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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칼럼]전문가를 인정하고 책임을 맡겨야

등록 2015-03-30 11:25:26   최종수정 2016-12-28 14: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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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우리나라는 대규모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 그 규모에 걸맞은 직위의 인물이 수습을 지휘한다. 그래야 정부가 사고 수습에 성의를 갖고 대처하는 것으로 국민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실제 사고 수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비전문가의 사고 수습 지휘가 문제를 키운 대표적인 경우다.

 높은 직위의 인물은 대부분 전문가가 아니다. 당시 안전행정부의 업무 범위는 매우 넓었기 때문에 장·차관 등 고위직은 해난사고 전문가가 아니었던 것은 이상하지 않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선박 구조는 고사하고 배가 어떻게 물에 뜨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3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으므로 적어도 해당 부처의 최고위직이 사고 수습 지휘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할까?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과정을 보면 이런 사고방식은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001년 9·11테러로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폭파돼 2792명이 희생됐다. 그런데 다시 사고수습 총책임자는 뉴욕시 소방국장이었다.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고관들이 현장을 방문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고, 뉴욕시 소방국장에게 지시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2011년 911테러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작전 지휘관인 육군 준장 옆에 쭈그리고 앉아 화면을 보는 장면이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다.

 미국은 왜 이렇게 다를까? 결과의 차이는 한국은 이런 사건·사고를 1년도 안 돼 잊지만, 미국은 주모자를 10년 동안이나 추적해 사살한다는 점일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도 원래 그러지 않았다. 19세기까지 상비군이 없었던 영국에서는 전쟁이 나면 귀족이 연대장이 돼 영지 내 농민들을 병사로 편성해 전선에 나갔다. 수백 년간 유럽에서는 이런 아마추어 지휘관들로 전쟁을 치렀다. 그런데도 상비군과 지휘관을 육성하지 않은 것은 왕들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화되는 유럽의 분열과 전쟁이 전문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19세기에 들어 유럽 각국은 사관학교와 참모제도를 만들어 전문가에 의한 전투지휘를 정착시켰다.  

 동양은 달랐다. 당나라 때 지방군사령관(절도사 節度使)의 반란이 빈발하자 중국을 통일한 송나라는 문관인 지방행정관(자사 刺史)에게 병권을 맡겼다. 무관은 문관의 군사참모 역할에 그쳤다. 황제는 군사반란의 걱정을 덜었지만, 국방력은 현저히 약해졌다. 송나라는 결국 거란족의 요나라와 여진족의 금나라에 수모를 겪다 몽골에 멸망되고 만다. 그러나 몽골이 세운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가 들어서자 문관 지휘관 제도는 부활하게 된다.

 조선도 지방의 사단장(병사)은 도지사(관찰사 觀察使)의 지휘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최고 전선 지휘관인 체찰사, 도체찰사, 도원수 등은 모두 문관이었다. 이 제도는 고종 때까지 유지됐다. 

 이처럼 뿌리 깊은 전문가 경시 풍조가 세월호 사건의 수습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지배한다.

 과학과 기술로 먹고사는 시대인데 우리의 생각은 500년 전에 묶여있다. 세월호 사고수습의 총지휘권을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 맡기는 시대가 와야 한다. 당연히 해난사고의 평생 전문가가 해당 서장에 임명돼 있어야 한다. 사고 수습에 전국적 지원이 필요하면 중앙부처는 연락관을 그에게 참모로 붙여주면 된다.

 21세기에 우리 경제와 일상을 뒷받침하는 전문기술을 일반인이 이해하거나 판단하기는 어렵다. 해난사고, 원전, 에너지, 항공기, 군사기술, 교통시스템, 지하구조물, 의료, 정보기술 등 각 분야에 경험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모으고, 경쟁시켜 분야별 전문가 집단을 육성해야 한다. 그 전문가에게 기술과 정책을 판단하는 총책임을 맡겨야 한다. 동시에 전문가의 집단이기주의를 통제하는 제도를 함께 둬야 한다.

 그렇게 조직시스템을 바꾸고 인사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둡다. 미국이 10년 만에 빈 라덴을 잡은 것은 소통이나 민주주의가 아니다. 장교단과 부사관단으로 구성된 직업군인제도의 엄격함이 그를 잡았다. 

 염명천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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