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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①]금남의 성역, 그러나 최정상에는 남성들이…

등록 2015-02-24 14:35:03   최종수정 2016-12-28 14: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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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여성의 영역에서 최정상에 오른 남성들이 많다. 지난 1월 프랑스 ‘르 셰프’가 전세계 미슐랭 2스타 또는 3스타 셰프 5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베스트 셰프’ 조사에서 1위에 오른 ‘요리계의 피카소’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사진=롯데호텔 서울 제공)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가사를 돌보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이었고, 외모를 가꾸는 것 또한 여성 고유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이로 볼 때 그런 것들에 뿌리를 두고 발전한 요리, 패션·헤어 디자인, 메이크업 등의 분야는 태어나서부터 여성이 남성보다 관심이 높다. 그만큼 잘할 수 있고, 관련 직업군 역시 여성이 장악해야 맞다.  

 그러나 실상을 짚어보면 이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성이 절대다수지만, 최정상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요리만 봐도 프랑스의 피에르 가니에르, 영국의 제이미 올리버, 고든 램지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스타 셰프들은 모두 남성이다. 국내에는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현대 프랑스 요리의 전설’로 통하는 폴 보퀴스,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덴마크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 등도 남성이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에드워드 권, 강레오 같은 한국인 유명 셰프도 모두 남성이고, 국내 20여 특급호텔, 서울 청담동·이태원·가로수길 유명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전문 셰프들도 거의 남성이다.

 패션 디자인을 봐도 1990~2000년대를 풍미한 ‘이탈리아 3대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고(故) 지아니 베르사체, 지안 프랑코 페레가 모두 남성이다. 국내에서도 고 앙드레김, 이상봉, 정구호 등 유명 디자이너들이 모두 남성들이다.  

 남성들은 ‘금남(禁男)의 성역(聖域)’에 어떻게 진입했고, 어떤 방식으로 최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일까. 여성들은 왜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의 텃밭을 남성들에게 내주고 말았을까. 한 번 들여다보자.

◇요리  ‘요리’가 생활의 영역을 넘어 문화의 중심으로 올라서면서 케이블 채널은 물론 종합편성채널, 지상파 채널까지 앞다퉈 요리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프로그램의 메인 MC와 주요 출연자가 거의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EBS TV ‘최고의 요리 비결’, 채널A ‘먹방쇼 맛의 전설’, 푸드 TV ‘박수홍의 푸드매거진 잇’, SBS TV ‘대결! 스타셰프’ 등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인 개그맨 박수홍과 MBC TV ‘찾아라! 맛있는 TV’, MBC 에브리원 ‘김호진의 쿡&톡’ 등을 진행하는 탤런트 김호진 등 ‘요리 방송계’의 걸출한 쌍두마차를 비롯해 올리브TV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의 가수 정재형, 올리브TV ‘올리브쇼 2014’,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의 그룹 ‘제국의 아이들’ 멤버 광희, tvN ‘삼시세끼 농촌 편’의 탤런트 이서진과 그룹 ‘2PM’ 멤버 옥택연, 올리브TV ‘오늘 뭐 먹지?’의 개그맨 신동엽, 가수 성시경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전 활동을 통해 ‘부드러운 남성’의 이미지를 선보인 경우는 있으나 ‘여성스러운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중견 탤런트 이정섭이 작품 속 캐릭터나 평소 말투 등에서 드러낸 여성적인 이미지가 계기가 돼 1995년 KBS 2TV ‘이정섭의 요리쇼’의 MC로 발탁됐던 것과 180도 다르다. 오히려 tvN ‘삼시세끼 어촌 편’의 영화배우 차승원은 그간 주로 마초적인 이미지를 표출해 전성기를 구가했다.  

 제작진이 남성 연예인에게 요리 프로그램 진행을 맡긴 것은 주시청층인 여성은 물론 남성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만큼 ‘요리하는 남자’가 낯설지 않아졌다는 이유도 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XX가 떨어진다”면서 남성들을 주방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던 과거였다면 MC 자리까지 과감히 남성 연예인에게 넘기는 승부수를 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리하는 남자들은 얼마나 많을까.

 서울의 한 전문학교 조리과의 경우 1학년 학생의 70% 가까이가 남학생이다. 2000년 설립 당시만 해도 여성이 좀 더 많았으나 매년 남학생의 수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2010년 이후에는 남녀 비율이 역전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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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강진형 기자 = 여성의 영역에서 최정상에 오른 남성들이 많다. 사진은 지난 2011년 ‘2011 코리아 헤어쇼’에서 헤어쇼를 선보이는 남성 헤어 디자이너들. [email protected]
 산해진미(山海珍味)·진수성찬(珍羞盛饌)을 차려내는 특급호텔 주방을 맡은 셰프들도 대부분 남성이다. 특히 주방의 최고 책임자인 총주방장 자리는 오히려 ‘금녀(禁女)의 성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뉴시스가 최근 국내 특급호텔 2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여성이 총주방장인 호텔은 한 곳도 없었다.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강남점의 총주방장이 여성인 최은주씨지만, 이 호텔은 특급호텔이 아닌 비즈니스호텔이다. 업계에서는 최씨가 앞으로 더욱 성장해 국내 특급호텔 최초의 여성 총주방장에 등극할 수 있을지에 대해 벌써 흥미를 나타내고 있다.

◇패션  여성의 영역에서 남성이 최고로 올라서는 현상은 요리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010년 8월 수십 년간 국내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 군림해오던 앙드레김씨가 별세했다. 그러자 대중의 관심은 매스미디어의 각광을 받고,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원톱 스타 디자이너’의 자리를 누가 이어받을지에 집중됐다.

 사실 김씨라는 독보적인 스타 디자이너가 있긴 했지만, 요리 분야와 달리 국내 패션 분야에는 걸출한 여성 디자이너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리의 새로운 주인은 ‘한글’을 모티브로 해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한국을 알려온 남성 디자이너인 이상봉씨가 차지했다.

 이후 이씨의 활동 영역은 김씨를 넘어섰다. 김씨는 생전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이 대거 나선 각종 패션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자비를 들여 국내외에서 개인 패션쇼를 펼치는 등 독자 노선을 걸었다.

 반면 이씨는 서울패션위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국내 패션업계와 활발히 교류했다. 그런 그가 2012년 국내 패션 디자이너 100여 명이 모여 만든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의 초대 회장에 추대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지난해 이씨는 회원이 280여 명으로 늘어난 연합회의 회장으로 재추대돼 한국 패션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논란에 휩싸였다. 1월7일 패션노조와 청년유니온·알바노조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씨를 ‘2014년 청년착취대상’으로 선정했다. 패션노조 페이스북에서 청년 노동력을 착취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투표를 한 결과, 그가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탓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디자인실의 수습 10만원, 인턴 30만원, 정직원 110만원 등 턱없이 낮은 급여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재미있는 것은 패션 디자인 업계의 ‘열정페이’에 대해 호된 비판을 가하고 나선 패션노조 위원장인 배트맨D씨 역시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대기업에 다니다 2011년부터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밟기 시작한 그는  패션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에 분노, 지난해 10월17일 ‘서울패션위크 인권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패션 권력과 정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용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가 모두 남성인 셈이다.  이는 국내 패션계도 앞으로 남성이 주도해나갈 것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과 더불어 패션계의 한 축을 형성하는 스타일리스트 분야의 ‘성층권’은 남성들이 장악한 지 이미 오래다.

 정윤기씨, 김성일씨 등 스타급 남성 스타일리스트들이 방송, 패션지 등 미디어를 선점한 데 힘입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스타일리스트들의 맹추격을 뿌리치며 독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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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여성의 영역에서 최정상에 오른 남성들이 많다. 사진은 지난 2013년 11월  제50회 대종상영화제에 참석한 국내 최정상의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모습. [email protected]
◇헤어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남성은 이발소, 여성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남성들이 생겨났던 것.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하나가 남성 헤어 디자이너의 존재다.

 1970~1980년대에 활약한 국내 1세대 헤어 디자이너로 흔히 6명을 꼽는다. 이중 여성은 이가자, 마샬씨 등 2명뿐이지만, 남성은 유지승, 박승철, 박준, 이철씨 등 4명으로 남성이 되레 더 많았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성 대부분은 그런 사실을 잘 몰랐다. 그러다 유지승씨가 염색약 모델로 방송에 출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발사가 아닌 남성 헤어 디자이너의 존재는 놀라움을 안겨줬다.

 이는 당시 일본 남성 패션지 ‘맨즈논노’ 열풍과 퇴폐 이발소 문제 등과 맞물려 20대 남성들에게 “남자가 머리도 만지는데 머리를 깎는 게 어때서”라는 인식을 하게 했다.

 이들이 주저주저하면서 하나둘 미용실 문턱을 넘기 시작했고, 20년 넘게 흐른 지금 이발소는 급증한 60~70대 노인 인구 덕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뿐 대세는 미용실이다.

 미용실에서 남성들이 머리를 깎는 것이 자연스러워지자 남성 헤어디자이너는 더욱 늘어났다. 한 화장품 업체가 지난해 2월 발표한 ‘헤어드레싱 리포트’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 헤어 시장의 규모는 2조5048억원, 전국 헤어 살롱 수는 8만1600개로 집계됐다. 특히 관련 종사자는 14만8121명인데 이 중 남성이 40%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사자 수는 아직 남성이 적지만, 업계를 리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박승철, 박준, 이철씨 등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여 각각 수십~수백 개의 가맹점을 확보하며 부와 명예를 일궜다. 현재 국내 패션 1번지인 서울 청담동에서 헤어·뷰티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라 뷰티 코어의 수장 현태 대표 역시 2.5세대 남성 헤어디자이너다.

◇애견 미용  1994년 이후 한국애견협회가 발급한 애견미용사 자격증은 1만5000여 장이다. 이 중 70%가 여성이 가져갔다.

 그러나 정작 애견미용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유명 애견미용학원장은 대부분 남성이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도 활약 중인 1세대 권상국 권상국애견미용학원장을 비롯해 2세대를 대표하는 김남진 킴스애견미용학원장, 2.5세대의 선두주자인 최덕황 최덕황애견미용학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여성들이 장악한 애견미용계에 투신, 각종 애견 미용대회와 도그 쇼를 석권한 여세를 몰아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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