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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뭐기에]②시급 5580원, 누군가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

등록 2015-03-20 10:24:07   최종수정 2016-12-28 14: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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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최저임금 1만원 요구안 및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월 209만원 요구안을 발표했다. 2015.03.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나운채 기자 = #1.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8개월째 일을 하고 있는 박모(64)씨는 늘 혼자 저녁을 먹는다. 제대로 숨쉬기도 힘든 아파트 지하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부랴부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손전등을 챙겨 서둘러 순찰을 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5년 넘게 일한 박씨는 그동안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했다. 올해부터 경비원들도 최저임금을 100% 보장받도록 바뀌었지만 박씨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후 5시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9시까지 15시간 넘게 일을 하지만 박씨를 고용한 용역 업체에서 오전 1시부터 6시까지는 일을 하지 않는 '휴게 시간'으로 정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탓이다. 여기에 보험료와 각종 세금을 떼고 나면 법이 정한 최저임금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박씨는 휴게 시간에 쉬지도 못한채 아파트 순찰을 돌거나 한 평 남짓한 좁은 경비실에서 언제 울릴지 모를 주민들의 호출을 기다려야 한다.

 박씨는 "이 나이에 최저임금 전액을 다 받는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고, 어느 아파트를 가든 계약 기간이 1년을 넘기가 쉽지 않다"며 "근무여건에 대해서 항의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최저임금 얘기는 애초에 꺼내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2. 김은진(23·여)씨는 한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에서 한 달째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씨는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손님을 맞이하고 가게를 정리하는 등 고된 업무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어도 야간 수당까지 받을 수 있어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 식당과 제과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최저임금과 휴일수당으로 고용주로 잦은 마찰을 빚었다.

 김씨는 "예전에 일했던 빵집에서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았다"며 "더군다나 처음 3개월 동안은 수습기간이라며 더 적은 돈을 받고 일했다"고 토로했다.

 제과점에서 일할 당시 김씨는 사장에게 최저임금 지급을 요구하자 '처음 채용될 때 합의를 했으니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했다. 결국 김씨는 일을 그만뒀다.

 1988년 처음 도입된 '최저임금 제도'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해 임금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됐다.

 올해 법으로 정한 최소한의 임금은 시급 5580원.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법으로 정했다지만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이 노동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구직자들의 노동권리에 대한 인식 부족과 권리를 마땅히 주장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한 탓이다. 특히 임금 인상에 부담을 느낀 고용주들의 편법 계약 역시 최저임금 보장의 최대 걸림돌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용주는 "경기 침체로 영세한 업종의 경우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보장하기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건 고용주의 책임이지만 이런 경제상황에서 책임을 감당하기에는 사실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보장된 각종 근로조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도 근로자들에게 주어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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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비정규직종합대책 폐기,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LGU+, SKB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중인 포스트타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2015.03.18. [email protected]
 실제 근로자들 5명 중 1명은 구체적인 주휴 수당 등 근로 조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8일 서울시는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근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편의점, PC방 등 7개 업종 근로자 26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설문 조사결과 조사대상 근로자 5명 중 1명꼴로 자신이 '주휴수당'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일한지 1년 미만이더라도 연차유급휴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주휴수당은 23%, 퇴직금은 22%, 연차휴가는 21%가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이어 휴게시간(13%), 초과근무수당(12%), 임금지급원칙(6%) 순으로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에 따르면 주휴수당은 주 15시간 이상 근무 및 1주일 개근시 주1회 받을 수 있다. 퇴직금의 경우에는 주 15시간 이상, 1년 이상 근무할 경우 받을 수 있다.

 조사대상 근로자의 96%는 최저임금(2014년 기준 5210원) 이상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용실과 편의점의 경우 타 업종에 비해 최저임금 미만으로 받는 근로자 비율이 높았다.

 설문에 참여한 근로자의 80%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답했다. 다만 PC방과 미용실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28%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돼, 타 업종에 비해 미작성 비율이 높았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는 노동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미흡하고, 고용주들에 대한 처벌 역시 시정 조치에 그치는 등 미약하다는 게 노동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적잖은 가게들이 모두 최저임금 지급을 지키지 않으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선택하는 범위가 좁아진다"며 "어딜 가나 똑같다고 여기게 되면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감수하고 일하게 되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시적인 지원정책이나 고용주에 대한 미약한 처벌로는 최저임금을 정착화 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며 "최저임금 법적 보장 및 처벌 강화, 정부 차원의 감시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스로 노동권리에 대해 인지하는 것과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 하면서도 일하게 되는 이유는 경제가 나빠져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됐기 때문"이라며 "최저임금 지급의무는 계약을 통해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닌 강행기준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이자 고용주가 반드시 지켜야할 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보다 못한 저임금을 받는 것에 동의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며 "정부 역시 노동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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