 있다. 제1차 석유 파동 당시 세이크 자키 야마니 사우디 석유부 장관이 말한 “석기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은 돌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돌을 대체할 신기술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석유 시대도 마찬가지다”는 경고에 맞게 대응책을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사우디는 그간 초고유가에 힘입어 확보해놓은 약 2412억 달러(약 262조원·지난해 10월 기준)에 이르는 막대한 외화 보유액을 무기 삼아 이처럼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사우디의 알리 빈 이브라힘 알나이미 석유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2일(현지시간) “OPEC은 감산하지 않는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로 떨어져도 시장 점유율을 지킬 것이다”고 공언하며 미국 셰일 오일 업계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저유가, 미국과 사우디의 짜고 치는 고스톱?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반응이다. 지난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승리가 확실해지자 셰일 오일 관련 주가가 일제히 폭등했을 정도로 오바마 정부는 셰일 오일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었다.

 그런 셰일 오일이 OPEC의 유가 하락 방치로 인해 위기에 내몰렸지만, 미국은 오히려 유가 하락을 즐기는 모양새다. 실제로 미국은 셰일 오일 등 자국 내 원유 생산량을 좀처럼 줄이지 않으면서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유가 하락이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과 사우디가 “특정 목표를 위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두 나라의 교감 여부를 떠나 미국은 저유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유가 하락을 통해 하루 평균 약 4억5000만달러(약 488억원)의 가계 지출이 감소했다. 이를 통해 늘어난 실질 소득은 여타 소비 증가로 이어져 기업 실적을 개선하고 있다. 이는 다시 고용 촉진을 유발하게 된다. 이 같은 선순환은 미국 경제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저유가는 1990년대 초 구소련 붕괴로 냉전 시대가 종식된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질서에 오일 머니를 앞세워 최근 반기를 든  ‘신(新) 차르’ 블라디미드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를 굴복시키는 데도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원유와 석유 제품의 수출이 전체 수출의 49%, 재정수입의 45%를 차지할 만큼 자원 의존도가 높다. 국가 경제가 유가에 좌우될 정도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러시아는 국제 유가가 6개월 만에 절반으로 폭락하자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고 말았다. 유가 하락이 본격화한 지난해 11월에는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월 대비 -0.5%포인트를 기록하며, 5년1개월 만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러시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서방은 ‘신(新) 냉전 시대 부활’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며 압박했지만, 지난 고유가 시대에 막대한 부를 쌓고, 러시아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도리어 러시아는 한 손에는 석유와 가스를, 다른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동유럽 국가들을 달래고 얼렀다.

 그러나 저유가 시대가 되면서 제재 효과는 점점 커지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지난해 1월 1달러당 30루블대에서 12월 80루블대로 폭락했다. 지난해 말 러시아의 외화보유액도 3900억달러(약 423조원)로 1년 전보다 1200억 달러(약 130조원) 이상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7312억 달러(약 793조원)에 이르는 대외 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돼 러시아의 목을 조르고 있다. 유가가 장기화하고, 경기를 회복한 미국이 금리 인상까지 단행할 경우 이머징 마켓에서 돈이 빠져나가면서 러시아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해 10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Ba1) 보다 두 단계 높은 ‘Baa2’로 낮춘 데 이어 또 다른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11일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투기등급 ‘BB+’ 바로 윗 단계인 ‘BBB-’로 한 단계 내린 것은 러시아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경제 위기는 푸틴 대통령에게 적잖은 정치적 치명타가 된다.  

 그뿐만 아니다. 이라크, 시리아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중동은 물론 서구까지 위협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IS의 자금줄이 바로 장악한 이라크 유전에서 캐낸 석유 밀매이기 때문이다. 이는 IS를 공적으로 규정한 미국과 사우디·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오만·바레인 등 걸프협력회의(GCC) 소속 6개국들이 함께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같은 OPEC 회원국이지만,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로서 수니파인 사우디와 앙숙인 동시에 미국의 눈엣가시이기도 한 이란의 힘을 꺾기 위해 미국과 이란이 손을 잡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미국이 언제까지나 저유가를 즐기진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측이다. 유가 내림세가 더욱 빠르고 가팔라지면 미국 전통적인 석유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셰일 오일 산업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가 올 상반기 중 배럴당 40달러 중반까지 추락하면 미국이 감산을 시작하면서 OPEC과 협력해 반등을 모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반기 중 지난해 상반기와 같은 100달러대는 아니지만, 60~70달러대까지 회복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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