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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이석기 아리랑, 어떤 애국가의 ‘족보’

등록 2015-01-23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14: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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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492>

 내란 선동자 이석기(53)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석기에게는 ‘아리랑’이 애국가다.

 지난달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선고한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주도세력은 민중민주주의 변혁론에 따라 혁명을 추구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애국가’를 부정하거나 태극기도 게양하지 않는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한 그대로다.

 저들에게는 뿌리 깊은 ‘아리랑론’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일종의 ‘이즘’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리랑론은 북의 김일성(1912~1994)에게서 비롯됐다. 김일성 전기 ‘세기와 더불어’(1995) 제6권에는 김일성이 1937년 6월 동북항일연군 제3사 사장(師長)으로 보천보 전투와 간삼봉 전투를 벌이며 ‘아리랑’을 불렀다고 기록돼 있다. ‘아리랑 혁명동지론’의 근거자료로 제시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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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삼봉 전투장에 울린 ‘아리랑’은 혁명군의 정신적 중심을 비쳐 보이고 낙천주의를 시위하였다. 적들이 ‘아리랑’을 듣고 어떤 기분에 잠겼겠는가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후에 포로들이 고백하기를 그 노래를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 순간에는 공포에 잠기였으며 나중에는 인생 허무를 느꼈다고 하였다. 부상자들 중에는 신세를 한탄하며 우는 자들도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도망병까지 났다는 것이다.”

 북측이 발매한 음반 ‘조선민요Ⅰ’(2010)은 당시의 싸움과 ‘아리랑’을 엮은 ‘간삼봉에 울린 아리랑’(작사 신운호·작곡 전민철·노래 현송월)을 수록했다. 가사 중 ‘녀장군’은 김일성의 처 김정숙(1917~1949)이다.

 1. 보천보에 홰불 올린 혁명군은 기세 높아. 간삼봉의 싸움터엔 노래 소리 드높았네. 빨찌산 녀장군이 선창 떼신 아리랑. 봉이마다 릉선마다 뢰성타고 울렸네. (후렴) 아리랑 스리랑 간삼봉에 불비 와서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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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도천리에 조용조용 부르시던 아리랑. 싸움터에 산발 쩡쩡 메아리로 울리셨네. 백발백중 명중탄 불벼락을 안기며. 사령부의 안녕 지킨 빨찌산 녀장군.

 3. 하늘에는 번개 번쩍 싸움터엔 총불 번쩍. 녀장군의 아리랑에 왜호박이 떼굴떼굴. 삼천리를 피에 잠근 섬오랑캐 모조리. 통쾌하게 쳐부시고 조국광복 맞으리.

 이 창작 아리랑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먼저, 김일성이 아닌 아내 김정숙을 추어올렸다는 사실이다. 이 ‘녀장군’을 놓고 “백두산 장군들의 총대력사는 곧 아리랑 민족의 재생의 력사이며 승리의 력사라는 것을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형상”했다고 풀이한다. 선군정치의 근간은 김일성의 만주 항일유격전이라는 것과 여성성을 통한 재생산의 상징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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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를 ‘노래와 춤곡’이라고 밝힌 것도 특기할 만하다. 기존의 군중무 배경음악인 ‘춤곡’ 또는 ‘무도곡’과는 다르다. “지난 시기의 무도곡 종류를 시대의 요구와 지향에 맞게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새로운 음악종류”라고 견강부회한다.

 1989년 3월 문익환(1918~1994) 목사가 북으로 가서 김일성을 만났다. 문익환은 러시아·일본·중국의 동포 3세들을 위해, 그들이 알고 있는 ‘아리랑’을 통일 국가(國家)의 국가(國歌)로 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김일성은 이미 자신들은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해 말 북은 판문점 회담에서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노래로 ‘1920년대 아리랑’을 제의했다. 1926년 개봉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인 ‘본조아리랑’으로 하자는 소리였다. 우리는 토를 달지 않고 ‘본조아리랑’을 단가로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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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익환의 동생 문동환(94) 목사는 “아리랑고개의 전통에 있어서 미륵불 사상이 그것이요, 동학의 개벽사상이 그것이요, 시천주사상이 그것이다. 광야의 민중의 전통에 있어서 하느님의 영으로 말미암는 새 나라의 도래 신앙이 그것”이라는 민중신학론을 전파했다. 

 과거 386세대 운동권은 통일국가의 국호를 ‘아리랑 연방공화국’이라고 하자고 천명했다. 이는 21세기 들어 강정구(70) 교수의 ‘아리랑 통일민주공화국 4단계 통일방안’으로 이어졌다.

 “아리랑은 남과 북 민족성원 어느 누구에게서도 쉽게 일체감과 공속의식을 자아내는 민족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남북의 적대관계를 넘어서서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상징어이다. 동시에 우리민족 역사 속의 한과 얼이 무형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상징어로서 각고 속에서 우리 됨을 확인할 수 있어 소아적 이해 관계를 초월하여 진정한 일체감과 화해와 협력을 자아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북의 조선민족음악무용연구소장은 ‘예술연구’(2006)에 ‘조선민요 아리랑에 대하여’라는 글을 썼다. “우리 민족을 ‘아리랑 민족’으로 부르고 있으며 북남 간의 통일축제들에서는 ‘아리랑’이 통일을 상징하는 민족의 ‘애국가’로 불리워지고….”

 이석기가 ‘아리랑’을 ‘애국가’로 삼자고 한 이면에는 이토록 면면한 ‘계보’가 있다.

 편집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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